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891년 공주 (전회에 이어서)
잠시 후, 부인이 조그만 상을 들고 들어와 동이 곁에 앉았다.
“이제 그만 일어나서 미음 좀 먹자꾸나.”
동이는 그 소리에 주인나리의 손을 놓고 부인을 쳐다봤다.
“자아, 어서.”
그녀가 동이의 몸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워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앉혔다. 그리고는 숟가락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에서 멀건 미음을 떠 입으로 후후 불어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던 동이는 재촉하듯 숟가락이 다시 다가오자 동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물처럼 묽은 미음을 받아 입에서 굴린 후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겼다.
입안이 소태처럼 썼다. 그러나 미음을 떠서 입가로 나르는 부지런한 숟가락의 움직임에 달뜬 마음이 묻어나 동이는 차마 물릴 수가 없었다.
미음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온몸으로 따스한 생명의 기운이 퍼져갔다. 동이는 손가락 끝을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발가락 끝을 움직였다.
살아 있구나. 살아야겠구나. 동이는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미음을 받아먹고 온몸을 꿈틀거렸다.
미음을 먹으면서부터 동이는 빠르게 기력을 회복했다.
동이는 부인과 주인어른의 극진한 보살핌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거기서 또 한걸음을 나아가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몸이 회복되는 것보다 마음의 회복이 더딘 것이 문제였다.
“얘야,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너의 소식을 몰라 애태울 식솔들은 있는 것이냐?”
동이가 기력을 차리자 부인이 동이의 식솔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동이의 눈빛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고개를 크게 저었다.
“혹시, 식솔들을 모두 잃고 혼자인 것이냐?”
동이의 반응에 당황한 부인이 다급하게 묻자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였다.
“세상에 가엾어라. 식솔들을 모두 잃게 혼자 남았구나.”
부인이 동이의 떨리는 손을 힘을 주어 잡았다.
따스한 부인의 온기가 조금씩 동이에게 전해졌다.
그 이후 부인과 주인어른은 동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녀가 미음과 탕약을 받아들이는 것만도 기쁜 듯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넌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야. 살고 싶어서 소리친 거라고! 그러니 어린애 같은 투정 그만 부리고 일어나!”
꿈인 듯 생시인 듯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동이를 향해 소리치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꿈속이었지만 귓가에 생생하게 들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저수지에서 자신을 구해준 선비였다.
“아이는 어떻습니까?”
갑자기 낯설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이는 눈을 뜨지 않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요즘은 미음도 먹고 탕약도 잘 받아먹고 있어서 기운을 많이 차렸어요.”
부인의 목소리였다.
“의령이처럼 될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께서 소중한 인연을 잘 거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저 아이가 어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픕니다.”
주인어른 내외분과 낯선 어른이 동석해 있었다. 동이는 다시금 가슴이 벅차올랐다.
두 사람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감은 눈은 뜨지 않았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2015/06/05 - [소설/이장상미] - 비구름을 삼킨 하늘(5회) - 1장 1891년 공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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