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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경상도편

경상도 동학(3회) -성난 농민들, 부사는 도망가고 협상 나온 관리는 뺀질거리고

 

 

 (생존을 위협받는 농민들은 돌멩이를  들고 일어서지만...)

3. 타오르는 불


 드디어 다음 장날이 되었다. 감나무 아래로 모여든 농민의 수는 백여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정나구는 징을 치며 사람들을 모았다. 징소리는 봄날 장터를 울리며 긴 여운으로 사람들이 가슴 속으로 퍼져 나갔다. 감나무 여린 새싹이 한들거리며 바람에 날리고 하늘은 파랬다. 정나구가 치는 징소리는 이제 막 나온 약초들을 들고 혹은 봄나물을 들고, 갓 자란 채소들을 들고 나온 장꾼들을 울렁거리게 했다.지이잉 지이잉 징소리가 퍼져 나가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관아로 갑시대이. 세금 때문에 살 수가 없으니 관아로 가서 부사를 만나가지고 조정을 하도록 합시대이.”

 누군가 걸걸한 목소리가 큰 소리로 대중을 선동했다.

 “옳소, 관아로 가서 성을 차지하고 우리의 의견을 전하도록 합시다.”

 성난 농민들이 박수를 치며 관아로 가자고 했다. 농민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낫과 호미, 괭이들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김일복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당장 관아로 가는 것은 일을 그르치는 것입니대이. 여기에서 우리가 세금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 의견을 먼저 모아가지고 관아로 가야 합니대이. 뒤죽박죽 개인 의견이 나오면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대이.”

 “맞소.”

 누군가 맞장구를 쳐 주었다. 주름진 얼굴에 상투가 다 빠져 나간 사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 전정으로 물리는 세금부터 어떻게 조정해 봅시대이. 세금을 지금의 반으로 줄여야지 하지 않겠소. 너무 많은 세금을 내라고 하니 살아갈 수가 있겠소. 이대로 가다는 모두 굶어 죽을 것이오.”

 그러자 다른 쪽에서 함성 소리가 들렸다.

 “아니라요. 지금 열 냥을 내라고 하는데 다섯 냥을 내어도 농사짓고 남는 게 없어요. 두 냥이 가장 알맞습니대이. 일년내내 고생해가 먹고 살 거는 남아야지 안 돼요? 관리들만 살 판이라요.

 “옳소. 좋습니대이. 두 냥으로 낮추도록 합시대이.”

 농민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누가 뜻을 전달했는지 솟대에 노란 깃발을 달고 나왔다. 한 떼의 관군들이 몰려 왔다. 수십 명의 포졸들은 농민들의 수가 기백명이 넘는 것을 알고 슬그머니 뒤로 빠져 나갔다. 그들은 먼지를 일으키며 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정나구는 포졸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리고 김일복에게 속삭였다. 

 “낫과 호미만 가져 오지 말고 다음 장에서는 죽창이라도 무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대이. 저 놈들이 숫자 때문에 그렇지 지금 우리를 몹시 낮차서 봐여.  언제 덮칠지 몰라여.”

 “옳은 말입니대이. 다음 장날에는 옆집 뒷집 마캉 데리고 모두 무장을 하고 나와여.”

 김일복도 표정을 굳히며 야무지게 대답을 했다. 김일복은 다시 무리들 속으로 들어가 외쳤다.

 “우리 요구대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요. 그라이 조정을 하도록 합시대이. 결가는 마지기당 열 냥으로 내라고 하나 너무 많으니 다섯 냥을 요구하도록 하는 게 어땔까요? 두 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 거라요.”

 대중들이 소리를 지르며 반대를 했다. 김일복은 일순 당황했으나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리며 다음 문제를 꺼냈다.

 “오인 가구 당 동포 두 필을 내라고 한 기는 한 필씩으로 줄가서 내도록 합시대이.”

 그러자 군중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 집에서 동포 한 필을 내는 기 더 알맞지 않소? 다섯 집에서 한 필을 내는 것도 너무 많아요.”

 김일복이 정나구를 건너다 보았다. 정나구는 굳게 입을 다물고 군중들의 반응만 살피고 있었다.

 “오가구 작통법을 십가구 작통으로 바꿉시대이.”

 늙수구레한 사내가 큰 목소리로 의견을 내며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럼, 일단 한 필로 줄이자고 의견을 결정하고 선무사와 담판을 짓도록 해봅시다.”

 김일복이 군포 문제를 정리하며 환곡의 문제를 꺼냈다.

 “누가 빌려 간지도 모르는 환곡 500섬에 대한 이자를 마을 사람들에게 모두 물어내라고 하니 이것은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닌데 이 문제를 우쨀까요?

 그러자 정나구가 나섰다.

 “그 환곡은 관리들이 잘못한 거라요. 그노마들이 곡창을 열어서 슬슬 빼어 먹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빌려 주고 정리를 안 한 것일 수도 있소. 우리들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라요. 그런데 그거를 애매한 백성들한테 물어내라카이 이거는 관리들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는 일이라요. 백성은 죄가 없소. 개인이 빌린 환곡을 갚기도 힘든데 우리가 그까지 책임질 필요가 없는 기라요. 500섬 환곡은 갚을 수 없어요.”

 정나구의 말에 군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만세를 불렀다.

 “그건 갚지 맙시대이. 그 너마들이 빼 돌린 거라요.”

  김일복은 당황했다. 관아에서 그 말을 받아들여줄 리가 없었다. 환곡을 담당하는 관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기필코 그것을 백성들에게 나눠서 물리려고 할 것이었다. 김일복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라요, 물론 여러분들이 빌려 쓴 것은 아니지만 관리들이 없어진 환곡을 채워 넣으려고 하기 때문에 우쨌든동 짐을 지울라 칼겁니다. 현실적으로는 부담액을 줄여야지 아주 못낸다 카만 갈등이 더 커질 겁니대이.”

 그러나 정나구가 얼굴을 붉히며 반론을 제기했다.

 “아니라요. 백성들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억울하게 계속 당하면 안됩니다. 이번 기회에 백성들도 살아 있다는 것을 보이줘야 합니다. 안그라고는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될 거라요. 우리들이 수백년 동안 뺏겨왔고 지금은 수탈이 가장 심한 때라요.”

 “옳소! 그렇게 합시대이. 물러서면 안되여.”

 정나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군중 속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김일복은 당황했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면서 정나구가 하는 말에 대해서는 찬성을 하는 게 못마땅했다. 정나구가 하는 의견이 관아에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자신은 절충안을 만들고 현실적인 제안을 제시하고 있는데도 군중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정나구는 더욱더 힘찬 목소리로 말을 했다.

 “여기에서 물러서서는 안됩니대이. 우리의 의견이 안받아들이지만, 디시 시기 항의를 해야 될거라요. 우리는 환곡을 한 톨도 갚아서는 안되고 결가나 동포도 최대한 줄여서 내야 합니대이. 우리가 먹고 살만한 양식을 냅두고 뺏아 가야지, 농사를지 가이고도, 허구헌날 굶다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빼 빠지게 농사를 지야 되는지 더 이상 물러서서는 안됩니대이.”

 군중들의 함성 소리가 높아졌다. 그들은 가지고 온 농기구를 흔들며 정나구의 말이 옳다고 소리를 질렀다.

 “옳소!”

 “관아로 갑시다!”

 “여서 이러지 말고 이젠 관아로 쳐들어가서 우리의 의견을 전합시대이.”


 군중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앞자리에 선 농민들이 누군가 나팔을 불었다. 나팔 소리가 울리자 그것이 신호가 되어 징과 함께 꽹과리와 북이 터졌다. 농민들은 꽹과리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 일단 노래가 터져 나오자 겉잡을 수가 없었다. 농민들이 미친 듯이 앞을 향해 달리며 굿판이 벌어진 것이다.

예기치 않는 일이었다. 정나구는 좀 당황했다.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행렬이 움직이기 전에 말을 맞춰야 하는데 이미 선두에서 이동이 시작되었고 행렬을 멈출 방법이 없었다. 정나구가 소리를 질렀지만 노랫소리에 묻혀 버렸다. 어느 순간 노랫가락은 이제 함성으로 바뀌었다.

 “관아로 가자!”

 “결가를 줄이도록 하자!”

 “환곡을 없애자!”

 농민군들은 낫과 쇠스랑, 호미, 혹은 죽창까지 들고 있어서 걸음소리와 더불어 쇠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판으로 퍼져 나갔다. 그 소리를 듣고 양민들이 담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혹은 길가로 나와서 구경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고을부사 못지않게 긴장한 사람들은 양반들이었다. 양반들은 농민들이 뭉쳤다는 소리를 듣고 피난할 차비를 차려 놓고 있었다. 성난 군중이 덤벼들어 양반집에 불을 지를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상주성을 지키던 부사 한규석은 첨병이 달려와서 농민군이 이동을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혼비백산했다. 그는 관군들에게 무장을 하고 농민군과 싸울 준비를 하라고 이르며 무기 창고를 열어서 화승총과 화약을 내주었다. 그는 농민군의 범위가 수백 명이라는 보고에 어쩔 줄 몰랐다. 진주에서 부사의 목이 베어졌다는 소식은 이미 모든 관리들에게 전해져서 이방은 아침부터 끙끙거리다가 몸이 아프다며 집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그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농민군을 대상으로 싸우는 것은 개죽음이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려놓고 관사로 들어가 바랑에 금붙이를 찾아 넣었다.

그리고 슬금슬금 북문으로 걸어갔다. 병사들이 눈치 채지 않게 그는 성을 점검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슬쩍 북문을 빠져 나온 뒤 재빨리 평복으로 갈아입었다. 아무도 그가 부사인지 알 수 없었다. ‘벼슬을 하면 무엇하랴, 목숨이 제일이지. 농민군에 잡혀서 죽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 아니냐!’ 그는 북쪽을 향해서 줄행랑을 쳤다. 부사는 미친 듯이 달리다가 성을 뒤돌아보았다. 어느새 농민들이 벌떼처럼 성으로 몰려 들어가고 있었다.


장터에는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흙바람이 일었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며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스산한 기운이 돌자 농민들의 고함소리가 더 커졌다. 대낮인데도 어둑해졌다. 회오리바람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며 농민군의 행렬은 관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꽹과리 소리는 더 높아졌고 바람 소리와 농민들의 함성소리가 합해서 괴이한 소리가 파도를 치듯 들판을 휘돌았다. 누가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괴성이었다.

 징소리, 북소리, 꽹과리 소리는 점점 더 세차게 울려 퍼졌다. 농민들이 급류를 타듯 빠른 걸음으로 성 앞에 도착했다. 금방이라도 성벽을 부술 것만 같았다. 무장한 관군들이 놀라서 성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사 나으리, 난리가 났습니다요. 농민군들이 쳐들어 왔어요. 한두 명이 아니라요. 빨리 명령을 내리십시오.”

 공방이 부사의 관사에 가서 애타게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공방은 이상해서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은 텅 비어 있었고 부사가 귀중품을 넣어두는 서랍이 텅 빈 채로 나동그라져있었다.. 공방은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찼다.

 “아니, 농민군이 쳐들어왔는데 고을 부사가 내빼만 성은 누가 지킨단 말이라?”

 공방은 터벅터벅 성벽으로 돌아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낫과 죽창을 든 농민군들이 수백 명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농기구로 무장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관군에게는 총과 화살이 있으니 두려워할 일은 아니었다.

 “부사는 나오라! 그리고 우리들은 요구를 들어라.”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하늘이었다. 한 사내가 군중의 앞으로 나와서 소리를 질렀다. 공방이 앞으로 나아갔다.

 “부사는 출타중이라. 할 말이 있으만 우리에게 해라.”

 공방은 화승총을 한 방 허공에 쏘았다. 농민군들의 행렬이 총소리를 듣고 주춤했.

 “아이라. 빨리 안 나오만 목숨이 위험항께 빨랑 얼굴 내밀으라 캐라!”

  농민군 속에서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방은 부사가 떠났다는 사실을 농민군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간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저들이 물러나게 해야 했다. 저들과 싸워서 좋을 일이 없었다.

 “부사는 몸이 편찮아서 쉬러 갔다. 긍께 다음에 오만, 기별을 해가 나오라 할낑께 요구를 말해라.”

 공방의 외침에 군중들이 수런거렸다. 공방은 예기치 않는 상황이 발생할까봐 화승총을 꼭 쥐고 있었다. 저들이 금방이라도 낫과 곡갱이를 들고 덮친다면 화승총에 불이 붙는다 해도 관군들의 피해가 늘어갈 터였다.

 “좋다, 우리들은 부사를 만나가 결가와 군포 그리고 환곡에 대해서 담판을 질라 칸다. 만약 다 내라카만 이 성을 다 뿌사치울끼라. 긍게 부사에게 다음 장날에 나와서 우리들 말을 들으라 캐라!”

 공방의 다리가 후둘후둘 떨렸다. 공방이 뭔가 대답을 하려고 고개를 내밀었을 때 농민군들이 소리를 질렀다.

 “우우우우! 이대로는  못가여. 성을 다 뿌수자. 우리들 힘을 함 보이주고 가자.”

 공방은 총을 꼭 쥐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저 많은 농민군들이 성벽을 타고 오르면 한바탕은 전투가 벌어질 터였다. 그것은 막아야 했다. 그는 재빨리 군중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부사에게 기별을 보내겠다. 다음 장날은 부사가 직접 나서서 협상을 하도록 할낑께 오늘은 고마 돌아가라!”

 그러나 분노에 찬 농민군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성으로 돌을 던졌다. 공방이 화승총으로 몇 발을 쏘아댔지만 무서워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날아온 돌멩이가 성벽을 부딪치고 떨어졌다. 어떤 것은 성안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관군들은 돌멩이에 맞지 않으려고 뒤로 물러서서 농민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방의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

 “공격하지 마라, 자들은 가진 기 돌삐 빽기 없다. 긍께 돌삐 떨어지만 스스로 물러날팅께 보고만 있으만 된다.”

  공방은 누대에 올라서 농민군을 내려다 보았다. 그들의 함성은 크고 분노에 차 있었다. 그대로 방치하면 다음 장날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 같았다. 저들을 달래야 했다. 부사는 떠났으니 누가 저들을 달래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예천과 성주에 세금을 조정할 특사가 파견되었다고 하니 그 사람이 와서 조정을 해야 할 터였다.

 그는 인근의 부사들에게 사찰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사는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었지만 성이 점령되는 것은 막아야 했다. 회오리바람은 점점 더 세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농민군들이 이리저리 휩쓸리며 비를 피하기 위해서 여염집의 처마 밑으로 이동을 했다.

 “오늘은 하늘이 도와주는구나!”

 공방은 흩어지는 농민군의 대열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라도 공격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돌멩이들이 농민군의 숫자만큼 많았다. 그는 쓸쓸한 발길을 돌려서 부사의 관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인근의 부사들에게 보낼 서찰을 쓰기 시작했다. 


 다음 장날을 기다리기도 전에 4월 27일 선무사 이참현이 파견되었다. 이참현은 상주 고을에 들어서자마자 동대청으로 농민들을 불러 들였다. 삼정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토지의 소유량에 따라서 대민대표와 소민대표를 선정하고 삼정에 대해서 협상을 시도했다. 농민들은 재빨리 모임을 열고 대표를 선정했다. 대민대표로 김일복이, 소민대표로 정나구가 나섰다.

 농민대표들은 서로 입을 맞춘 뒤 관아의 동대청으로 나아갔다.

 “자, 농민대표들이 삼정에 대해서 부담할 수 있는 액수를 먼저 제시해 보시오.”

 선무사 이참현은 자신에 차 있었다. 마치 자신이 세금을 징수하는 장본인이라도 되는 양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느물느물한 미소를 띠며 먼저 대민대표에게 물었다. 김일복이 냉정하게 의견을 냈다.

 “군포는 한 필로 줄여 주시오. 두당 두 필은 너무 많습니대이. 마을별로 오가구당 열 필을 내라카는 거는 내지 말라카는 거랑 같습니대이. 그리고 결가는 5냥으로 정하는 게 적절할 것 갔습니대이. 환곡은 우리가 빌려간 기 아닝께 우리들한테 거다서는 안됩니대이.”

 이참현은 대민대표의 말을 받아 적으며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무적인 자세로 대민대표를 바라볼 뿐이었다. 소민 대표인 정나구는 그런 이참현의 표정을 자세히 살피며 왠지 모를 비애감을 느꼈다. 이 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 아니라 농민들을 능멸하기 위해서 온 것인지도 몰랐다. 또한 이참현이 대민대표를 바라보는 눈빛과 소민대표인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이참현은 정나구쪽을 바라보며 무시하듯 물었다.

 “소민대표도 생각이 그러한가?”

 정나구는 이참현을 쏘아 보며 입을 열었다.

 “대민과 소민은 입장이 서로 다릅니다. 수확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을 함께 세를 매기는 것은 소인들에게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라요. 소민들은 수확물이 더 적응께 세금도 더 줄가 주시야 됩니대이.”

 이참현은 헛기침을 하며 정나구의 강한 눈빛을 피했다. 그리고 허공에다 시선을 두며 명령했다.

 “그러니까 요구 조건을 묻지 않느냐!”

 “군포는 동네별로 정해 주시야 됩니대이. 개인당 두 포를 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징수가 과합니대이. 얼라한테도 군포를 매기니 살 수가 없는 거라요. 그카고 결가도 3냥으로 내리야 됩니대이. 열냥을 내고 나만 저들은 먹고 살기 없습니대이. 환곡에 대한 문제는 백성들이 빌리지도 않았는데 원금과 이자를 내라카이 부당하기 짝이 없습니대이. 그기는 환곡을 관리한 자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니까, 마땅히 관리가 물어야 됩니대이.”

 정나구는 이미 농민들의 의견을 모아서 정리해 온 것들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뭐라고? 사라진 환곡에 대해서 이자도 물지 않겠다고? 그 환곡이 어디로 사라졌겠어? 다 농민들이 빌려가서 안 갚은 것이다. 농민들이 저지른 일을 관리에게 뒤집어씌우다니 괘씸하구나.”

 이참현은 마당 한쪽에 침을 툇 뱉으며 혀를 끌끌 찼다. 정나구의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정나구는 이를 악물었다. 그렇지만 어떻게라도 협상을 해야 했다. 그것만이 농민이 살아남는 길이었다.

 “좋다. 오늘 의견은 잘 들었다. 더 생각해 보고 결정은 다음 장날 이곳에서 내리겠다.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리고 다음 장날을 기해서 다시 이곳에 나오도록 해라!”

 이참현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김일복이 정나구를 건너보았다. 구경을 나온 농민들이 주춤하며 뭔가 미련이 남은 듯한 표정으로 물러서지 않고 서 있었다. 김일복이 이참현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렇게 만나자고 했으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말씀을 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캐야 기다리고 있는 농민들에게 뜻을 전달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대이.”

 이참현이 김일복의 말에 바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관에 반발을 했다가는 어떤 일을 당하는지 알지 못하느냐? 세금을 내지 않으면 벌을 받아야 마땅한 게다. 그래도 형편들이 안 좋아서 조정을 해주려고 나라에서 파견을 했는데 관리에게 겁박을 하는 게냐?”

 김일복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참현이 앞으로 당할 일을 상상해 보며 뒤로 물러났다. 정나구가 이참현을 바라보며 한 마디를 던졌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만 우리가 우쨀 거 같습니까? 현명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대이.”


이참현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대청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농민들이 이참현의 따가운 눈초리에 하나둘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김일복과 정나구도 동대청을 빠져 나와 성 앞에 발을 멈추었다.

 “어차피 한 배를 탔으니 서로 협력하도록 합시대이.”

 김일복이 정나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선무사가 대민을 대하는 자세와 소민을 대하는 자세가 마캉 다르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윽박을 질러서 관의 뜻대로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대이.”

 정나구는 눈빛을 빛내며 대처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김일복도 양반출신의 대농이라 입장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일단 다음 장날 협상을 해 보고 그 다음에 행동으로 드가야 될 거 같네요. 농민들을 모다서 다시 성으로 쳐들어가야죠.”

 “엊그제처럼 해서는 안되긌네. 부사가 있건 말건 성안으로 들어가서 곡창을 털어 오도록 하세.”

 김일복도 무거운 표정으로 결단을 내렸다. 정나구에게는 김일복이 입장의 차이는 있어도 크게는 목적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둘은 서로를 격려하며 발길을 돌렸다. 정나구가 마을로 돌아오니 느티나무 아래에서 오복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선무사를 만난 거는 어째 됐나?”

 오복이는 나구를 보자 반가운 기색을 하며 소식을 물었다.

 “우리들 생각맨치는 안될 거 같아여. 우리들 요구사항을 말하라 캤지만, 건성이고 듣는 척만 해여. 이미 정해진 관의 입장이 있고, 우리한테 강요할라카는 심보라. 협상이라카는 거는 시늉만 해여.”


오복이가 쓴 입맛을 다셨다.

 “그것도 모리고 우리들은 큰 기대를 하고 있었네. 결가도 낮춰지고 사라진 환곡도 우리가 안 갚아도 될기라고 생각했지.”

 “시늉을 해야댕께 쪼매라도 줄가주겠지. 근데 그기 뭐 우리들 사는 데는 크게 도움이 안 되니까 하나 마나라.”

 정나구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느티나무 줄기를 흔들며 소리를 높였다.

 “피해를 줄굴라만 협상을 해야되여. 그런데 저들한테는 농민들이 얼마나 무서븐지 보이줘야 마음이 빈할끼라. 지금으로는 그저 지들이 어름장만 놓으만, 우리들이 세금을 낼 수밖에 없다 이래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애여.”

 오복이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였다.

 

(뺀질거리는 관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다음 주 일요일에 계속)

 

2015/06/07 - [소설/경상도편] - 경상도 동학(2회) - 정나구, 양반과 손을 잡고 거사를 준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