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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변김경혜

꿈이 있더냐(8회) - 벅차오르는 희망, 동학의 뜻은 넓게넓게 퍼져라

 

 

오가 놈 마누라는 작년 여름 수마에 죽었다. 갑자기 내린 비는 오가 놈 마누라 말고도 두 명을 더 데리고 갔다. 시신도 찾지 못했다. 마을사람들은 오가 놈의 죄를 마누라가 뒤집어 쓴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오가 놈이 패악질을 하면 마누라가 찾아가 대신 용서를 빌곤 했었다. 오가 놈이 행패를 부리다가도, 마누라 설득으로 더러 중단된 적도 있었다.

진짜, 그 오가 놈이 윤지를.’

원씨도 윤지 아버지의 얘기를 듣자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칠성이와 윤지가 혼인할 작정이란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칠성이가 열아홉 되던 해, 윤지와 혼인하겠다고 원씨에게 얘기했었다. 원씨는 윤지를 이미 며느리로 생각하고 있었고, 윤지 아버지와는 서로 사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원씨는 다음날 목천 이희인 어른을 만나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슬녘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서당으로 모여들었다. 안채엔 상현이 내외가 살고 바깥채엔 어머니가 살고 있다. 조용하던 집은 유선이 삼남매가 살기 시작하면서 활기가 넘쳤다. 막내 아이의 울음소리도 울 밖에서도 들릴 만큼 제법 우렁찼다.

사람들은 하나 둘 안채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공부하던 자리엔 여인네들 말소리가 왁자지껄했다. 마당에 있던 상현이는 댓돌 위에 놓인 신발을 하나씩 집어 들고 어머니와 안사람의 신발만 놓아두었다. 그리곤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회합이 있을 때마다 상현이에게 맡겨진 임무다.

유선아, 동생들 데리고 나오너라.”

상현이가 아이들을 마당으로 불러냈다. 바깥채에 있던 유선이가 두 동생을 데리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스승님, 무엇을 하실 겁니까?”

유선이가 동그란 눈으로 물었다.

스승님이 무어냐! 서당에 있을 때만 스승님이고, 집에서는 아버지라고 부르기로 했잖느냐? 이 아비가 오늘 연을 만들 것이니, 잘 보아 두어라.”

상현이는 준비해 둔 창호지와 대나무를 바깥채 툇마루에 올려 놓더니, 천천히 연을 만들어 갔다. 작은 칼로 대나무 한쪽 끝을 열십자로 쪼개어 네 개로 나누고 정성껏 손질을 하였다.

상현이가 아이들과 연을 만드는 사이, 안채에선 여자도인들의 회합이 진행됐다.

모두 모이셨군요.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내칙>을 공부하겠습니다.”

상현이 어머니가 사람들을 휘 둘러봤다. 칠성이 어머니를 비롯해 여섯이 한방에 앉아 있다. 모두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거기엔 윤지도 함께 있었다.

대선생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세상 만물에는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 했습니다. 대선생께서는 여자노비 두 명을 면천시켜 한 명은 수양딸로, 한 명은 며느리로 삼으셨습니다. 여자도 남자도 차별을 받아선 안 됩니다. 모두 똑같이 귀한 생명입니다. 오히려 여자는 생명을 잉태하는 소중한 존재라 하셨습니다. 생명을 수태했을 때부터 온전한 사람으로 태어날 때까지 몸가짐,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해월 선생님께서는 오늘 공부할 <내칙>에도 좀더 살갑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특히 우리 부인들이 수태했을 때 지켜야 할 생활 태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안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리라 해서 내칙이라고 하셨습니다.”

여인들은 상현 어머니의 말에 집중했다.

대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조금 적어 봤습니다. 먼저 읽을 터이니 들어주십시오.

포태하면 육종을 먹어선 안 됩니다. 바다 고기도 먹지 말고 논에 우렁도 먹지 말며 고랑에 가재도 먹지 말며 고기 냄새도 맡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 고기라도 먹으면 그 고기의 기운을 타고나 사람이 나면 모질고 탁하게 됩니다. 일삭이 되거든 기운 자리에 앉지 말고 잘 때에 반듯이 자고 모로 눕지 말며 채소나 떡이라도 기울게 썰지 말고 울새 터 논 데로 댕기지 말고 남의 말 하지 말며 담을 넘어 댕기지 말며 지름길로 댕기지 말며 화를 내지 말며 무거운 것 들지 말며 가벼운 것이라도 무거우면 다시 들며 방아 찔 때에 너무 되게도 찧지 말아야 합니다. 급하게도 먹지 말며 남의 눈을 속이지 말며 이같이 아니 말면 사람이 나서 요사도 하고 횡사도 하고 조사도 하고 병신도 되나니 이 여러 가지 경계하신 말씀을 잊지 말고 이같이 열 달을 공경하고 믿어하고 조심하십시오. 그러하오면 사람이 나서 몸도 바르고 총명하고 지국과 재기가 사람이 옳게 날 것이니 부디 그리 알고 각별 조심하옵소서. 이대로만 하면 문왕 같은 성인과 고자 같은 성인을 낳을 것이니 그리 알고 수도를 지성으로 하시옵소서.’

어떠신지요? 모두 마음에 새길 법하다고 생각해 오늘의 공부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상현 어머니가 말을 끝내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참 좋은 글 아닙니까? 저는 내칙을 듣고 퍽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예부터 혼인한 여성들이 아이를 가지면 태교라 하여 행동가짐, 마음가짐을 중요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대선생의 말씀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더욱이 임부가 건강하고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하여야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모두 마음에 깊이 새겼으면 합니다. 꼭 아이를 가지지 않았더라도 평소에도 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한 도인이 말했다.

저는 칠성이를 가졌을 때도 평상시나 마찬가지로 일만 해서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가졌을 때인데, 하루는 방아를 너무 오래 찧었던 날입니다. 그때부터 허리가 아파 지금도 고생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것도 들지 말라고 했는데, 많은 여자들이 아이를 가져도 출산 후에도 일을 많이 하게 됩니다. 내칙이라고 하셨는데,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너무 고단한 우리네 형편엔 잘 와 닿지 않습니다. 물론 훌륭한 말씀이고 마음가짐이긴 하지만.”

속내를 잘 숨기지 않는 칠성 어머니가 털어놓자 다른 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칠성이 어머님의 말씀도 맞습니다. 하지만 대선생님께서는 사람이 태어나기 전부터 인성이 갖추어지는 시기, 태아의 시기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일하느라 힘들지요. 그래서 우리 동학도인들은 항상 내칙을 마음에 담아 두어 수태를 한 부녀자들을 위해 서로 도와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한울님이 깃든 아이가 태어나면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아이를 가진 어미를 귀히 여길 줄 알아야 아이도 귀히 여길 것입니다. 하늘처럼 귀한 아이들, 어미들이 있어야 집안에도 평안이 찾아옵니다. 무엇보다 우리 부인네들보다 남자 도인들이 깊이 읽어야 합니다. 해월 선생님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지요. 남편들이 아내에게 읽어 주라 하셨지만, 함께 읽는다고 보아야겠지요. 태교란 부인만의 일이 아니라 남녀 모두, 부부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늘님을 품었으니, 부인이 태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남편이 보살펴 주고 이웃이 함께 일을 거들어 주어야 한다는 뜻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상현 어머니가 칠성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하자 칠성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마음에 새기는 의미로 제가 먼저 말하면 따라 하면서 뜻을 헤아려 봅시다.”

여인들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칙을 따라 읽으며 마음에 새겼다.

하지만, 다른 도인들과 달리 윤지는 내칙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회합에 오기 전 아버지 낯빛이 영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한숨 쉬는 날들이 계속이었다. 별 일 없을 거라고 했지만, 걱정이 잔뜩한 표정을 윤지도 대번에 알아볼 정도다.

회합을 끝내고 윤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삼거리 버드나무길로 향했다. 며칠 전 오가 놈이 다녀간 후 분명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눈치로 넘겨짚었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칠성이는 이미 와 있었다.

흠흠.”

윤지가 헛기침을 했다.

칠성이도 고민에 빠져 있는지 윤지의 기침 소리를 듣지 못하고 발 아래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오라버니!”

윤지의 부름에 칠성은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시오?”

칠성은 다짜고짜, 윤지의 손목을 낚아챘다.

다른 곳으로 가자, 급히 할 말이 있다. 따라 오너라.”

칠성이의 무거운 목소리에 윤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따라 나섰다.

두어 걸음 앞선 칠성의 뒷모습을 보며 윤지는 도대체, 오라버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초조히 생각하며 뒤따랐다.

칠성이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내처 걸어 취암산 아래 작은 초가에 도착했다. 빈집이 된 지 오래된 곳이다. 남몰래 두 사람이 만나던 곳이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칠성이는 애처롭게 윤지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오? 왜 그리 나를 보오? 오라버니, 속 시원히 얘기해 주지 않으면 정말 부애를 낼 테요!”

윤지는 기다렸다는 듯 퍼부었다.

칠성이가 천천히 윤지를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윤지야, 이 오라비 때문이다. 다 오라비 잘못이다.”

무슨 말이오? 속 시원히 얘기 않으면 가 버릴 테요!”

윤지가 칠성이의 가슴팍을 밀쳐내며 옹골지게 몰아붙였다. 윤지도 이제 스무 살을 넘었다. 마을에선 과년하다고 수군대기도 했지만, 홀아버지와 어린 동생들 때문에 혼인을 미뤄 왔다. 그렇게 기다려준 칠성이가 고마워 올해는 넘기지 말자고 둘이 언약한 터였다.

아무래도, 오가 놈이 논을 이중으로 팔아먹고, 너를 차지하려 하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가만있을 성 싶으냐! 걱정하지 마라, 내가 반드시 그놈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칠성이가 입술을 꽉 깨물며 윤지의 얼굴을 살폈다.

칠성이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윤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칠성이 오라버니의 서슬 퍼런 낯빛이 더 걱정스러워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았소, 걱정하지 아니할게요. 오라버니를 믿으니, 내 걱정일랑 마오.”

말을 하면서도 윤지는 속살이 떨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열한 살, 어머니가 매맞아 억울하게 죽은 모습을 볼 때처럼 겁이 났다. 화냥년이라는 누명을 쓰고 멍석말이를 당해 매질을 당한 어머니는 물만 먹다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기어이 세상을 떠났다. 윤지는 그 처참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밤 윤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야반도주라도 하자고 할까? 이제껏 아버지와 동생들을 위해 살았으니. 아니다. 오가 놈이 아버지를 가만 두지 않을 게다. 작년 가을걷이 끝내고 오라버니 말대로 그냥 혼인을 했었어야 하는 건가! , 어쩌자고, 나에게 이런 일이 또 닥치는 것일까!’

윤지는 새벽녘이 돼서야 잠이 들었다.

 

상현아, 사람도 한울이고, 저기 굴러다니는 개똥이나 돌멩이도 한울이라면, 하늘이 왜 이렇게 고통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거냐? 그게 말이 되느냐? 양반은 수백 년간 권세를 누리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우리 같은 놈들은 맨날 일해도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 것이냐? 저 너른 논밭에서 나오는 곡식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느냔 말이다. 그도 저도 다 좋다.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러나 도대체 무슨 죄가 많아 이렇게 짐승 같은 일을 당하면서 살아야 한단 말이냐?”

칠성이가 산 아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이해가 아니되오. 형님. 세상이 다 도적떼로 가득한 것 같소.”

상현이도 답답한 듯 산아래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오가 놈을 어찌 할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칠성이가 얘기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생명은 소중하지. 하지만 난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 생명에 한울님이 있다면 오가 놈 생명에도 한울님이 있다는 거고. 세상엔 선과 악이 있는데, 어찌 악인에게도 한울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냐? 난 이걸 받아들일 수가 없다. 물론 양반과 상민의 차이를 없애고 남녀의 차이도 없앤다고 하니, 그건 이치에 맞는 말인 듯싶다. 하지만 악인에게도 한울님이 있다면 오가 놈 같은 놈들을 우린 어찌 대해야 하는 거냐? 난 그래서 동학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칠성이가 천천히 이야기를 하였지만, 상현은 칠성이의 가슴가득 울분이 가득 차 있음을 눈치챘다.

상현이는 칠성이가 오가 놈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걸 알고 있지만, 칠성이의 말은 꼭 윤지 때문만이 아니라 이치에 맞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칠성이형이 자신보다 서책을 가까이하지는 않았지만, 매 순간 판단은 자신보다 정확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실 상현이도 동학에 입도하며 아직까지 풀지 못한 의문이다.

그래서 어쩌려는 것이오? 오가 놈을 어찌 하려는 게요? 차라리, 윤지와 도망치는 건 어떻소?”

상현이가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물었다.

도망? 내가 그 생각을 왜 안 했겠느냐? 그렇게 우리가 이곳을 뜨면 윤지 아버지는 어찌 될 것 같으냐? 오가 놈을 봐 주는 향리 놈과 또 무슨 작당을 해서 행패를 부리겠지. 아버지 얘기 들어 보니, 두 놈이 짠 것 같다던데. 그럴 게다. 그런 일을 혼자서 했을 리가 없어. 마음 같아선 당장 그 두 놈을 요절내고 싶지만, 숨통을 제대로 끊어 놓을 계책이 있어야 한다. 어찌 재물을 모았는지, 그걸 찾아내면 그놈의 명줄을 잡은 거나 다름이 없을 게다.”

칠성이의 목소리가 진중했다.

계책은 혹, 세우셨소?”

상현이가 칠성이의 얼굴을 살폈다.

오가 놈, 그래, 그놈은 분명 벌을 받아야 한다. 오늘밤부터 난 그놈의 집을 염탐할 거다. 분명 놈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게다.”

칠성이가 결심이 선 듯 얘기했다.

형님, 무슨 말이오?”

상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 사흘 뒤에 염탐할 준비나 해 두어라

칠성이의 말에 상현이는 그러겠다고 약조했다.

<다음회에 계속>

 

 

2015/06/23 - [소설/변김경혜] - 꿈이 있더냐(7회) 벅차오르는 희망, 동학의 뜻은 넓게넓게 퍼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