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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변김경혜

꿈이 있더냐(10회) - 벅차오르는 희망, 동학의 뜻은 넓게넓게 퍼져라

칠성이는 동 터오는 새벽, 벽에 기대 앉아 혼자 어찌 해야 할지 방도를 생각하고 있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눈빛은 어느 때보다 반짝거렸다.

스승님이 계셨다면 어찌 했을까?’

칠성이는 돌아가신 곽 할배 생각이 났다. 글을 알아야 한다고, 어린 아이들 대여섯을 모아 작은 서당을 열었던 곽 할배가 그의 유일한 스승이었다. 재미난 이야기와, 넉넉하진 않았지만 틈만 나면 주먹밥이며 군것질 거리를 챙겨주던 스승님. 칠성이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곽 할배가 생각나곤 했다.

칠성아, 너는 아주 큰 힘을 가지고 태어났단다.”

예 스승님, 모두 저보고 장군이 될 거래요. 아버지 닮아서 힘도 세고, 키도 크고요.”

그래, 칠성이는 장군이 될 게야. 갑옷을 입고 칼을 들어 외적에 맞서 싸우는 장군도 있지만 칠성이는 사람을 살리는 장군이 될 게다. 못 먹고 말 못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위해 싸워서 살리는 장군. 틀림없이 그런 장군이 될 게야.”

정말요? 스승님이 그걸 어찌 아세요? , 스승님은 매일 서책을 보시니까, 앉아서 천리를 보시니까, 세상 돌아가는 거 다 아시니까. , 스승님. 꼭 그런 장군이 될게요. 제가 이다음에 장군이 되면 스승님께 큰절 올릴게요.”

칠성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칠성은 굳이 그 눈물을 닦을 염을 내지 않았다. 덩치 크고 힘세다는 말만 들어 온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해 준 스승님이 그리워서, 지금 자기 처지가 비참해서 흐르는 눈물이었다.

장군, 장군. 내 주제에, 백성들은커녕 정인 한 사람조차 지켜내지도 못하는 처지인데.”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눈물이다.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이다.

달리 길이 없다면, 나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할 수밖에.’

칠성이는 결국 마지막 수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태산 같은 졸음의 무게를 견디며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던 칠성이는 마침내 스스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다.

이른 아침, 갑자기 관원 둘과 향리가 칠성이네 집 싸립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원칠성이 어디 있느냐!”

, 무슨 일로.”

칠성 어머니는 부엌에 있다가 황급히 뛰쳐 나오며 향리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굽혔다.

당장 원칠성이를 데려 오너라!”

향리가 고개를 까딱거리자, 관원들이 집뒤짐을 하려 했다.

무슨 일이시오?”

칠성이가 뒤꼍에서 농구를 챙기다 말고 나오며 물었다.

네놈이 원칠성이냐?”

나요, 내가 원칠성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관원 둘이 칠성이를 좌우에서 붙잡아 세워 포승줄로 묶기 시작했다.

왜 이러시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것이오?”

칠성이가 몸을 뒤틀며 향리를 쳐다봤다.

죄가 있고 없고는 관아에 가면 밝혀질 것이다. 가자

겁에 질려 비명도 못 지르고 떨고 섰던 칠성 어머니가 향리와 관원들을 막아섰다.

아니, 대체 왜 이러는 것입니까? 연유라도 알아야지요.”

이렇게 한들 달라지는 게 없으니, 저리 비키시오.”

향리는 칠성 어머니를 밀치더니, ‘헤헴하는 헛기침을 하곤 집을 나섰다. 그 뒤로 관원들이 포승줄에 묶인 칠성이를 붙잡고 따랐다.

 

칠성이가 도착한 곳은 직산관아. 아문을 들어서고 동헌 뜰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잠시 뒤에 등장한 이는 직산 현감이었다. 무슨 일인가 생각하기도 전에 칠성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현감의 뒤에 오가 놈이 엉거주춤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오가 놈은 포승줄도 없는 맨몸이었다.

아차, 뭔가 잘못됐다.’

그제야 칠성이는 일이 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현감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대갈일성을 했다.

네가 오가를 발고한 원칠성이더냐!”

, 그러하옵니다.”

무고히 발고한 연유가 무엇이냐?”

발고문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얼마 전, 저기 저 오가가 왜인들에게 금을 팔고 돈을 받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왜인들은 오가에게 더 가져오면 더 많은 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감나무골 당집에서 거래하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칠성이는 자신이 본 대로 자세히 설명했다.

그렇다면 네가 그 금을 네 눈으로 보았느냐

현감이 물었다.

아뿔싸, 직접 본 것은 아닌데. 어쩌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을 하는 걸 똑똑히 들었습니다.”

칠성이는 끝까지 오가 놈의 죄를 주장했다.

그걸 혹시 같이 본 사람이 있더냐?”

아닙니다. 저 혼자 보았습니다.”

칠성이는 일전에 작정한 대로 혼자 본 것으로 대답했다.

네 이놈, 증좌도 없이 무고한 사람을 발고하면 어찌 되는 줄 아느냐? 네가 말한 당집은 발고문을 확인한 그날 바로 확인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네놈의 눈으로 금을 확인한 것도 아니요 네놈 말을 보증할 사람도 없다. 내 어찌 네놈 말을 믿겠느냐! 네놈의 말만 믿고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씌울 뻔하지 않았느냐! 내 너의 죄를 엄히 물을 것이다. 이놈을 당장 하옥하라!”

현감의 말에 칠성이는 말문이 막혀 당장의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눈으로 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오가놈과 왜인들이 나눈 말을 상현이가 같이 보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현감은 오가 놈과 입을 맞춘 게 틀림없지 않은가.

그때 오가놈이 칠성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네 이놈, 오가 이놈. 내가 보았다. 내가 분명히 보았어. 네놈이 한 짓을 반드시 밝혀 내고 말 테다.”

칠성이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나졸들이 포승줄에 묶인 칠성이를 두들겨 패가며 옥으로 끌고 갔다.

옥사에 갇힌 칠성이는 후회막급이었다.

아아, 경솔했던게 아닌가! 그러나, 달리 길이 없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윤지가 걱정이었다. 오가 놈에게 오라를 씌우지 못한다면 윤지를 빼앗기는 것도 시간 문제가 아닌가. 칠성이는 자기가 갇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뿐더러, 윤지가 금방이라도 왜놈에게 끌려 갈 것만 같아 애가 타들어가는 듯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저녁이 되어갈 무렵 옥사를 지키던 옥장이가 다가와 한심하다는 듯 칠성을 나무랐다.

쯧쯧쯧 젊은이, 자네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나?”

칠성은 분심이 났으나 다른 방도를 생각하는 데 열중하자고 마음을 먹고 옥장이를 외면하였다.

자네 얘기 다 들었네. 여기가 어떤 곳이라고 발고를 해. 오가 같은 놈이 어디 한둘인 줄 아는가? 재수 없으면 걸리는 거고, 재수 있으면 사는 거지. 그 재수란 건 만들기 나름이고. 게다가 오가 같은 놈들이 재수 없이 걸린다고 한들 빠져 나갈 길도 안 만들고 그런 일을 할 성 싶은가? 그뿐인가? 자네처럼 들어온 사람이라도 재물만 쓰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는 게 또 여기야. 내 자네 처지가 하도 딱해 해주는 얘기네만, 오래 지체하면 할수록 속전 값은 더 올라가게 돼 있어. 내 생각해서 말해 두는 것이니 빨리 방도를 찾게나.”

옥장이의 말에 칠성이는 너무나 억울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가 놈이 천안현 향리와 내통하는 상황이라 금광이 있는 직산현에 발고한 것인데,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제 윤지는 어쩌지. 내가 지켜준다고 언약했는데, 오가 놈이 윤지를 그 왜놈들에게 팔아넘기면 어쩌지?’ 칠성이는 너무 억울해 머리를 벽에 퉁퉁 쳐댔다.

그날 밤 원씨는 이희인을 찾아갔다.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이 이희인밖에 없었다.

접장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놈이 윤지와 혼인을 생각하던 상황이라 일이 이렇게까지 됐습니다.”

원씨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겨우 베어 물며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한 몰골로 하소연했다.

원 접장님, 잠깐 생각을 해봅시다. 직산에 황 접장이 있으니 도움을 청할 수는 있을 게요. 돈을 좀 주면 풀려날 수도 있으니 일단 날이 밝는 대로 황 접장을 찾아갑시다. 그런데 칠성이가 풀려나면 오가 놈을 찾아갈 텐데, 윤지라는 처자와 혼인을 생각하고 있다면 가만있지 않을 거요. 어찌 해야 할지?”

원씨와 이희인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았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원씨와 이희인은 직산현 동학접주 황성도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황성도는 직산에서 이름난 선비였다. 상황을 전해들은 황성도는 직산현감을 찾아갔으나 웬일인지 만나주지 않았다. 처음엔 몸이 아프다고 했고 다음날에는 출행을 떠났다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황성도는 이상하다 싶어 향리를 찾았다.

현감이 그리 바쁘신가? 며칠째 만날 수가 없으니. 자네는 잘 알 것이 아닌가?”

황성도가 물었다.

, 근자에 조정에서 공철양에 대한 업무를 강화하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출타하는 일이 많습니다요.”

향리가 눈치를 보며 둘러댔다.

황성도는 이상하다 생각하며 돌아왔다. 황성도는 즉시 삼거리주막을 찾았다. 이희인과 원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황 접장님, 어찌 되었습니까?”

원씨는 애타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상합니다. 예전 같으면 현감이 먼저 찾아와 담소도 나누었는데, 도통 만날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뭔가 큰일을 도모하고 있는 듯합니다. 향리도 아는 눈치인데, 말을 하지 않고.”

황 접주의 말이 끝날 무렵 밖에서 원씨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윤지 아버지였다.

어르신, 저 좀 도와주십시오. 오가 놈이 일을 냈습니다. 저를 관아에 발고하겠답니다.”

윤지 아버지가 이희인에게 넙죽 절하며 애걸한다.

무슨 일로? 발고는 도인님이 하셔야지요.”

이희인이 이상하다 싶어 물었다.

논을 이중으로 팔지 않았는데 이중으로 팔았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면서 나를 발고하겠답니다요. 제가 오가 놈한테 빌린 게 있는데 그걸 갚지 않아 다른 사람한테 논을 판 것이라고요. 이를 어쩐답니까?”

윤지 아버지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정신줄을 놓을 것처럼 황망히 떨고 있었다. 또 눈물을 흘린 듯 했다.

아무래도 이상하네. 우리가 오가 놈한테 놀아나는 듯하이. 그놈이 계략을 쓴 것 같네.”

이희인의 말에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이 접장 말이 맞는 듯하네. 오가라는 놈이 직산현에는 칠성을 붙잡아 두라고 해놓고, 천안 관아엔 윤지 부친을 발고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상황이 이러면 이쪽이 불리하네. 천안 관아와는 유착관계가 오래전부터 있는 듯 하고. 시간을 끌수록 그놈은 더 많은 걸 요구할 걸세.”

황 접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다음 날 오가 놈을 찾은 원씨는 그의 음흉한 속내를 알아차렸다. 긴 곰방대를 잡고 양반 흉내를 내며 앉은 오가 놈은 원씨를 보며 연신 웃어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끼니도 없어 어렵게 살아왔던 오가였다. 동학도는 아니었지만, 원씨가 직접 잡곡 한 됫박을 주자, 머리를 땅바닥에 박아 넣을 것처럼 고맙다던 일도 있었다.

내 길게 얘기하지 않을 테니, 잘 듣게.”

오가 놈은 곰방대를 화롯불에 톡톡 치고는 원씨를 보았다.

윤지가 나이도 차고, 좋은 혼처가 있어 소개를 해 주고 싶은 것이지, 내가 딴 마음이 있는 게 아니네. 내가 중매를 서겠다는 거야. 생각해 보게, 윤지 나이 스물이 넘었지? 퇴물이여. 어디다 시집을 보내기도 어렵고, 형편도 어려우니, 돈 많은 곳에 시집을 보내면, 윤지네도 살림이 필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게 다 술술 풀릴 걸세.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지. 그렇게만 해 준다면 칠성이도 곧 풀려나고 나도 윤지 애비를 발고하지 않을 걸세. 어떤가?”

원씨는 부아가 치밀어 당장 오가 놈 멱살을 잡고 패대기를 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잘 생각해 보게, 빨리 결정하면 칠성이를 빨리 볼 수 있을 것이고, 늦으면 뭐, 헤헤. 잘 결정하세. 뭐 힘든 결정도 아닐 터이니 내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걸세.”

오가놈이 곰방대를 톡톡 털었다.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