(1장, <1860. 하늘님, 수운에게 말 걸다>는 출판시에 공개됩니다. 경상도편 인터넷 공개는 2장부터~)
2. 씨앗불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했던 철종 13년, 임술년(1862). 전국에서 흉흉한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과도한 세금 부과로 인하여 백성들의 고통은 극에 달해 있었다. 경상도 상주, 곡창을 자랑하던 이 고을에도 민란의 소식은 빠르게 날아왔다. 2월에 일어난 단성과 진주의 농민반란은 상주 사람들에게도 불씨를 안겨 준 셈이었다.
이미 결가가 너무 심하게 징수되어서 분노를 터뜨리며 봄이 와도 농사일을 시작할 마음이 나지 않았던 상주농민들은 새봄과 함께 들려오는 진주 소식에 귀가 번뜩 뜨이었다.
“어이, 진주 소식 들었나? 농민들이 진주성을 엎어 치아뿌고 창고를 열어가이고 곡식을 다 나나줬다카네”
상주군 공동면, 첩첩이 산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는 오순도순 모여 사는 농민들이 있었다. 관에서는 오가작통이라 하여 다섯 가구를 묶어서 세금을 함께 내라는 통에 오가구로 지정된 이웃들은 서로 고통과 불만을 나누며 살았다. 새벽부터 논일을 하는 정나구에게 이웃집 사는 오복이가 논두렁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먼 소리라요? 누구가 진주성을 엎어치았다고요?”
무논에 써레질을 하던 정나구는 일손을 멈추고 오복이를 바라보았다. 오복이는 반쯤이나 찡그린 얼굴을 나구에게 들이밀며 웃음인 듯 울음인 듯 읊어댔다.
“암만 농사 지아도 세금도 다 못내는데 논 갈아엎으면 뭘 해여. 우리도 진주사람들처럼 뭉치가이고 뭔 수작을 내야 되지.”
나구는 오복이의 말에 가슴이 벌떡 뛰었다. 들판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까닭 없이 아침부터 가슴이 울렁울렁하더니 이 소리를 들으려고 했는가? 정나구는 입을 벌리고 오복이를 바라보았다. 오복이는 논두렁이 피어오르고 있는 아지랑이를 바라보며 손을 내저었다.
“저너무 아지래이때메 어지랍네. 어질어질 앞이 안보이여. 아침밥도 못 먹고, 지우 점심이나 나물죽으로 떼우리야 될 판이네.”
나구는 여기저기를 살피며 논두렁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오복이의 코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뭔 수작?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라. 지금 맘이야 장장이라도 이 써레를 들쳐 메고 관아를 쳐들어가고 싶지만 한 번이라도 민란이 성공한 적 있더나?”
정나구는 허물어지듯 논둑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복이가 그런 나구에게 물병을 내밀었다. 급히 마시는 통에 정나구의 목덜미로 물이 흘러내렸다.
“올해도 농사 지 봤자 남는 건 쭉정이뿐 일거라. 박 씨네 논 열 마지기 얻어가 부칠라꼬 이야기를 했지마는, 죽어라고 농사 지봐도, 추수하면 세금 줘야 되고, 관에서는 만져 보도 못한 환곡 이자를 내놓으라 카이 뭐가 남겠나? 그칸다고 농사 안 지 먹을 수도 없고, 이노무 세상이 하늘과 땅이 쩍 들러붙어 버리만 좋겠네.”
정나구는 아예 논둑에 누워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잔바람이 지나가면서 무논에 주름살 같은 물결무늬가 번져갔다. 길가에는 냉이가 뾰족이 고개를 내밀고 샛노란 민들레도 꼿꼿이 피어났다. 들판은 완연한 봄이었지만 오복이의 홀쭉한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만 들려왔다.
“그렁께 말인데, 아무래도 이래가 있으만 안되여. 우리도 뭔 수를 내야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라고? 이래도 굶고 저래도 굶을 팔자라면,”
오복이는 나구에게 염장을 질렀다. 나구의 눈빛이 핏빛으로 변해갔다. 원래 급성인데 오복이의 염장질에 나구는 그만 속이 뒤집혔다. 나구는 충혈된 눈으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지난 해 들이닥친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동네에는 노는 아이들도 별로 없었다. 대농(大農)이 아니고서는 먹을 양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복의 뱃속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났다. 둘은 물병을 주고 받으며 들이켰다. 물이 들어가니 그래도 속이 좀 시원했다.
“그래가지고? 진주민란은 어떻게 됐는가 이야기 함 해보소.”
나구가 오복이들을 닦달하자 오복이 두 눈망울을 굴리며 손을 들어 자기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고을 부사의 목을 쳤대여. 농민들이.”
“뭐라고?”
정나구가 등을 일으켰다. 엊그제 환곡의 이자를 내지 못했다고 관아에 가서 매찜을 당하고 온 터라 부사에 대한 적개심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이방이 관리소홀로 사라진 환곡을 애매한 백성들에게 물게 한 것이다. 정나구는 아직 아물지 않은 허벅지를 만지작거리며 애초에 입을 다물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던 다짐조차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오복이를 다그쳤다.
“몇 명이나 모있대여? 그래 주동한 사람덜은?”
오복이는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서 주변을 살피더니 빠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수만 명이 모있다네. 그래가지고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부사의 목을 치고 관리들을 다 때려 죽있대여. 농민들 갈봤던 관리들 집을 찾아 가지고, 모두 불을 싸질렀다캉께 속이 다 안 시원해여? 우리들한테 결가 안낸다고 곤장질을 해대는 호방놈 좀 거게 갔다 보내만 얼매나 좋겠어. 거따가 곡창을 열어가이고 백성들다 나놔 줬대여. 관리들이 환곡으로 이자 빼먹을 라고 놔뒀던 곡식을 모두 백성들한테 나놔 줬다카니까 얼매나 신이 났겠어?”
정나구의 입이 쫘악 벌어졌다. 오복이는 입가에 허연 거품을 내뿜으며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한번 죽을 건데, 여태 당한 수모를 그래라도 갚는다 그카만 나라도 같이 하겠네. 그동안 우리가 당한 걸 생각해 보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관리들에게만 당했는가? 양반들에게는 또 얼마나 당했는가. 그리고 이 근년에는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둘 중에 하나라. 우리가 오늘은 이래 살아 있다케도 언제 죽을지 몰라여. 자네 다리는 어떤가?”
정나구는 베옷을 걷어서 종아리를 보여 주었다. 허벅지에도 멍이 시퍼렇게 들었지만 종아리까지 성한 데가 없었다. 오복이는 몸서리를 쳤다. 내일이면 오복이도 끌려갈 것이다.
“염병할! 농사꾼한테 봄날은 금보다 귀하다카는데 오늘은 기분 잡칬네.”
정나구는 써래를 챙겨 지고 집으로 향했다. 아직도 할 말이 많은 듯 오복이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골목 어귀에 이르자 정나구는 오복이에게 일렀다.
“우리 오 가구 오늘 저녁에 우리집에 모이도록 하세. 내일이면 관아에서 군포때메 또 부를팅께 먼 대책을 세와나야 안되겠는가?
“대책은 무슨 대책, 어데 가서 베를 구해여?”
오복이가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며 사립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나구도 골목길로 들어가서 사립문을 열었다.
“아이고 아버지, 관아에서 오시라케요. 동포를 안냈다고 포졸이 금방 왔다가싰어요. 내일 오 가구 전부 관아로 나오라 카던데요.”
열 살 도치가 방금 포졸이 나간 길을 가리키며 걱정스레 아버지의 표정을 살핀다. 정나구는 엉거주춤 지게를 부려 놓고 도치에게 물었다.
“다섯 집 모두 나오라케여?”
“예, 한 집이라도 빠지면 안된다 카민서 단대 배루고 갔어요. 아마 을식이 아제네 집으로 간 거 같애요.”
도치는 울상이 되었다. 어린 소견에도 집안에 불어닥치는 흉흉한 기운에 오금이 저려왔다. 정나구는 사립문에 기대어 섰다. 어제는 환곡 때문에 불려 갔고 내일은 또 동포 때문에 불려갈 것이고 모레는 결가세 때문에 불려갈 것이다. 정나구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살 방법이 없네. 날마중 매타작을 하만 무쇠라케도 어째 견디여?
아들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한 마디를 하고는 고개를 떨궜다.
“아부지가 안계시만 저를 잡아간다 카대요.”
아들의 말의 말에 나구는 정신이 번쩍 나서 고개를 쳐들었다.
“뭐라고? 애비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머때메 너를 잡아간다 카드나?”
정나구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나구는 자기도 모르게 창고에 들어가서 잘 갈아 놓은 낫을 집어들었다. 만약 아들 도치를 건드리는 놈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목줄을 딸 참이었다. 오가구 작통법으로 다섯 가구당 세 필씩 부과된 군포를 맞추지 못했다고 몇 번이나 호출을 당했다. 그러나 당장 독안에 쌀 한 톨 남아 있지 않는데 어디서 베를 구하겠는가? 나구는 아들에게 낫을 보이며 결연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를 잡아가만, 내가 먼저 포졸 모가지를 따 버릴끼라. 긍께 니는 걱정안해도 되여. 어여 방에 드가라. 나는 뒷집에 가볼팅께.”
그는 낫을 들고 김씨네로 향했다.
“논둑 베었는가? 낫을 들고 웬일이라요?”
김씨가 마루에 앉아서 무명베로 허벅지를 감으면서 정나구를 올려다보았다.
“여보게, 자네도 내일 관아로 오라 카등가?”
나구는 낫을 담벼락에 내려 놓고 김씨에게 물었다.
“오라카만 안가고 배기겠는가? 하도 무서바서 하매부터 베로 다리를 싸매놨네.”
김 씨는 신음소리를 내며 베를 돌려서 허벅지를 칭칭 담고 있었다.
“곤장 들어가면 베로 싼들 무슨 도움이 되겠소. 살이 뭉그라지고 피가 터지고 한바탕 저승길로 드깠다 나와야되지. 이노무 숨질이 안끊기고 사는 게 희안하지. 내일은 가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봅시대이. 담 장날까지 동포를 맹글라 바친다고.”
그러나 김 씨는 정나구의 말을 듣는 듯 아니 듣는 듯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정나구는 나머지 세 집을 둘러보고 혀를 끌끌 찼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였다. 관아에 가서 매를 맞게 되면 살아올지 죽어올지 알 수가 없었다. 대문만 나서면 죽어 들어오는 노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요즘 들어서는 재 너머에 호랑이도 자주 나타난다고 하니 호랑이 밥이 될지 곤장밥이 될지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이다.
“저녁에 우리 집에서 다섯 집이 모이도록 하세.”
정나구는 김 씨에게 이르고 낫을 들고 냇가로 나갔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시내에는 올챙이가 가득 했다. 꼬리를 흔들며 헤엄을 치는 걸 보니 곧 개구리가 될 놈들이었다. 나구는 냇가에 놓인 식돌에다 낫을 갈았다. 스윽삭스윽삭 낫 가는 소리를 들으니 어금니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다시 화가 바글바글 솟아올랐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살기 힘들만 한 판 저질라 뿌리자’
내일 가서 또 매찜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 나구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살기에 차서 낫을 갈아재낀 후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넓게 사면이 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바람 탈 일도 없고 홍수와 가뭄만 아니면 먹고 사는 게 풍족했었다. 초겨울이 되면 곶감을 깍아 설날이 되면 먹었고, 산밭에 심은 면화도 풍족했으며 산자락마다 심어진 뽕나무는 누에의 먹잇감으로 집집마다 부업이 착실했다. 그러나 연이은 가뭄은 창고를 텅 비게 만들었고, 먹고 입기 위해 갈무리 한 것들은 모두 세금으로 빼앗겨 버렸다.
나구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린 아들 도치와 병든 아내를 생각하면 어디 깊은 산골로 들어가서 화전이나 일구며 사는 게 더 나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우선은 관아에 잡혀가서 당한 매질에 앙갚음을 하고 싶었다. 오복이의 말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고 벌떡벌떡 화를 돋우고 있었다. 나구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번쩍 빛이 나는 낫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을 불렀다.
“도치야, 아부지는 할 일이 있응께. 니는 어무이 모시고 산골로 드가라. 여서 계속 살만, 양반이 아니니 과거를 볼 수도 없고 나 맨치로 맨날 세금에 시달릴낀께 세금 없는 데로 가야 한다”
어린 도치는 아버지가 하는 말의 뜻을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부지 맨치로 살만, 지 목숨도 이숫기 힘들어여.”
정나구는 목소리를 낮추어 아들에게 나직하게 일렀다. 그러나 열 살 도치는 당당하게 아버지에게 대답을 했다.
“아부지, 저는 아부지맨치로 안살거라요. 사람들 모다가지고 포졸들을 물리칠끼라요.”
정나구는 깜짝 놀라 얼른 아들의 입을 막았다.
“안되여. 포졸들한테 달려들만 목숨 날아가여. 지금 세상에서는 남자는 목숨만 달리면 군포부터 내야항께 세금때메 지대로 못상께. 내가 말한 데로 가야되여.”
도치가 울먹이며 나구에게 매달렸다.
“그만, 아부지는 어쨀라고요? 아부지는 어데 살고, 어무이하고 지하고만 산속에 드가라 카시오?”
나구는 어린 아들에게 잘 새겨들으라며 손을 잡고 당부를 했다.
“나는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 일을 하만, 니하고 니 어무이하고 목숨이 위태로와서 피해야 되어. 너 오늘 낮에 동포를 내지 않으면 니 잡아간다 카지 않았나? 그 맨치로, 내가 머를 하만 니하고 어무이하고 잡히강께 내빼야지.”
나구는 생각난 김에 일을 저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꼭 가져가야할 짐을 챙기라고 했다. 깊은 산골에서 화전을 일구며 사는 친척을 찾아가게 할 생각이었다. 마음이 약해지만 세 식구가 모두 죽게 될 처지였다.
“좋은 세상 오만, 그때 니는 좋은 일 하민서 살아래이.”
도치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옷자락에 매달리기만 했다. 그러나 나구는 당차게 아들을 밀어내며 떠날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구의 아내는 잔기침을 하며 살기 띤 남편의 모습에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이미 정나구는 가슴에서 활활 타고 있는 불을 끄지 않기로 결심을 해 버렸다. 저녁이 되자 나구는 사랑방에 이웃집 사람들을 불렀다. 오복이와 김 씨, 이 씨, 문 씨가 모였다.
“내일 관아로 들어오라 카는데 갖고 갈 동포가 없응께 어째만 좋아여?”
네 사람은 모두 말이 없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 후에야 오복이가 입을 열었다.
“밤 봇짐 싸가지고 전부 산 속으로 내뺍시대이. 어차피 지금도 화전 일군다케서 굶어죽겠는가요?”
그러자 환갑이 지난 김 씨가 힘 없는 소리로 대답을 했다.
“나는 나가 많아가이고 여를 뜨만 얼매 몬가서 죽어여. 밤 보따리를 싼다케도 밤시도록 산길로 내빼야 되는데 몸이 이래가이고 마이 걷도 모해. 다섯 집 중에서 한 집이라도 남으만 혼줄이 날낀데, 참말 딱하네. 네 집만 떠나고 나 혼자 남아서 곤장을 다 우째 할 수가 있겠는가? 어차피 죽을 목숨인께 내 생각은 하지말고 갈라카만 가시오.”
김 씨의 말에 네 명은 다시 숙연해졌다.
“살 궁리를 하는기지, 어르신 죽으라 카는 게 아니라요. 당장 내일 떨어질 불똥을 어째만 좋은가 생각해 보입시대이.”
정나구는 다시 네 명에게 물었다.
“방법이야 뭐 있겠으요? 가가지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야 되지요.”
볼이 움푹 패인 문 씨가 촉기 잃은 눈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한 마디를 던지고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다섯 사람은 서로 한숨만 쉬다가 밤이 깊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정나구는 터벅터벅 골목길을 걸으며 하루 빨리 농민들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새벽이었다. 사립문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정나구는 일찌감치 논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마당으로 나섰다가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는 뒷마을 을식이와 마주쳤다.
“어이, 나구! 내가 지금 뽕잎을 마이 따야 돼서 카는데 좀 도와봐요.”
을식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구의 손을 잡았다. 나구는 할 일이 태산 같았지만 을식이 재촉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따라 나섰다. 마을 뒷산에 뽕나무를 가득 심은 탓에 새순이 그득해서 누에를 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올해도 누에는 풍년일세, 뽕잎이 이렇게 많으니 누에 팔자가 우리보다 낫겠네.”
나구는 여린 새순을 손으로 훑어서 가마니에 담았다. 풋내가 코를 찔렀다. 을식이가 낫을 건네주며 일렀다.
“그렇게 하만 한나절 걸리도 마이 모따네. 낫으로 줄기를 비도록 하게.”
나구는 낫으로 뽕나무 가지를 쳐냈다. 발밑으로 떨어진 가지를 한꺼번에 모아서 바지게에 넣을 참이었다.
“진주 소식 들었나? 오복이가 자시 듣고 왔드만. 우리도 이래 있지만 말고 인나야 하지 않겠나? 암만 일을 해도 관에다 바치고 나면 먹고 살 수가 없잖은가.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구가 낫질을 하는 손을 멈추었다. 오복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일을 누가 주동을 하겠는가요? 실패하만, 목숨이 날아가고, 성공한다캐도, 얼마 뒤에는 잡히가 죽임을 당할낀데, 거사를 하잔 말이라요?
나구는 일부러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날마다 누에 크는 걸 보만,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싶어여. 그치만 이래 키운 누에를 결국 다 가져가다시피 하는 기 누구냔 말이라? 관에다 바치고 양반들이 뺏아가고 남는 기 없는 건, 농사를 짓는 자네나 마찬가지란 말이라. 그라이 진주 소식이 나무일 겉지가 않네.”
을식이는 뽕잎에 코를 킁킁대고 누에처럼 맛을 보았다. 나구는 산자락 아래로 펼쳐지는 고을을 바라보았다. 무논에 산 그림자가 드리워서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다. 온 세상이 봄을 맞아서 윤기가 흘러내렸다. 그런데 사람만이 가슴에 분노가 치솟고 있을 것이다.
“오늘 우리 다섯 집은 관아에 호출이라. 가서 얼매나 맞을랑가 몰라여. 걸어가 집에 돌아올 수 있을랑가?”
나구는 화가 난 김에 낫질에 힘을 주어서 뽕잎을 되는 대로 쳐냈다. 뽕잎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허공에서 흩어지는 이파리가 나구의 얼굴로 떨어졌다. 을식이는 나구를 쳐다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우리 오가도 동포를 아직 못내서 재촉을 당하고 있네. 우리도 아마 내일쯤에 관아로 끌리가야 될끼라. 그래가 말인데 맨날 이래 참고만 있어야 되겠는가?”
나구는 그 말을 낚아챘다.
“그렁께 우리가 전부 장날 모이기로 하세. 내일 우리 다섯 집에 연락을 할텡께 자네는 자네 이웃 오가에 연락을 하고 이래 가지고 뜻이 있는 사람들을 장날 모이라고 하세.”
“그래서?”
오복이가 낫을 떨어뜨리며 나구에게 물었다. 나구의 동공이 부풀어 올랐다.
“한판 하는 거지. 관아로 쳐들어가는 거라. 부사 목줄 따고, 관졸들의 귀싸대기도 때리고 불도 지르는 거라.”
오복이는 뒤로 쓰러지듯 넘어지며 단말마의 목소리로 외쳤다.
“그걸 누가 한단 말이라? 잡히마 목숨이 날아가는데.”
“목숨이야 한번 가는 것, 이래 가나 저래 가나 마찬가지 아이라? 모이만, 누군가 주동인물이 나올 거라.”
나구가 강단지게 쏘아 부쳤다.
“설마, 자네가 주동할라 카는 기는 아이지?”
을식이는 나구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물었다. 그러나 나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낫을 내리고 흩어진 뽕잎을 주워서 을식이의 바지게에 얹어 주었다. 그리고 말없이 발길을 돌렸다. 넋이 나간 을식이가 나구의 뒷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골목길이 어수선했다.
“오늘까지 동포를 못 낸 사람들은 관아로 오라켔는데 머해여? 빨리 관아로 걸어가.”
포졸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왔다. 모여 있던 다섯 사람들이 줄행랑을 쳤다. 그러자 포졸들이 달려 나갔다. 오복이는 벌써 을식이네 뽕밭으로 사라져갔다. 김 씨와 문 씨가 포졸들에게 잡혀 끌려왔다.
“빨리 관아로 가라. 내뺄 생각은 하지 말고.”
포졸들이 으름장을 놓았다. 김 씨와 문 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죄인처럼 포졸들을 따라 걸어갔다. 정나구도 그들의 뒤를 따라 나섰는데 앞서 가던 포졸이 갑자기 나구의 옆구리를 낚아채며 발로 걷어찼다.
“아이고, 푹!”
정나구는 여지없이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포졸들이 두 명 달아들어 나구를 밟으며 소리 쳤다.
“내뺀 놈들 잡아 와래이. 안그라만 니는 죽을 줄 알아라.”
정나구는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옆구리로 종아리로 가슴팍으로 날아오는 억센 발길이 단말마의 고통을 주었다.
“오늘 중으로 잡아서 관아로 안델꼬 오만, 우리가 다시 니를 잡으로 올끼다. 그라만 죄가 두 배로 늘어날팅께 알아서 행동해래이.”
포졸은 정나구를 놓아 주며 오복이를 잡아 오라고 했다. 정나구는 길가에 우두커니 앉아서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아직 맞은 데가 쑤시고 아팠다. 일어서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허리에 강한 통증이 왔다. 정나구가 느티나무를 잡고 일어서려는데 도치가 엉엉 울며 달려왔다.
“아부지. 지를 잡으시오.”
“아이 야야. 도치야. 니 어디서 오는 기가?”
“아부지 맞는 거 다 봤어요. 저키 나쁜 포졸놈들이 어댔어요? 아부지가 뭔 죄를 지었다고 이키 때린다 말이라요. 아부지. 이라지 말고 차라리 산속 깊이 드가서 살아요.”
눈물을 훔친 도치는 어린 등을 내밀며 정나구에게 업히라고 하였다. 그러나 정나구는 여리디 여린 아들의 등에 업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엉거주춤 일어설 수도 없는 몸을 일으키며 아들에게 손짓을 했다.
“어여 집으로 드가라. 내가 알아서 할틴께. 너는 모른 칙 하고 어여 드가라.”
정나구는 아들에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들킨 것이 화가 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돌아가라고 자꾸만 손짓을 했다. 그러나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정나구를 부축했다.
“아부지. 제 손 꼭 잡고 걸으시오.”
정나구는 아들의 손을 잡고 결리는 옆구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겨우 중심을 잡았다. 하루 종일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맞기까지 했으니 기운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어디에서 소식을 들었는지 허우적거리며 아내가 달려왔다. 아내는 정나구를 보더니 울먹이며 등을 내밀었다. 도치가 부축을 해 주어서 겨우겨우 아내의 등에 업혔다. 아내는 정나구의 몸이 너무 무거워서 잘 걷지 못했다. 두어 걸음 걷고 나면 주저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곤 했다. 정나구는 스스로 일어나서 걸어야지 생각했지만 아내의 등에서 까무룩 정신을 놓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정나구는 일어나질 못했다. 포졸이 너무 심하게 발길질을 해서 옆구리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아내는 피멍을 없애려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치자를 갈아서 붙이기도 하고 약초를 붙이기도 했다. 도치는 아버지 곁에서 눈물을 훔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설상가상으로 관아에 끌려 갔던 김 씨와 문 씨도 초죽음이 되어서 돌아왔다. 마을이 온통 초상이 난 것처럼 통곡과 신음소리로 가득 했다.
나구는 희미한 정신 속에서도 도치에게 말을 전했다.
“니는 이래 살만 안된다. 깊은 산골에 드갈 준비를 해라.”
도치는 아버지를 쳐다보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소년은 주먹을 어루만지며 분노를 삭였다. 아버지를 때린 포졸들을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런 힘이 없었다. 주변이 모두 관아에서 맞고 돌아온 사람들뿐이었다.
게다가 전염병마저 돌았다. 홍역이 한번 쓸고 가면 마을에는 죽은 아이들이 늘어서 산골짜기 한쪽이 애기무덤들로 가득 찼다. 어제도 이웃에 사는 아이 한 명이 죽어 나갔다. 도치는 두렵고 무서웠다.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것 같은 포졸들이 무서워서 어디로든지 도망을 치고 싶었다.
(다음주 일요일에 계속됩니다.)
'소설 > 경상도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상도편(6회)-정나구의 아들 도치를 만나다 (0) | 2015.07.12 |
---|---|
경상도편(5회)-해월이 만나는 사람들 (0) | 2015.06.28 |
경상도편(4회)-잠시지만 해방세상을 맛보고... (0) | 2015.06.21 |
경상도 동학(3회) -성난 농민들, 부사는 도망가고 협상 나온 관리는 뺀질거리고 (0) | 2015.06.14 |
경상도 동학(2회) - 정나구, 양반과 손을 잡고 거사를 준비하다. (0) | 2015.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