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의 엄마 집으로 돌아온 숙정은 며칠간 아무 일도 안 하고 잠만 잤다. 엄마는 숙정의 몸이 안 좋아 보인다고 날마다 특별한 건강식을 만들어 먹이려고 하셨다. 집에 더 있자 해도 엄마에게 못할 일이었다. 한국에 아는 친구들은 몇 없고 그나마 그 친구들도 다 가정을 꾸리고 있어 마땅히 기댈 언덕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한 친구가 숙정에게 권했다.
“한겨레 휴센터라는 게 생겼는데, 거기 프로그램이 좋아. 이번 여름에는 공주 마곡사에서 한다더라. 프로그램에 참가해 본 사람들이 좋다고 추천하던데 거기 한번 가 봐. 말 그대로 힐링이 된다던데….”
2013년 8월 초 가장 무더운 여름날 숙정은 3박 4일을 마곡사에 있었다. 그리고 명상 프로그램을 따라 하면서 가슴 답답함이 조금 가시는 듯하였다. 도인 체조도 좋았다. 그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한국의 아름다운 산이 거기 있다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불현듯 떠올랐다. 기인처럼 생긴 강사분이, 키가 많이 크고 빼빼한 몸에 힘이라곤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분이 구수한 목소리로 조용조용 해 주셨던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마당에 물을 버릴 때도 행여 뜨거운 물을 쏟게 되면 생명체가 데일까 봐 한 김 식혀서 뿌렸습니다. 아이를 만나도 공손히 절하고 어른을 만나도 공손히 절하였습니다. 여자와 남자도 서로 한울님 대하듯이 모시려고 했습니다. 양반과 상민이 서로 맞절하였습니다. 관리가 찾아와도, 동네 거지가 찾아와도 똑같은 밥상을 차려 함께 먹었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지 사람을 대하면 한울처럼 귀한 사람으로 한결같이 대접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사람만 그리 귀하게 여긴 것이 아니고 이 땅에 모든 것을 한울님으로 모시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신 분들 중에 저희 외할머니도 계십니다. 저희 외조부모님께서는 육고기는 물론 생선도 일절 드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 사시다 보니 하루는 영양실조 비슷하게 어지러워 길을 가다가 냇가에 앉아서 잠시 쉬고 계셨더랍니다. 그러자 어디선가 새가 나타나 죽은 물고기를 외할아버지 계신 곳에 떨어뜨려주고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신 분들이 바로 동학 도인들입니다. 내년이면 갑오동학농민혁명 120주년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한 삶이 아름답다 여겨진다면 동학 도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 보셔요. 좋은 몸 공부, 마음공부가 될 것입니다.”
그의 말은 숙정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이제까지 숙정은 세계인권선언 제1조를 삶의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살아 왔다. 그것은 ‘모든 사람은 천부인권을 지녔고, 사람들은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청년시절 숙정을 사로잡았던 인권 의식은 어렵고 힘든 세계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기폭제였다. 그런데 인권을 넘어 모든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는 한울사상이라니! 숙정은 그 짧은 강의 몇 마디에 몸 전체가 출렁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만이 생명의 원천은 아니구나. 사람 너머에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거대한 생명의 뿌리가 있었고, 그 진리를 알고 실천한 사람들이 이미 두 갑자 전에 있었다니….
그래서 그분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동학도인들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했다. 그분은 웃으셨다.
“정읍에 있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찾아가 봐요. 동학 공부도 쉬엄쉬엄 하시고요. 그러고도 시간이 나면 천도교 수련원이 있는 경주 용담정에도 한번 다녀와요. 숙정 씨가 국제인권센터 일을 하였으니 세계인들의 삶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아시지요? 어쩌면 숙정 씨는 동학기념관이나 용담정에서 인권을 지키는 삶을 어찌 살아야 할 것인지 그 삶의 모델을 찾는 좋은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겠네요.”
숙정은 지난해 여름 마곡사의 힐링 기억을 잊고 살았다. 마곡사에 머무를 때는 정읍도, 경주도 한번 가보자고 생각했는데 광양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냥 시들해져 별 생각 없이 살았다. 그 사이에 한국 엠네스티 지부에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연락이 왔다. 숙정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런던에서 연락이 왔다.
“숙정아, 나 세리.”
“응, 반가워. 근데 무슨 일 있어. 바쁜 친구가 전화를 다 하고?”
“나 이번 휴가 기간에 한국에 갈까?”
“응. 그거 괜찮네. 얼른 와. 나도 심심했는데 같이 여행 다니자. 내가 한국 여행 가이드 해 줄게.”
숙정은 세리의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날부터 세리와 함께 할 여행지를 물색하는데 마음을 쏟았다. 어디로 갈까? 한국의 대표적 여행지 하면 서울, 경주, 제주도가 아닌가. 서울은 오가는 길에 보고 싶은 곳을 보면 될 것이고, 제주도도 좋긴 하지만 육지 여행부터 해 보자 생각하고 세리와 함께 하는 첫 여행지는 경주로 정했다. 그다음 여행지는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가볍게 움직이자고 생각하니 마음도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았다. 세리가 오는 날이 학창 시절 친구들이랑 수학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기다려졌다.
세리는 남쪽에 벚꽃이 만발한 사월 오일 인천 공항에 도착했고 바로 서울역으로 가서 경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경주역에서 내리자 숙정의 얼굴이 보였다. 서로를 향하여 달려온 두 사람은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숙정, 한국 너무 예쁘다. 기차로 내려오면서 보니까 한국 전체가 온통 꽃밭이야.”
“예쁘지! 영국도 좋은데 한국도 참 좋아. 나도 가끔 봄날 한국처럼 아름다운 산하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내가 정말 아름다운 계절에 잘 왔네.”
“응, 세리야. 너 남자 친구랑 같이 왔어도 좋았을 텐데….”
“뭔 소리, 난 너랑 여행하는 게 더 좋은데. 그리고 그 친구 지금 정신없어. 일이 막 쏟아진다더라.”
“하긴 나도 너랑 둘이 여행하니까 더 좋아. 우리 맘껏 이 여행을 즐겨볼까요, 친구!”
“좋아, 나는 숙정이가 데려가는 곳이면 어디나 오케이.”
“그럼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 불국사부터 가 볼까요.”
숙정은 오랜만에 세리와 함께 깔깔거리고 수다를 떨었다.
불국사 일원은 온통 벚꽃 천지였다. 바람에 벚꽃 잎이 눈 내리는 것처럼 하얗게 날렸다. 나무 아래에 서 있으면 머리 위에도 하얗게 꽃잎이 덮였다. 세리는 나무 밑동에 수북한 꽃잎을 머리 한가득 면사포라도 쓴 것처럼 얹더니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사진기 화면 속 꽃잎을 머리에 올린 친구도, 그 뒤에 배경도 별천지인 것처럼 아름다웠다. 경주 불국사 경내 전경도 자연과 어우러져 숙정과 세리의 환호성을 자아냈다. 전날 새벽녘에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설산 풍경까지 어우러진 사월의 경주는 세리를 흥분으로 이끌었다.
“숙정아, 한국 너무 멋지다. 이리 멋진 나라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지?”
“그거야. 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다 똑같지 않을까? 사랑, 행복, 평화….”
“한국에도 인권 운동이 있겠지?”
“한국의 인권이라….”
한참을 생각에 잠기던 숙정이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 눈빛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아, 맞다. 동학! 용담정! 세리야 우리 용담정에 가 보자. 거기 가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권 운동의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물어물어 용담정으로 가는 길을 찾아가는 틈틈이 숙정은 교과서에서 배운 상식과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총동원하여 세리에게 동학의 사상과 역사를 설명했다. 숙정은 비로소, 자신이 동학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실감했다.
용담정은 경주 시내를 벗어난 곳에 있었다. 용담정으로 들어가는 버스는 몇 사람만 타고 있어 한산했다. 버스에서 내려 용담정 이정표를 보고 몇 걸음 들어가니 현곡 마을 길가에 오랜만에 보는 정겨운 모습이 숙정이의 시선을 끌었다. 무쇠 솥뚜껑을 화덕에 걸어 놓고 할머니가 파전, 감자전을 부치고 계시는 것이었다. 마침 배도 고프던 터라 세리의 팔을 이끌어 화덕 옆으로 다가갔다. 할머니는 부스스한 파마머리 아래로 이마와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을 달고 있었다. 할머니가 두 사람을 보고 웃자 입가에 팔자주름이 더 깊어졌다.
“세리야, 한국식 피자야. 먹고 가자.”
“할머니, 파전 하나, 감자전 하나 맛있게 부쳐 주셔요.”
“오늘 파전도 감자전도 마싯따. 근데 처자들은 어디서 오싰으까?”
“할머니, 우리 전라도에서 왔어요. 할머니, 요 위에 용담정에 사람들 많이 오나요?”
할머니는 전을 잽싸게 뒤집으면서 대답했다.
“어데. 사람들이 불국사로만 많이 가고 여는 많이 안 온다카이. 아는 사람들은 용담정 최제우 대신사가 불국사 부처님보다 더 훌륭한 분이라 카던데 내는 잘 모린다.”
할머니가 부쳐 주는 전을 맛있게 먹고는 용담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르면서 바라보는 구미산은 봉우리가 부드럽게 펼쳐져 편해 보였다. 적당한 오르막의 길 가에는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은행나무는 여리고 작은 싹을 나뭇가지 밖으로 여기저기 조금씩 내밀고 있었다. 가을이면 노란색 물결이 사람들을 환영하겠지만 사월 초입의 은행나무는 쭉쭉 뻗은 나무 등걸이 시원스러웠다.
용담정 주차장을 지나자마자 넓은 뜰 왼편으로 최제우 선생의 동상이 보였다. 얼굴은 길쭉하고 키가 자그마한 양반이 사람 마음에 하늘이 들어 있다는 말씀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숙정은 그 동상을 뒤로 하고 용담정으로 올랐다. 거대한 신식 한옥 건물을 지나고 중문을 지나 산길을 5분 남짓 오르다 보니 이내 용담정이 눈에 들어왔다. 잘 생긴 기와집이었다.
사람들이 드문드문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누구 말 붙일 사람이 없나 찾는데 마침 아주머니 한 분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하얀 백발에 파마를 하였는데 숙정보다 더 매끈하고 흰 피부를 가져 묘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젊은 분들이 여는 우찌 알고 오싰으까예? 여는 아는 사람들보다 모리는 사람들이 더 많을 낀데?”
“예, 이 친구는 영국에서 왔고요, 한국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해요. 저는 광양 사람이고요. 지금은 둘이서 경주를 둘러보고 있어요. 예전에 어떤 분이 동학을 알려면 용담정을 찾아가 보라고 한 말씀이 갑자기 생각나서 왔어요.”
“아고. 잘 오싰네예. 동학 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면 나도 한울, 너도 한울, 세상만사가 다 한울이라는 거지예. 그래 우리가 나를 비롯한 세상 만물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면 행복한 세상이 온다는 거지예. 오시면서 최제우 대신사 동상 보셨지예?”
숙정이 짧게 대답했다.
“예.”
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고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세상 만물이 한울이요, 인간이 한울이라는 도를 우리 최제우 대신사가 동학(東學)으로 이름 지어 펴 내셨어예. 올해는 최제우 대신사의 사상을 이어받아 인간이면 모두가 한울로 대접받는 평등한 세상, 서로 서로 존중하고 평화롭게 사는 동학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1894년에 한반도 전역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킨 지 120주년이 되는 해지예. 왜놈들한테 엄청스레 당하면서도 우리는 그 사상을 천도교로 계속 이어 왔어예. 여 용담정에는 천도교 수련장도 있어예. 그란께 여서 며칠 머무르면서 동학, 그리고 천도교에 대해서도 알아보면 좋을끼라예.”
숙정은 세리에게 물었다. 세리도 한국의 동학사상과 천도교 수련이라는 데에 관심을 보였다.
두 사람은 용담정에 머무르면서 동학 말씀을 들었다. 동학의 생명 사랑, 평화주의, 모두가 한울이라고 하는 만민평등 사상이 놀라웠다.
두 사람은 새로운 유토피아를 당대에 이 땅 위에 건설하려고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섰던 갑오년 사건을 좀더 알아보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들은 내친 김에 바로 정읍의 동학농민혁명기념관으로 향하였다.
처음으로 찾아보는 정읍은 작고 조용한 소도시였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으로 가는 길은 넓은 벌판 가운데로 나 있었다. 이 싱그러운 들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전투를 하였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기념관은 황토재를 둘러싼 너른 벌판 가운데 있었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에 사발통문을 쓰고 투쟁한 농민군들의 두상이 있었다. 기념관을 찾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날의 함성은 땅속 깊이 잠겨 있는지 고요했다. 바람도 불지 않는 날이었다.
숙정과 세리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안으로 들어가 첫 번째로 만난 여성분에게 기념관 안내를 부탁했다. 그분은 미리 해설을 신청하지 않은 개인에게는 안내하지 못하지만 짧은 시간이라면 안내를 해 주겠다며 앞장서 걸었다. 그녀는 30대 후반이거나 40대 초반의 여인들이 갖는 편안함이 있었다. 숙정은 그녀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맨 처음 안내해 주는 장소는 좀 특이했다. 아래가 트여 있고 안팎에 거울을 붙여 둥근 것 같기도 하고 육각형 같기도 한 작은 공간이었다. 숙정과 세리는 그녀를 따라 몸을 낮추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별들이 무수히 빛나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었는데도 많은 사람이 거기 있었다. 이 공간을 구상한 작가는 갑오동학농민혁명으로 죽어간 수십만 명의 동학농민군들이 가졌던 꿈, 그 꿈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 너도 한울이고 나도 한울이어서 서로 존중하는 모습으로 영혼의 별이 되어 저 우주의 한울에 총총히 박혀서 영원히 빛나는 것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를 담았다고 했다. 잠시 그분들의 영혼에 접목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마저도 무릅쓰게 했을까?
숙정과 세리는 그 의미 깊은 빛의 공간에서 몸을 낮추고 나오는 동안 몸을 따라 마음도 낮아지고 깊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듯 동학농민혁명 접주들의 흉상이 그들을 맞이했다. 전봉준, 김덕명, 최시형, 손화중, 최경선의 얼굴상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숙정은 마지막으로 김개남의 얼굴을 보면서 손을 가만히 대어 봤다. 옆에 서 있던 안내원이 말하였다.
“김개남 장군입니다. 그분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전봉준 장군 못지않은 활동을 했어요.”
“아, 그래요?”
“지금으로 치면 전봉준 장군이 동학군 전라우도 총사령관이었고 김개남 장군은 전라좌도 총사령관인데, 일본과 대항해 싸울 때는 전라좌도 활동이 더 컸다고들 해요. 특히 남원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지요. 본격적인 대일 항쟁의 시발점이었던 남원대회를 열었고, 영호대도소로 김인배 대접주를 파견해 경상도 지역 동학군 활동을 지휘하고 지원했어요.”
정읍에서 나온 숙정과 세리의 다음 행선지는 자연스럽게 김개남이 활동을 크게 하였다는 남원으로 정해졌다.
숙정은 동학을 접하면서 감동에 젖는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벚꽃이 지는 사월 그날도 그랬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건네준 남원 동학농민혁명 역사자료집을 남원행 버스 안에서 읽었다. 숙정은 가슴에 울림을 주는 글을 만났다. 자료집의 첫인사말부터 자료 내용 하나하나가 가슴 가득한 애정과 올곧은 정신이 담겨 있었다. 그 글을 쓴 분의 생각에 매료되어 그 자료집을 만든 이를 만나고 싶었다. 다행히 그 자료집에는 그분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자료집을 만든 이는 남원 시민운동가 설촌 선생이었다. 한 번도 뵙지 않은 분이지만 숙정은 무턱대고 전화를 걸었다.
“설촌 선생님이십니까?”
수화기 저편으로 굵으면서도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그런데요.”
“저는 동학을 알고 싶은 유숙정입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남원 동학 자료를 받았습니다. 실례인 줄 알지만 그 자료에 있는 선생님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드립니다. 선생님, 남원 동학 유적지 답사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반갑습니다. 남원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니 너무 좋습니다.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숙정과 세리는 남원에 도착하는 길로 설촌 선생을 만났다. 허연 백발에 양복을 걸친 초로의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살집은 없어 보였지만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다. 동행한 그분의 제자인 정구영 선생과 함께 먼저 교룡산성 은적암에 올랐다. 은적암 오르는 길에 선국사가 있었다. 선국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왼편 살짝 높은 곳에 삼성각이 있고 그 사이에 수령이 백년을 넘었을 성 싶은 배롱나무가 휘어진 몸을 틀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칠층석탑이 우뚝 서 있었다. 칠층석탑 왼쪽 편에 관음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행은 대웅전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맞은편에 세워진 보제루에 올랐다. 남원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지리산이 남원 시내를 굽이굽이 감싸고 있는 형국이었다. 사방으로 솟은 산줄기가 기세 좋게 뻗어 있었다. 높고 굽이진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 땅이 좁을 것 같은데 의외로 남원 시내는 들이 넓었고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요천강은 물을 넉넉하게 담아 흐르고 있었다.
설촌 선생이 보제루에서 남원 시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원 시내가 한눈에 보이지요. 여기가 천연의 요새요. 올라오면서 느꼈겠지만 여기 산세가 상당히 험해요. 밀덕봉, 복덕봉 양 봉우리가 우뚝하지요. 일단 좀 올라와 버리면 의외로 널널한 땅이 있어 은거하기가 안성맞춤인 곳이지요. 올라와서 적들의 형세를 살피면서 대처하기가 아주 좋지요. 이러한 지형 때문에 이곳은 일찍이 백제와 신라의 군사 요충지였고 백제 때부터 돌성을 쌓았다고 해요. 그 성이 교룡산성이지요. 그때부터였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성안에 우물이 아흔아홉 개가 있었다고 해요. 난리가 일어나면 고을 백성들이 여기로 숨어들었겠지요.”
남원 시내를 바라보면서 설촌 선생의 말을 듣고 있던 숙정이 물었다.
“여기 올라와 보니 천연 요새란 말이 실감나네요. 김개남 장군이 왜 여기 선국사에 머물렀는지 알 것 같아요.”
“그러지요. 여기가 새로운 혁명을 꿈꿀 만한 터로 보이지요?”
옆에서 듣고 있던 정구영 씨가 자리를 정리하였다.
“선생님, 이제 은적암으로 오르시지요. 남원 동학은 은적암을 빼고 말할 수 없지요.”
은적암으로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십 분도 되지 않아 땀이 찼다. 오르는 길 초입은 대나무가 빽빽하여 어둡고, 동물도 겨우 다니겠다 싶었다. 대나무 숲을 빠져 나가자 오래된 산길이 나타나고 길가에 풀이 무성했다. 가파른 길을 다 올라서자 꽤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사방으로 대나무가 꽉 차 있어 산 아래 전경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 잡풀만 무성하고 가운데쯤에 표지판 두 개가 서 있었다. 그리고 가장자리 쪽에는 절벽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설촌 선생은 표지판 쪽으로 가더니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씻으며 안내했다.
“여기 왼쪽 것은 불교 표지판이요. 3.1만세운동에 참여한 33인 대표 중 한사람인 백용성 스님이 첫 출가한 자리를 알리는 거지요. 그리고 여기 오른쪽 표지판은 최제우가 탄압을 피해 여기로 와서 논학문을 짓고 ‘동학’이라 최초로 이름 지은 곳임을 알리는 거요. 이 표지판은 천도교에서 세웠어요.”
숙정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여기가 은적암이 있었던 곳인가요?”
설촌 선생은 네모반듯한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돌이 보이지요? 아마도 여기가 주춧돌 자리일 것이요. 원래 이곳 암자 이름은 덕밀암이었는데 최제우가 은거하면서 은적암이라는 현판을 걸고 이곳에서 동학의 기본 교리를 정리하였다고 해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은 듯 숙정은 따지듯이 물었다.
“선생님, 천도교에서 보면 이곳은 제2의 성지나 다름없는데 유적을 기리는 시설이 겨우 이 표지판 하나인가요?”
설촌 선생도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좀 그렇지요? 그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입니다. 우리 민족의 자주적 사상이요, 종교이자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혁명의 출발점이기도 한 곳을 우리는 지금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이렇게 방치하고 있어요. 우선 여기 앞에 대나무들부터 다 정리하고 나면 아래 남원시 전경이 다 보여요. 그리고 은적암을 다시 세워야겠지요. 젊은이들이 동학을 알게 하려면 이런 유적지가 재건되고, 젊은이들의 답사 코스가 되고, 그러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우주와 생명을 논하는 대 토론이 이루어지게 해야 할 터인데 그러지 못하니 참으로 답답하네요.”
옆에서 듣고 있던 정구영이 말했다.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을 얼마나 잘 선전하는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아요. 그런 나라하고 비교하면 지금 우리 모습은 참 한심하지요. 동학농민혁명은 프랑스 대혁명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참여 인원도 엄청났고, 기간도 길었어요. 특히 그 속에 담긴 혁명 정신과 사상은 엄청난 것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못 살리고 있지요. 사상적으로 온 우주를 다 품고 우주의 원리를 밝힌 것이 동학이지요. 사람 속에 우주 즉 한울 있고, 한울 즉 우주 속에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대단하지요. 이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한울이어서 서로 존귀하게 대하고 생명의 기운을 살리는 자주적인 삶을 실천하는 동학사상은 인류 역사가 발전시켜 온 사상의 최고봉이지요. 오늘날 우리 삶의 많은 문제들은, 동학사상대로 살기만 하면 실마리가 풀릴 거라고 봐요. 특히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대결 구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세계 문제도 동학사상을 실천하기만 하면 생명 존중의 평화 구도로 그 양상이 달라질 겁니다.”
옆으로 삐져나온 대나무를 밀어 넣으면서 듣고 있던 설촌 선생이 말했다.
“정구영 선생 말이 맞아요.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를 지녔고 그 속에 깃든 정신의 줄기를 따라가 보면 엄청나요. 그런데 그 유구한 역사 속에서 우리 사상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외세가 짓밟는 대로 흘러가 버렸으니 참 안타깝지요.”
풀 속에 묻힌 허름한 표지판 하나로 남아 있는 은적암을 뒤로 하고 숙정은 설촌 선생을 따라 교룡산성을 내려왔다.
숙정은 설촌 선생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저 어르신이 올해 일흔둘이라 했다. 이제 저런 고민은 후대들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끄럽다. 저 어르신이 바른 역사를 찾아가고 있을 때 젊고 팔팔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인권센터에서는 산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였던 것은 아닌가? 내 속에 들어와 흐르고 있는 우리 조상들의 목소리는 왜 들을 줄 몰랐을까? 결국 산 사람의 문제는 우주 속으로 돌아가 내 안에서 숨 쉬는, 돌아가신 선열들의 한울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자르면서 숙정이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 오늘 설명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저부터 시작하여 젊은 사람들이 올곧은 정신을 살리도록 노력할게요. 하지만 선생님도 도와주셔야 하니까 건강하셔요.”
숙정은 선생님의 건강을 당부하면서 함께 식사를 하고, 그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광양 집으로 돌아왔다. 숙정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몸은 피곤한데도 선생님이 생각났다. 설촌 선생님은 교직에 있다가 마음으로 크게 느낀 바가 있어 오십 대 중반에 퇴직하고, 지난 십오 년간 남원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올곧은 사상을 챙기고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 오셨다고 했다. 그 일에 제자 정구영 씨도 줄곧 동참하였다고 하니 아름다운 사제지간이다. 숙정은 그 두 분이 챙겨준 남원 동학 관련 자료를 훑어보면서 생각했다.
‘아, 이제는 내 차례구나. 내가 할 일을 찾았구나.’
세리는 광양 집에서 며칠 더 머무르며 주변의 농촌 풍경과 소도시의 일상을 돌아보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이번 동학 답사 여행이 너무 좋았노라고 했다.
세리가 떠난 뒤 숙정은 자신의 고향에서 활동한 동학 도인들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었다. 숙정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120년 전에 사람들이 동학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사람이 모두 하늘처럼 고귀하다는 걸 믿으며 죽음을 무릅쓴 투쟁에 나섰다는 것이 놀라웠다. 숙정은 날마다 산책길에서 그 생각만 했다. 그리고 세리를 배웅한 그날 광양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 이 책 저 책 닥치는 대로 읽어 갔다. 그래도 그들의 삶은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동학사상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궁금했다.
동학도인들이 살았다는 동네로 가서 걸어 보기도 했다. 그들은 ‘동학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고 ‘동학을 한다’고 했다. ‘동학 한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광양 섬진 골짜기를 찾아갔다. 섬진 언덕은 매실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휘어진 가지마다 다닥다닥 매실을 매달고 금방이라도 땅으로 드러누울 듯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피 냄새로 진동했던 이곳에 해마다 이월 말에서 삼월 초가 되면 매화향기가 온 산야를 가득 채운다. 120년 전에 사람들은 무슨 마음으로 동학에 뛰어들었고 이곳에서 떼죽음을 당했을까…. 숙정은 그들의 마음자리가 알고 싶었다.
광양 옥룡에서도 동학농민혁명 때 처형된 이들이 많아 그분들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었다. 그분들 이야기를 알아보려면 후손들을 만나야 했다. 그녀는 광양문화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저는 동학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유숙정입니다. 제 고향이 옥룡인데 옥룡에서도 동학농민혁명 당시 처형된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분들의 후손을 만나고 싶은데 연락처를 알 수 없을까요?”
“광양에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후손들이 누구인지 다 파악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전화상으로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네요. 여기 문화원에 오기 전에 먼저 광양시지를 살펴보시지요. 거기에 웬만한 내용은 다 나와 있습니다.”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숙정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광양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광양시지를 검색했다. 광양시지는 기록이 충실했다. 2권 역사 편에서 4장 근대로 클릭해 들어가니 제1절에 ‘동학농민봉기와 광양’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 이미 전라도 동부 지역 동학 관련 인물과 활동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광양시 기록도 찬찬히 살펴보자고 생각하고 읽어 내려갔다. 한 다섯 쪽 정도 읽어 가던 숙정은 깜짝 놀랐다.
전주 화약 이후로는 각 군의 수령이 도망하거나, 농민군의 눈치를 살피며 향응을 베푸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농민군의 의도대로 읍정(邑政)이 좌우되는 지역이 많았다. 당시 광양에서도 동학도인들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 봉강면의 유석훈(兪錫勳) 접주와 진월 출신의 양 접주가 뛰어난 활동가로서 이름이 높았으며 각 지역마다 동학 조직이 결성되었던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당시 광양에도 도소가 설치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1 2
이 대목에서 숙정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봉강면 유(兪)씨라면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 매번 시제를 모시러 봉강으로 고개를 넘어 가셨고 ‘우리 유씨가 원래 봉강 살다 윗대 고조할아버지 대에서 이사 오셨다’고 말씀하셨던 걸로 미루어 보면, 유석훈 접주는 나와 같은 집안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지금까지 본 광양 동학 자료에서는 기계유(兪)씨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제 어쩌면 우리 집안 조상일지도 모르는 동학 접주를 발견한 것이다.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족보를 뒤져 봤다. 족보에는 유석훈이란 분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로부터 12대로 올라가서 갈라진 집안에 동학란으로 돌아가셨다는 부자의 기록이 있었다. 그분들과 유석훈 님은 분명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집안 어르신을 찾았다.
“우리 집안이 예전에 봉강 일대에 땅이 많았고 잘 살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봉강 접주셨다는 말씀은 들은 적이 없네요.”
여든 살이 넘었다는 어른의 전화 목소리는 카랑카랑했고 똑부러지게 야무졌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여든 살이 넘었다는 말씀에 놀라면서 한편으로 숙정은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확인한 족보에는 유치진-유석린 부자는 분명 ‘동학란 졸’로 기록되어 있는데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단에는 올라가 있지 않았다. 광양의 활발한 활동가였다는 봉강면 유석훈 접주 역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단에는 물론이거니와 집안 족보에도 그 이름이 없었다. 다만 군지에 누군가가 전하여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동학농민혁명에 뛰어 들어 활발한 활동을 하였던 많은 이들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었다. 나라의 기록은 그렇다 하더라도 가족들의 기록인 족보에도 그 이름이 올라 있지 않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었다. 숙정은 오늘을 사는 후세들이 그분들을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보리라고 다짐했다.
겨울이 끝나 가고 매화가 피어나는 삼일절 날 숙정은 가족들과 함께 봉강 영천식당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봉강은 매화꽃이 만개했다. 매화 향은 언제 맡아도 좋았다. 숙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향기는 매화꽃 향기일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밭둑에 심어진 매화나무 옆에 서서 그 향기를 흠뻑 맡았다. 뒷산에는 누가 심었는지 산수유 꽃이 노랗게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언덕에는 쑥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간간이 보라색 제비꽃이 수줍은 듯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앞뜰은 논밭이 학교 운동장을 정비해 놓은 것처럼 반듯하게 구획 지어져 있고, 그 앞으로 봉강 길은 길게 뻗었다. 그 길 옆으로 논 백 두락도 넘는 땅이 수몰되었다는 봉강 저수지가 펼쳐졌다. 보기에도 시원했다. 저수지 둑에 서 있는 버들가지에 봄물이 올라 색깔이 연두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마을은 집이 서른 채쯤 되어 보였다. 마을 앞 논을 지나 길옆으로 면사무소, 농협, 우체국, 보건소가 길을 따라 늘어섰다.
그곳에 피리매운탕 전문집 영천식당이 있다. 그 집은 아저씨가 피리를 잡고 아주머니가 마늘을 많이 찧어 넣어 독하면서도 알싸한 맛이 일품인 피리매운탕이 제격인 집이다. 숙정은 영천식당이 정겨웠다. 그곳은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적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뜨거운 피리매운탕을 호호 불며 먹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곳이다. 지난 삼일절 날도 아버지와의 추억을 더듬으며 피리탕을 먹으러 갔었다.
이곳 일대가 다 논이었던 예전에 이 마을은 봉강면에서 가장 부자동네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곳이 갑오년에 유석훈 접주가 살았던 터전이다.
제1장 의형제
경덕사 스님은 오늘 산 아래 구동마을로 탁발을 나가려고 마음먹었다. 듣자 하니 아랫마을에 양부자가 인색하고 고약하기로 소문이 났다고 하였다. 며칠 전에 들른 구동댁 이야기다. 양부잣집에서 논을 몇 마지기 얻어 농사를 지은 지 몇 해가 넘었건만 갈수록 살 길이 막막하다고 하소연이었다. 일 년 내내 갖은 애를 쓰고 농사를 지어 놓으면 가을걷이를 하기가 바쁘게 나락수로 다 뜯어가 버려 겨울에는 자식을 굶기게 생겼다고 하였다. 견디다 못해 몇 마디 말을 내어 인정을 좀 보여주십사고 양부자에게 청을 하면 양부자란 사람은 농부들의 사정쯤에는 눈도 깜박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오히려 자기 눈에 조금만 거슬려도 부쳐 먹는 땅을 바로 뺏어가 버리는 통에 살기가 무섭다고 하였다. 스님은 오늘 그 양반 버릇 한 번 고쳐 보리라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양부자가 사는 구동마을은 부농이 많은 동네였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은 국사봉, 매봉으로 이어져 기상이 반듯하였고, 산자락은 마을을 아늑하게 품어 안으며 양 갈래로 뻗어 내렸다. 앞에는 넓은 들이 한껏 펼쳐지고 들녘으로 한참을 나아간 곳에서 보면 월포 섬진강물이 유장하게 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망덕 포구를 거쳐 바다로 이어지는 광양만에는 온갖 물산을 실은 배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광양만과 인근 바다에서는 사철 때에 맞춘 산물들이 넘쳐났다. 이른 봄 매화가 필 무렵이면 어부들은 예사 굴의 열 배도 넘을 만큼 큰 강굴을 섬진강 하류에서 따 올렸다. 어부들은 이 귀한 것이 광양에만 있다고 자랑하였다. 매화꽃이 질 때쯤 만개한 벚꽃이 눈발처럼 휘날리면 어부들은 강물과 바닷물을 만나 뒤집어지며 한껏 걸진 포구에서 지천으로 자란 재첩을 삽으로 퍼올리기에 숨이 가빴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 갯벌에는 백합, 맛, 반지락이 지천이고, 구멍마다 게, 낙지가 그득그득하였다. 갯벌을 벗어나 바닷물이 좀 잠긴다 싶은 곳에는 김발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가을이면 광양 바다는 전어 반 물 반이었다. 그렇게 바다에는 진미가 가득하고 뭍은 논둑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양부자의 집은 구동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기와 처마가 양 날개를 활짝 펼친 듯 도도하게 솟아올라 넓은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솟을대문도 한양의 대가집이 부럽잖게 큼직했다.
스님은 방자하게 풀어헤쳐진 두루마기 같이 열린 대문을 불문곡직 밀어제치고 마당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시주하시요. 시주하시요.”
대문간 근처에 있던 텁석부리 영감이 슬슬 다가와 스님을 밀어내며 말했다.
“스님, 우리 집은 그런 거 모르요. 긍께 얼른 가시오. 우리 집 어른이 아시는 날엔 경을 칠 꺼시요.”
그러나 스님은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더 안으로 들어가면서 소리쳤다.
“시주하시오. 이런 부잣집에서 시주를 안 허면 누가 시주를 허것소. 시주할 때까지 난 못 가오.”
안에서도 그 소리가 들렸던지 양부자가 나왔다.
“웬 소란이냐?”
텁석부리 영감이 양부자 쪽으로 가면서 말했다.
“지금 스님이 시주 허라고 이리로 들어오그만요.”
양부자는 갑자기 뭔 생각이 났던지 입가에 능글맞게 웃음을 피우면서 큰소리를 냈다.
“스님께서 시주를 허라니 혀야제. 저번에 준비해 둔 것 있지 않느냐? 그것 좀 내오너라.”
텁석부리 영감은 어리둥절하여 양부자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양부자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거지들한테는 밥이 보약이고 밥한테는 똥이 보약 아니더냐. 우리 집에서는 그 두 가지를 다 준비해 놓았더니라. 헛간 한 귀퉁이에 있는 똥장군을 가져오너라. 그 속에 귀한 보약 쌀을 넣어두었느니라. 흘릴지 모르니 잘 지고 오니라.”
그 말을 들은 텁석부리 영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헛간으로 가 똥장군을 안고 나와 마당 앞에 부려 놓았다. 똥장군은 오래전에 썼는지 냄새가 심하게 나지는 않았다. 스님이 가까이 다가가보니 길다랗게 둥근 통 위로 솟은 똥장군의 입 안쪽에 희끗희끗한 게 보였다. 양부자는 심술궂은 눈으로 스님을 보며 말했다.
“스님 바랑에 넣어 가시오. 둘 다 보약이오.”
스님은 양부자 얼굴과 똥장군을 번갈아봤다.
“어허. 참 보약이구려. 똥장군 속에 들어 있는 쌀이라…. 고맙소. 여기 바랑에 부어 주시오. 이렇게 귀한 보약을 두 가지나 시주허싰으니 저도 말 보시라도 허고 가야겄소.”
스님이 어찌 나오나 보고 있던 양부자가 말 보시라도 하겠다는 스님 말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 기색을 찬찬히 뜯어보던 스님이 뜸을 들이며 한마디씩 콕콕 집어 이야기하였다.
“이 집은 말을 조심허시오. 말이 정재(부엌) 안으로 들어가는 날 당신 집은 망하리다. 명심허시오”
그 말을 던져 놓고는 바랑에 쌀을 담기도 전에 스님은 총총히 대문 밖을 나서 떠나 버렸다. 양부자는 중놈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캥겼던지 말이 부엌 앞으로 가는 것은 엄금하라고 집안사람을 단속했다.
그 며칠 후 양부자가 그 다음 해에 구례 쪽 토지 전답을 돌아보고 밀린 나락수도 걷어 들이겠다고 나가더니 며칠 만에 옆에 아이 딸린 여자를 달고 돌아왔다. 여자는 얼굴이 희고 갸름한데다 쌍꺼풀 눈매가 뚜렷하였다. 코도 오똑하고 얼굴선이 고왔다. 가녀린 어깨 아래로 가슴은 봉곳 솟고 허리는 잘록했다.
마을 사람들은 저 여자가 양부자 애간장 좀 녹이겠다고 말들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여자는 구례 구만촌에서 데려왔고 성이 마(馬)가라 했다. 스님 똥장군 시주 이야기를 아는 동네 사람들은 수군수군하면서도, 그니를 ‘구만댁’이라 불렀다.
구만댁은 양부자 집으로 들어와서부터 몇 년간은 마을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양부자의 아내와 그 아들 양계환의 눈치도 살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구만댁은 목소리가 커지고 권세가 양부자 버금갔다.
양계환의 어머니는 남편 양부자의 인색함에 질렸던 사람이라 새로 첩실을 들이면 양부자가 혹 달라질까 싶어 구만댁하고도 잘 지내고, 그녀가 데려온 아들에게도 후히 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구만댁은 데려온 아들이 장성할수록 뒤가 걱정이었는지 가실 농사가 끝난 어느 날 땅문서 몇 장을 챙겨 귀신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양부자는 구만댁을 찾겠다고 한양으로 올라갔다. 온 나라를 이 잡듯이 뒤지고 한양 관리들에게 선을 대어 구만댁을 찾는다는 방을 붙이고 봉화까지 올렸다고 하였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구만댁은 대원군과 손이 닿았다고도 했다. 그 땅문서를 운현궁 대원군에게 갖다 바치고 아들놈에게 벼슬 한 자리라도 얻어 안기려는 수작이었는지 모르지만 결국 많은 전답이 대원군에게로 넘어갔다고 하였다.
그렇게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난 양부잣집 아들 양계환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많았다. 집안의 재산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여인들에게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중에 한 여자의 지아비로, 자식들에게 존경받는 아비로 살면서 사람들에게 욕이나 먹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아버지처럼 인색한 사람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군림하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한편으로, 양계환은 어수선한 세상 형편에 왜국 상인들까지 부쩍 자주 오가는 것을 볼 때마다 속이 끓어올랐다. 제놈들 말로는 조선 사람들이 필요한 신식 물품을 판다는 거라 잠깐 따져 봐도 눈앞에서 코 베이는 것처럼 거래 잇속이 공평하지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계환의 아버지 양부자는 왜국 사람들을 잘 보라 하였다. 그의 아버지, 양부자는 탐욕스럽게 일궈온 부를 첩실로 인해 많이 잃어버리긴 했어도 돈 냄새를 맡는 데는 영민한 사람이었다. 양계환은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그날도 양계환은 구만댁에게 도둑 맞은 전답을 되찾아보겠다고 서울로 돈을 싸들고 가는 아버지 모습이 보기 싫어서 집을 나와 버렸다. 특별히 갈 만한 데도 없어 바람이 시원한 월포로 나갔다. 섬진강 물길은 굽이굽이 지리산 자락을 감싸고돌았다. 물길이 닿는 곳마다 뭇 생명들을 적시면서 여린 풀잎들이 내어주는 이슬방울을 받아 강물을 불렸다. 월포는 섬진강이 그 긴 여정을 끝내고 바다로 섞여 들어가는 곳이었다. 그런 지리적 이유로 월포는 풍성한 먹을거리를 주변 사람들에게 안겨주었는데, 특히 강굴과 재첩이 일품이었다.
양계환은 물가에 앉아 바람을 쐬며, 하염없이 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 가운데서 재첩을 잡는지 강굴을 따는지 허리를 굽히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싶은 찰나 그 사람 몸이 갑자기 물속으로 사라지더니 이내 퍼덕거리며 되솟구쳤다. 양계환은 바로 윗옷을 벗어던지면서 물가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대나무 장대가 보였다. 그 장대를 집어 들고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물 가운데로 들어갈수록 물은 깊었다. 발이 닿지 않는 곳도 있었다. 한손으로 장대를 밀며 헤엄을 쳤다. 퍼덕거리는 사람 옆으로 다가갔다. 물속으로 빠져들던 사람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필사적으로 양계환을 붙들었다. 양계환은 사정없이 그를 내리쳤다. 물에 빠진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 옆 사람을 붙들면 붙들린 사람도 같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계환은 어렸을 때부터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는 손으로 붙들지 말고 끈을 이용하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장대를 이용하라는 소리를 듣고 컸다. 막상 물에 빠진 사람을 대하는 것은 처음인데 그 생각이 퍼뜩 나서 대나무 장대를 찾아들었던 터다. 저쪽으로 나가 떨어져서 버둥거리는 사람에게 장대를 내밀었다. 양계환은 그가 장대를 잡자마자 재빨리 헤엄을 쳤다. 한 손과 두 발짓이지만 워낙에 죽기살기로 움직여서인지 뭍이 가까워지더니, 금세 발이 바닥에 닿았다. 그제서야 양계환은 그를 껴안다시피 붙들고 물 밖으로 나왔다. 그는 물을 많이 먹었는지 물가에 널브러졌다. 얼굴이 하얀 게 이상하여 몇 번이나 가슴팍을 누르고 입을 돌려 물을 토하게 하였더니 그가 눈을 떴다. 양계환이 좋아서 소리쳤다.
“워매, 인자 살아나네.”
같은 또래로 보이는 청년은 입으로 숨을 내뱉었다.
“휴우-.”
몸을 일으키려는 청년을 도와주면서 양계환이 말했다.
“어따, 지비는 헤엄도 못 침서 뭘라고 물속에를 들어갔소?”
“저그가 그리 깊은 곳인 줄 모르고 들어갔소. 그나저나 고맙소. 아까는 여그 아무도 없었는디 언제 왔소?”
“지비 살릴라고 나가 왔는갑소.”
“참말로 고맙소. 내 생명의 은인이오.”
양계환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우리 아부지 땜시 부아가 나서 바람이나 쐴라고 나왔다가 지비를 살맀지다 이. 하하.”
“암튼 고맙구만요, 근디 뭐 좀 물어봐도 되요?”
“뭘? 글먼 물어 보이다.”
죽다 살아난 총각의 얼굴색은 이제 완연히 돌아왔다. 그는 양계환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웃으면서 물었다.
“나를 살리조서 고맙긴 하요만 나이나 좀 압시다.”
“나는 열아홉이요. 그러는 지비는 몇 살 자싰소?”
“하하하. 나랑 동갑이구마. 우리 말 트고 지냅시다. 나는 유석훈이요.”
“지비도 열아홉 살이요. 좋구마~다. 내 이름은 양계환이요. 근디 지비는 헤엄도 못 침서 뭘라고 물에를 들어갔소?”
“여그 월포가 우리 외갓집이요. 올 때마다 보면 사람들이 물에만 들어갔다 오먼 수월케 갱조개(재첩)랑 강굴을 한 바구리씩 갖고 오길래 오늘은 나도 한번 잡아볼라고 했다가 까딱했으먼 나 잡을 뻔 했구마요. 휴우. 참말로 지비 아니었으먼 큰일 날 뻔 했어다.”
“거그 집은 어딘디 헤엄도 못 침서 물속에를 들어갔소?”
“우리 집은 봉강이라다. 거그는 물이 무릎까지나 차는 작은 시냇물은 있어도 이리 크고 깊은 물은 업그마요.”
“그래 예서 보먼 물이 그리 깊게 안 보이지다. 근데 저 가운데만큼 가면 내 키도 훌쩍 넘는 깊은 물 수렁이 있어서 사람들이 여그서 여럿 빠져 죽었어다. 긍께 지비처럼 덩벙이가 들어가먼 안 되구마요.”
“글먼 이녁은 이 동네 사요?”
“아니라다. 나는 저그 모퉁이를 돌아가먼 보이는 동네 구동서 살아다. 구동 가서 나 이름 대먼 우리 집은 다 안께 다음에 놀러 오이다.”
“이녁이 나 목심도 구해 주고. 처음 봤어도 나는 지비가 맘에 드요.”
양계환은 유석훈의 말에 입이 크게 벌어지더니 손을 내밀었다.
“나도 지비가 맘에 들구마이다. 오늘 우리 아부지 땜세 성질나서 나왔다가 지비를 만난 것이 우리 인연이 보통이 아닌갑소. 긍께 그 뭣이냐? 우리도 그 의형제를 맺으먼 어쩌겄소?”
유석훈도 양계환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좋아했다.
“야~! 참말로 좋지이다!”
그러고는 옆에 놔 두었던 장대를 집어 들었다.
“이것은 지비가 나 생명을 살려준 작대긴께 의형제 기념으로 나 죽을 때까지 간직할라요.”
“계환이 친구, 글먼 나는 뭘 간직허면 좋겄소?”
석훈은 계환의 말끝에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 나 옷. 쩌그 있네.”
석훈이 물에 들어가기 전에 벗어 놓았던 옷을 가지러 달려갔다. 석훈은 옷을 걸치고 손에 장도를 들고 왔다.
“이것은 우리 아버님이 내가 열여섯 살 생일날에 주신 거구마. 몸 관리를 잘하라고 주신 것인디 우리가 의형제를 맺었은께 내 몸이 자네 몸이고 자네 몸이 내 몸인께 이걸 가지소.”
석훈이 건네주는 장도는 팔각은장도였다. 팔각으로 각이 선 장도를 받은 계환은 장도를 이리저리 만져 보더니 칼집에서 칼을 빼냈다. 제 손에 칼날을 이리저리 대어 보더니 칼집을 씌우고 자신의 허리춤을 헤집고 거기에 찼다. 그리고 그 옆에 매어 놓은 자신의 장도를 끌렀다.
“석훈이, 나도 항상 차고 댕기는 은장도가 있네. 난 우리 엄니가 챙겨 주신 것이라 여자들이 차고 댕기는 것처럼 색도 맵시도 고운 께 담에 자네 각시한테 주먼 좋을 꺼여. 어쨌거나 우리 의형제 맺은 기념으로 오늘부터 자네랑 나랑 바꿔 차고 댕기세 이~!”
“워매, 자네 각시 생기면 주라고 헌 것을 나한테 줘 버리면 자네 엄니가 속상헐 것인디 어쩔라고?"
“나 장가 갈 때는 우리 엄니가 더 좋은 걸로 해 줄 것인께 그런 것은 걱정 마시고 이~!”
“글먼 좋고. 그나저나 어찌 우리 둘 다 오늘 장도를 차고 왔을까 이~!”
“긍깨, 오늘 우리가 의형제 맺을 인연이 확실헌갑소.”
석훈도 계환이가 허리춤에서 내어주는 은장도를 귀한 보물을 손에 쥔 것처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자신의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 흙바닥에 떨어져 있는 장대를 다시 주워들었다.
“그래도 난 이 작대기도 가져갈 꺼구마. 의형제 기념으로는 은장도를 허리춤에 차고 댕기고, 내 생명을 살린 기념으로는 이 작대기를 가져다가 우리 집 벽에 걸어 둘라고.”
제2장 광양민란(1889년)
의형제를 맺은 양계환과 유석훈은 금세 십년지기 친구가 됐다. 의형제라서가 아니라, 어쩐 일인지 속생각까지 찰떡궁합이었다. 그 합으로 세상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았다.
추수가 끝난 어느 날 계환은 석훈의 집을 찾았다. 그날따라 석훈은 유독 반가워하며 계환의 손을 잡아 방으로 끌었다. 방에는 낯모르는 젊은이가 있었다. 젊은이는 단단해 보였다. 계환이 들어서자마자 눈을 빛내며 수인사를 건넸다.
“반갑소. 지는 조두환이요.”
엉겁결에 수인사를 받으면서 양계환도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석훈 쪽을 살폈다. 눈길이 마주친 석훈은 웃으면서 청년을 소개했다.
“계환이, 이 친구는 여그 봉강 사는 조두환이구마. 좋은 친군게 잘 사귀어 보소.”
그때서야 계환이도 얼굴 표정이 누그러지며 말을 텄다.
“반갑소. 나가 지난여름에 석훈이 목숨을 살리고 의형제를 맺은 사람이오. 월포 사는 양계환이요.”
“나도 그 이야긴 들었소. 글고 석훈이랑 이런저런 존 얘기도 많이 나눈담서요. 나도 나이가 석훈이랑 같은게 우리 서로 말 틉시다.”
“거 좋소. 두환이 친구, 우리 잘 지내 봅시다.”
양계환이 손을 쑥 내밀었다. 그 손을 잡은 채로 조두환은 눈빛을 반짝이며 빠르게 말을 내놓았다.
“실은 오늘 급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이 친구 집에 들렀소. 지비들 광양 관아 털린 이약 들었소?”
석훈은 두환의 말에 놀라 앉으려고 숙였던 고개를 번쩍 쳐들며 물었다.
“뭐? 광양 관아가 털리다니 그거이 뭔 소리단가?”
양계환도 눈이 화등잔만해지면서 두환이 입만 주시했다.
“시방 읍내는 난리가 났구마. 그동안에 김두현 현감이 엥간허니 뜯어갔어야 말이제.”
“아따! 뭔 소린지 궁금해 죽겄구만. 찬찬허니 제대로 이약 좀 해 보소.”
석훈의 재촉에 두환이 말을 풀었다.
“시방 자세한 이약은 다 헐 틈이 없고, 우리 아재 말씀으로는 광양 현아 백지홍 이방이 사람이 괜찮다고 헙디다. 이번 난리는 이방이 앞장을 서고 나중에 백성들을 끌어 들이서 일을 벌맀다 허더만요. 근디 일이 잘못 돼 부렀는가 시방 나주 목사 김규식이 안핵사로 와서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고 있다요. 울 아재도 거그 찡기 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빠져나와 갖고 우리 집에 숨었는디 앞일이 어찌 될랑가 나도 모르겄소.”
“글먼 시방 지비 집에 숨어 기신단 말이요?”
“아먼. 시방 우리 아부지는 아재가 계속 우리 집에 있으면 우리 집도 위험하고 아재도 위험헝깨 피해야 쓰껀디 어째야 쓰까 허고 걱정이 태산이라다. 그래서 뭔 좋은 수가 없으까 허고 석훈이 친구헌티 의논이나 해 보자고 나왔그마요.”
“피할 곳이라….”
두환의 말을 듣고 계환이 혼잣말을 내놓더니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저 혼자 들떠서 말했다.
“아! 존 디가 있소! 구례가 좋겄소! 울 집 땅을 일궈 먹는 집인디. 그 집이라면 안전허겄소. 나도 몇 번 가 봤는디 그 집 아재가 나를 잘 알고 뭐보다 신실한 사람잉깨 나랑 같이 가먼 잘해 주꺼요.”
그 말에 두환의 얼굴이 환해졌다.
“글먼 언능 가 보세.”
그때 석훈이 나섰다.
“이런 일일수록 사람이 단촐해야지. 네 사람이 다 항꾼에 돌아다니다가는 넘들 눈에 들키기 십상이제. 긍깨 자네 집 아재만 계환이 친구를 따라가면 어쩌겄는가?”
“석훈이 자네 말이 맞것구마. 글먼 지비가 울 아재 좀 잘 모시고 가소. 이따가 날이 잔 어둑해지면 성불사 뒷산 길로 올라가시라 헐랑깨 지비가 거그서 지달리다 이~!”
말을 마치기가 바쁘게 두환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석훈과 계환은 한참이나 광양 관아에서 벌어졌다는 난리를 두고 갑론을박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석훈이 어머님께서 차려 주신 밥상을 물리고 양계환이 길을 나선 것은 해가 서산에서 한 발쯤 남았을 무렵이었다. 발걸음을 바삐 하였는데도 성불사 뒷산 길에 당도하니 해가 산을 꼴깍 넘어갔다. 계환은 떡갈나무 뒷편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서 두환네 아재를 기다렸다. 갈빛 마른 잎이 바람에 몇 잎씩 날렸다. 서편 하늘을 붉게 물들였던 노을이 점차 그 빛을 잃고 컴컴해진다 싶을 무렵에 발소리가 들렸다. 이즈음에 성불사 뒷산 길로 급하게 올라올 사람은 두환이의 아재뿐이다 싶어 일어나서 산길로 나갔다.
“두환이 아재 되시는가요?”
“그러네. 내가 조삼도구만.”
“예, 지가 양계환이라다. 아재를 구례로 모실라는디 괜찮컷능가요?”
“어려븐 일인디 날 도와준당께 고맙네. 지금 나는 어디가 됐건 여서 언능 달아나야 헝깨 자네가 가잔 대로 갈라네.”
“글먼 언능 가입시다.”
양계환과 조삼도는 부지런히 산길을 탔다. 다행히도 보름이 이틀 뒤인지라 달이 밝았다. 한참이나 오르니 달덕이재가 나왔다. 두 사람은 달덕이재 근처에서 작은 바위 하나씩을 차지하고 걸터앉았다. 계환이 물었다.
“근디 아재는 어쩌다가 난리에 뛰 들었당가요?”
“두환이헌티 들었네만 자네 집맹키로 부잣집은 우리들 겉은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모를 것이네. 여그서 나가 그 이약을 다 헐라먼 오늘 밤을 꼬빡 새도 다 못 허꺼그마.”
“아재, 그래도 좀 들리주이다! 밤길 가는 것도 심심헌디.”
“글먼 그러세. 인자 어차피 피신허는 몸이라 사람 노릇 허기도 어려운 판에, 나가 한맺힌 이약을 해 볼랑깨 난중에라도 자네 겉은 젊은이들이 기회가 오면 저 그악한 놈들 등쌀에 시달리지 않고 우리 겉은 백성들이 좀 편히 묵고 살게나 해 주시게.”
“가난 구제라는 것은 나랏님도 못 허는디 우리가 어찌 헌당가요?”
“젊은 사람이 그거이 뭔 소리여? 암튼 간에 이야기나 들어 보게.”
광양 현감 김두현은 욕심이 사나웠다. 광양은 농사지을 땅은 좁은 데 바다가 가까이 있어 온갖 명목으로 세미와 세전을 걷어 갔다. 그 바람에 광양 사람들 소원이 하루라도 편하게 뜨신 밥 한번 입에 넣어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 부임한 김두현은 자리에 앉은 그날부터 관속들을 산지 사방으로 내보내 온 고을 사람들에게 산비탈 골짝 속까지 밭을 일궈 곡식을 심으라 독려하였다. 그렇게 봄에 산밭을 일굴 때는 세전을 면해 준다고 해 놓고선 바로 그해 가을에 세전을 물리는 통에 못살겠다는 아우성이 동네마다 일었다. 날이면 날마다 관아 한쪽에는 세전을 내지 못해서 사람들이 잡혀 오고, 또 다른 한쪽에선 은밀하게 관아 사람들을 붙잡고 협상하는 사람들이 늘어 갔다.
조삼도 역시 산밭을 일궜다. 땅이 얼어 곡괭이로 찍어도 땅에서 오히려 곡괭이가 튀어 버리는 한겨울부터 조상 대대로 물려오는 산 아래쪽을 온 식구가 매달려 죽을힘을 다해 파고 또 팠다. 그리고 산밭에서 나오는 돌로는 돌담을 쌓았다. 장맛비에 산밭 흙이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물길도 큼직하게 내고, 돌담 쌓기에도 온갖 정성을 쏟았다. 그렇게 만든 밭에 조삼도는 콩과 고구마를 심었다. 그 밭에 처음으로 심은 작물은 잘 자랐다. 가을걷이를 하고 보니 콩이 세 말, 고구마가 작은 방 윗목에 놓은 두대통에 가득 찼다. 두대통은 여름 농한기 때 미리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서 만들어 두었다. 그때는 이만큼이나 고구마가 나올까 했는데 두대통에 한가득 들어찼다. 삼도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인자 세미 내고도 우리 새끼들을 굶기지 않고 고구마 밥은 먹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름도 다 못 셀 만큼 온갖 명목의 세전을 달라는 대로 다 냈다. 가을 농사가 비교적 잘 되었는데도 집에는 나락이 몇 톨 남지 않았다. 그래도 올해는 콩과 고구마가 있으니 어찌 버티겠구나 싶어서 내심 든든했다. 그러나 그것은 삼도의 착각이었다. 고구마 밥이라도 먹기 시작한 평화로운 며칠이 지나자 마을의 오가작통제 통주 김서방과 관아 호방이 들이닥쳤다.
“이리 오너라.”
삼도가 급히 방문을 열고 내려오자마자 호방의 호통이 이어지고 그 옆에서 김서방은 안절부절못했다.
“조삼도, 자네는 어찌하여 제대로 세전도 내지 않고 이러고 있는가?”
“뭔 세전이랑가요? 저는 관에서 내라는 대로 한 푼도 빶지 않고 다 냈는디요?”
“이 사람, 안 되겄구마. 관아로 가서 볼기짝이라도 맞아야 정신을 차릴랑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김서방이 조삼도와 눈빛이 마주치자 그때서야 풀죽은 소리로 말을 냈다.
“글쎄, 삼도 저 산밭 안 있는가? 그 밭 세전이 빠졌다고 그러네만….”
그 말을 들은 삼도는 눈이 휙 돌아갔다.
“그거이 뭔 소리여? 지난 번 봄철에 세전 없이 산밭을 일구어 먹으라고 한 이가 누구였소?”
“뭔 소리여? 나라 땅을 일궈 곡식을 걷었으면 세전을 내는 거야 당연지사지. 이러코롬 관에서 찾아댕기게끔 하는 버릇은 어디서 배워 먹은겨?”
“아니, 호방 나으리. 분명히 산밭을 일구면 그것은 세전은 면제해준다 안 하였소? 그 말 듣고 우리 식구들이 지난겨울부터 지금까지 피똥을 지릴 정도로 심들게 일해서 밭 맹글어 농사 지어논께 인자 와서 세전을 내라니 그것이 나라법이요?”
“정 따지고 싶걸랑 관아로 내일 나오게. 근디 관아로 올 때는 세전은 꼭 챙겨서 오는 것이 좋을 것이네.”
어제 저녁 김두현 현감은 한양으로 올릴 세미, 세전 운반선 대책을 궁리하느라고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잠을 설친 김두현 현감은 아침에도 몸이 개운치 않아 뭉기적거리고 있는데 관아가 시끄러웠다.
“밖에 무슨 일이냐?”
“이방 백지홍입니다. 사또께서 얼른 나오셔야겠습니다.”
현감이 이방의 재촉을 받고서야 동헌으로 나왔더니 동헌 뜰에 한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현감이 등장하자 이방과 호방이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호방이 아뢰었다.
“사또! 지는 어제 봉강으로 빠진 세전을 챙기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세전 내는 것이 억울하다고 사또께 아뢸 것이 있다 하옵니다.”
“저런! 고얀 놈을 봤나? 목숨을 부지한 것을 보면 농사는 지었을 터, 그런데 세전 내는 것이 억울해? 무엇이 그리 억울하단 말이냐?”
잠자코 엎드려 있던 조삼도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사또! 지난봄에 분명히 산밭을 일구면 그 해는 세전을 안 내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세전을 내라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조삼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감은 호방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물었다.
“호방! 그 땅이 산밭이더냐? 묵전을 일군 밭이더냐?”
“예. 제가 보기엔 묵전을 다시 일군 좋은 밭이더이다.”
호방은 싱긋 웃기까지 하였다. 사또는 호방의 말을 듣자마자 호령하였다.
“저놈은 좋은 밭에서 수확을 하고도 세전을 떼어먹으려 산밭 운운하는 숭악한 놈이다. 저놈은 데려다가 혼쭐을 내주어라.”
조삼도는 그날 곤장 열 대를 맞고 옥에 갇히었다. 그 다음 날로 조삼도의 아내가 돈을 꾸어 호방 집에 가져다주고 나서야 그는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해 겨울 조삼도의 식구들은 고구마로도 배를 채우지 못하고 주린 배를 움켜쥐었다.
그 무렵 광양 현감 김두현은 속내가 복잡했다. 한양에 올려 보내야 하는 어마어마한 세미, 세전에 자신의 곳간까지 채우려니 아무리 닦달을 하여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수족이 되어도 부족할 판인 이방 백지홍이 어느 날인가부터 이상했다. 자신과 호방이 매기는 세수에 맞장구를 칠 때도 있지만 어깃장을 놓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세수 매기는 것을 제대로 따지자면 이방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이방의 말대로 해선 자신의 곳간을 채우기는커녕 광양 관아 곳간도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방도 그 사정을 모르진 않을 텐데 그가 왜 가끔씩 딴죽을 걸고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방 백지홍은 광양의 향리들과 백성들이 은근히 싸고도는 눈치였다. 김두현 현감은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이방을 가만두자니 자신의 재산을 늘릴 수가 없고, 이방을 제재하자니 광양 사람들이 어찌 나올까 두려웠다. 이방의 속내에 뭔가 있는데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백 이방이 조용히 동헌 내아로 찾아왔다.
“사또, 이방 백지홍입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누워 있던 현감이 몸을 일으켰다.
“어서 들게.”
백지홍은 사또 방으로 들어갔다. 살찐 몸을 일으킨 현감은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일인가? 할 말이 있으면 동헌에서 할 것이지. 쯧쯧.”
사또는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방이 뭔가 결심한 듯 얼굴을 들고 차분한 목소리로 사또에게 아뢰었다.
“사또, 저 백지홍과 우리 향리들은 오로지 나라와 현감을 위해 헌신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또께서도 잘 아실 것이옵니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 고을 좌수께서는 별 일도 없으면서 백성들에게 세전을 마구 뜯어내고 있다는 말이 자주 들리옵니다.”
“그건 무슨 소린가?”
사또는 자리를 고쳐 앉으며 느슨하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사또께옵서도 요즘 한양에 올려 보낼 세미, 세전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옵니다. 게다가 우리 관아 살림도 제대로 꾸려가기가 어려운 실정인데 김경문 좌수까지도 양반입네 하면서 백성들에게 세미, 세전을 함부로 걷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광양현이 세전을 걷기가 더 팍팍한 실정입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사….”
백 이방은 침을 꼴깍 삼키고 현감의 얼굴을 보더니 결심한 듯 말을 내었다.
“이번에 좌수를 바꾸면 어떨까 합니다.”
백 이방의 말을 듣는 현감 얼굴빛이 바뀌었다. 현감은 곧바로 등을 꼿꼿이 세우고 바로 앉았다.
“무슨 소리? 지금도 광양 향반들 기세가 만만찮은데 현감이 좌수를 바꾸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줄 아는가? 안 될 일이네.”
현감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이방은 얼굴빛이 잠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백 이방은 물러서지 않고 그 말을 또 내어놓았다.
“사또.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지금 우리 향리들의 형편도 좀 살펴주십시오. 우리들 형편이 전 같지 않고 식솔들도 먹을 것이 없는 날이 많사옵니다.”
“그거사, 자네들이 세전을 제대로 걷지 못한 탓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좌수 자리를 바꾸자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하는 이유는 대체 뭔가?”
“사또, 아시는 대로 양반은 세전을 물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반 백성들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넉넉한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양반들은 크고 작은 집안 행사에 쓰일 물품을 백성들에게서 뜯어 갑니다. 백성들은 나라 세전도 못 낼 판에 유향소에 필요한 비용을 때마다 대느라고 죽을 맛입니다. 그러니 이참에 좌수 자리를 저희에게 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도 백성들이 내어주는 세전이 아니면 살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저희 사정과 백성들의 사정을 헤아려 저희에게 좌수 자리를 내어 주십시오.”
“어허. 그것은 안 될 말이네. 자네들에게 좌수 자리가 넘어가면 이 고을 향반들이 가만있을 성 싶은가? 한양 땅으로 상소가 빗발치는 날이면 자네나 나나 이 자리에 붙어 있지 못할 것이네.”
“안 된다고만 하지 마시고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안 된다고 하였네. 두 번 다시는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내지 말게. 어허, 참.”
어깨를 굽히고 물러가는데도 백지홍의 뒷모습에선 찬바람이 불었다. 김두현 현감은 입맛이 썼다.
백 이방의 속내는 분명했다. 향리들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지는 합법적인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모신 현감들은 향리들이 호기 부릴 정도는 아니어도 밥술은 들고 살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런데 이번 김두현 현감은 아니었다. 물론 한양에서 올리라는 조세가 날로 늘어 가는 탓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김두현 현감은 자신이 드러내놓고 챙기지 않으면 이 벼슬자리도 유지하기가 힘든지라 챙기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 협상을 걸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좌수 자리만 향리들에게 넘겨주면 향리들이 알아서 챙겨주겠다는데도 김두현 현감은 딱 잘라서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현감은 이 지역 향반들이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분란이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도 벌이기 싫다는 거였다. 백 이방은 이제 백성들과 손잡고 김두현 현감에게 맞서 보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일은 신속하게 진행했다.
그날 저녁 이방 집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이방 집은 네 칸 초가였다. 제법 굵은 기둥을 받친 주춧돌이 단단해 보였다. 높직이 놓인 댓돌에 짚신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댓돌에 얹혀진 짚신보다 토방에 이리저리 흩어진 것이 곱절은 많아 보였다.
사람들이 방안으로 모여들자 이방은 모인 사람들을 다 둘러보고 고개를 반듯이 하였다.
“우리 고을은 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오히려 백성들 살기가 좋은 곳이오. 그런데 요즘은 한양에서 올려 보내라는 조세도 만만찮고 또 광양 땅을 밟기만 하면 한 살림 장만해 가려는 관리들만 내려오는 바람에 고을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관아에서 일하는 우리 향리들도 살기 어려운 것이 백성들과 마찬가지요.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살길을 찾아보자고 이리 모이자 했소.”
그때 눈이 부리부리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것이 힘깨나 쓰겠다 싶은 박창규가 나섰다.
“글먼, 무슨 좋은 수가 있소?”
백 이방은 모인 사람들을 다시 찬찬히 살피며 한 사람 한 사람 눈길을 맞추었다.
“여러분들은 조세에 원한이 많지요. 우리가 저 지독한 김두현 현감을 쫓아내 버리고 새 현감을 맞으면 새 현감도 여기 광양에서는 함부로 하진 못할 것이오. 그런께 일을 벌려 봅시다. 관아에서는 우리가 이미 다 준비를 하였소. 밖에서 밀고 들어오면 우리가 바로 함께할 것이오.”
이번에도 성질 급한 박창규가 앞장을 섰다.
“좋소, 우리도 굶어죽게 생겼은게 현감 쫓아내고 관아 창고나 좀 털어봅시다.”
그때 조삼도가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관아를 턴다는 것은 난리를 일으킨다는 것인디 그래도 될랑가 모르겄소. 나는 무섭소만.”
그때 옆에 앉은 사람이 말을 받았다.
“참, 그 양반 겁 많기는. 관아에서 이방, 호방, 병방 관속들이 다 우리가 들어오기만 하면 바로 함께 헌다는디 뭣이 걱정이오.”
여러 사람의 말을 들은 이방이 마무리를 지었다.
“좋소. 거사는 내일 오후 해질 무렵인 신시면 좋겠소. 그래야 여러분들 얼굴도 잘 안 드러나고, 현감도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내쫓기가 수월할 것이오.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모아 오면 좋겠소.”
양계환과 조삼도 두 사람은 광양 난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밤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어느덧 구례 남쪽 구만촌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섬진강 나루에 당도하였다. 밤이라 뱃사람이 없었다. 두 사람은 물이 깊지 않은 상류 쪽으로 올라가 걸어서 강을 건너기로 하였다.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물에 들어섰다.
“아재, 물이 많이 차분디 괘않컸소?”
“나야 괘않네만 자네가 나 땜세 고생이 많구만.”
그러고 한참을 건너니 발에 감각이 없어지고 얼얼했다. 강 중간쯤에 이르자 물은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금세 물이 얕아져서 다행이었다. 두 사람은 달빛에 의지하여 길을 줄인 끝에 토지가 한없이 펼쳐져 구만촌이라 부르는 동네에 이르렀다. 그때부터는 계환이 훨훨 날았다. 한달음에 달려 동네 갓집 제법 넓은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아저씨, 계세요?”
방문이 열리면서 덩치 큰 남자가 나왔다. 그는 밤중이라 얼굴이 잘 안 보이는지 말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서더니 반가운 소리로 알은체를 하였다.
“계환이 도련님이 아니요. 이 밤중에 웬일이요? 그나저나 추운디 어서 방으로 들어갑시다.”
방으로 들어선 덩치 큰 남자는 얼른 호롱불 심지에 불을 붙였다. 어둡던 방안이 좀 환해졌다. 방 안에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이리저리 궁굴면서 자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을 한쪽으로 밀어 올리고 손님을 자리에 앉게 했다. 그때서야 양계환은 덩치 큰 남자에게 조삼도를 소개하였다.
“아저씨, 여기 계신 어른은 제 친한 친구 아재 되는디요, 갑자기 뭔 일이 생기서 여그 좀 계시야 쓰것는디, 그래도 될란가 모르것그만요?”
“그거이사 우리 도련님 부탁인디 당연히 그래야지라.”
조삼도는 얼굴이 환해지면서 인사를 했다.
“지는 봉강 사는 조삼도구만요. 이렇게 폐를 끼치게 돼서 송구하구만요.”
“지는 여서 우리 도련님 댁 농사를 짓는 양또치구만요.”
인사를 마치고 나서야 두 사람의 옷이 젖은 것을 눈치 챈 양또치는 안방으로 건너가더니 바지 두 벌을 가지고 왔다. 그 사이에 아이들 둘이 일어났다. 손님 말소리를 듣고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양또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여그 도련님이랑 아저씨께 인사하고 느그 둘은 나랑 같이 엄마 옆에 가서 자자.”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더니 양또치 손을 잡았다. 양또치는 아이들 손을 끌고 방문을 나가면서 말했다.
“여까지 오시니라 피곤허껀디 언능 주무시시오~이!”
양계환은 얼른 옷을 갈아입고 호롱불을 입으로 훅 불어서 껐다. 그리고 자리에 몸을 뉘였다. 옆에 누운 조삼도는 잠이 오지 않는지 몸을 몇 번이나 뒤척였다.
“어이, 계환이, 잔가?”
“아니요. 지도 어찌 잠이 안 오는그만요. 아재! 잠도 안 온디 아까 광양 난리 이약이나 잔 이어 보시이다.”
“그러세.”
양계환의 청에 조삼도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하고 그날 벌어진 일을 술술 풀어냈다.
그날은 광양 장날이었다. 장터엔 사람들이 북적였다. 지난번에 이방 집에서 보았던 얼굴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조삼도는 장터에서 국밥 한 그릇을 말아 먹고 이리저리 구경을 했다. 해가 설핏해지자 박창규가 하얀 깃발을 들었다. 신호였다. 장터에서 가까운 광양 관아 동헌 쪽으로 잰걸음을 걷는 사람들 수가 제법 많았다. 광양 관아 동헌으로 통하는 문은 열려 있었다. 동헌 문앞에서 무리를 제대로 지은 사람들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동헌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박창규가 앞으로 쑥 나서며 외쳤다.
“사또 나오시오.”
박창규의 외침에도 사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모두 큰 소리로 외쳤다.
“김두현 현감 나오시오.”
“사또 나오시오.”
“안 나오면 우리가 찾으러 가겠소.”
그 시각에 동헌 내아에 있던 사또는 갑자기 동헌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옆에 있던 병방을 불렀다.
“병방, 저것이 뭔 소리요?”
“사또님을 찾는 백성들이 많이 몰려왔습니다.”
그때 밖에서 이방이 사또를 찾았다.
“사또, 어서 동헌으로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그 소리에 놀란 김두현은 방문을 열어젖히면서 물었다.
“이방, 이것이 뭔 일이요? 내가 나가면 일이 해결되겄소?”
“그것은 나가 보셔야 알 것 같습니다. 일단 나가셔야 합니다.”
광양 사또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허둥지둥 동헌으로 내달았다. 그 뒤를 이방과 호방이 뒤따르며 소리 없이 웃었다. 동헌 의자에 사또가 앉자 박창규가 앞으로 나섰다.
“사또, 우리는 지금 이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사또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실 것으로 믿고 말씀을 올립니다.”
그 말에 사또는 덜덜 떨면서도 짐짓 위엄을 갖춘 양, 말을 똑바로 하려고 애를 썼다.
“너희들은 들어라. 청이 있으면 소장을 써서 내면 된다. 이렇게 떼 지어서 오는 것은 무엄한 짓이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악다구니를 썼다.
“뭐라고, 사또 시방 당신이 살고 싶소? 죽고 싶소?”
“우리 청을 안 듣는단 말이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사나운지라 사또는 얼른 꼬리를 내렸다.
“어허,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떠들지 말고, 너희들의 청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말하여라.”
무리 중에서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박창규가 앞으로 쑥 나서더니 가슴팍에서 두루마기 종이를 꺼내들고 읽어 내려갔다.
“사또는 잘 들으시오. 첫째, 양전세, 균역세는 나라에서 정해준 것만 정확하게 법대로 받아 가시오. 둘째, 공납에서 방납인을 없애 주시오. 우리 지역 특산물을 우리가 알아서 바치게 해 주시오. 중간에서 방납인이 뜯어가는 돈이 너무 많아 우리들이 살 수가 없소. 공납은 이 관아에다 우리 특산물을 직접 바치게 해 주시오. 셋째, 좌수를 우리 손으로 뽑게 해 주시오. 넷째, 지금껏 내지 못한 세미, 세전을 더는 독촉하지 않는다고 약조를 하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감이 세금 대신 걷어간 우리 땅문서를 돌려주시오.”
초판에 많은 사람들이 들이닥친 것을 보고 덜덜 떨던 사또 김두현은 박창규가 읽어 내려가는 소장을 듣고 이제는 화가 뻗치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였다. 그는 백지홍 이방의 청을 대번에 잘라버렸듯이 이번에도 그리하였다.
“너희 무도한 놈들은 들으라. 너희의 소장 중 하나도 들어줄 것이 없다. 조세는 이 나라의 백성이면 누구나 내야 하는 법, 그 법을 어긴 자는 국법으로 처벌하는 것도 당연한 법. 오늘 너희들은 모두 옥에 가두어야 할 일이지만 광양 감옥이 좁은 것이 한이다. 또 좌수 선임을 너희들 손에 넘기라는 것은 이 나라의 반상의 법도를 뒤집어엎자는 소린데 그것 또한 극악무도한 말이다.”
이번에는 동헌 뜰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 키는 작아도 얼굴빛이 단단한 사람이 나섰다.
“사또, 통촉하옵소서. 우리도 이 나라의 백성이오. 우리도 묵고는 살아야 이 나라의 백성 노릇을 하옵니다. 지금 이대로는 살 수 없습니다. 오늘 저희의 청을 들어 주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 사람의 말끝에 사람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외쳤다.
“사또 우리의 청을 들어 주소서.”
사또는 급하게 이방, 호방, 병방을 가까이로 불렀다.
“저들을 다 잡아 가두시오.”
그러자 이방 백지홍이 말하였다.
“우리 관아에 향리들과 병사들보다 저들의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지금은 사또 신변이 위험하오니 일단 저들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약조를 하는 것이 어떨는지요?”
“병방 생각은 어떠시오?”
“이방 생각이 옳은 듯하옵니다. 오늘은 우선 이 난국을 피하고 훗날을 기약하십시오.”
“에끼 이보시오. 나라 조세를 탕감해 주라는데 그것을 이놈들과 약조한 날엔 곧 이 나라 조정에서 내 목숨을 걷어갈 것이오. 또 광양 향반들의 권리인 좌수 자리를 저들의 손에 넘기는 날엔 이 몸이 조선 양반들의 화살에 맞아 언제 죽는지도 모르고 죽을 것이요. 그런데 오늘 하루 편하자고 그런 죽음의 약조를 하라니, 나는 이 자리에서 죽으면 죽었지 그것은 못하오.”
“그럼 저들을 어찌 처리할까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저들을 해산시켜 보시오.”
이방, 병방, 호방은 동헌 뜰로 내려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척 하였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동헌 뜰은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준비해 온 횃불을 피워 올렸다. 박창규가 다시 나섰다.
“사또, 우리는 사또의 처분을 오랫동안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십시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시요.”
“세전을 탕감해 주시요”
“우리 집 문서를 돌려주시요.”
그러자 사또는 마지막 안간힘까지 내었는지 제법 큰소리로 호령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너희들 청은 들어 줄 수 없는 것뿐이다. 너희들이 오늘 이렇게 관아로 몰려와 행패를 부린 것도 큰 죄다. 그렇지만 너희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물러가면 오늘의 죄는 묻지 않을 것이다. 바로 물러가라.”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그때였다. 박창규가 동헌 대청마루로 뛰어 올랐다.
“사또의 말을 믿지 마시오. 오늘 사또가 우리의 청을 하나도 들어줄 수가 없다 하였소. 우리가 여기서 물러나 흩어지면 오늘의 죄는 묻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오. 지난겨울 우리더러 산밭을 개간하라고 독촉할 때 개간한 땅은 전세를 면제해 주겠노라 약속하였소. 하지만 사또는 그 약속을 헌신짝 팽개치듯 하였소. 그런 사또를 우리가 믿을 수 있겠소?”
“옳소! 차라리 사또를 내쫓읍시다.”
“사또를 동헌 밖으로 끌어내라.”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김두현 현감은 새파랗게 질렸다. 아래 관속들을 불렀으나 다들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 박창규를 비롯한 몇 사람이 현감 옆으로 다가섰다. 그들은 살집이 좋은 현감을 의자에서 들어올렸다. 현감의 양 겨드랑이를 잡아끌고 동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동헌 문앞으로 현감을 내던져 버렸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현감의 얼굴에서 피가 났다. 현감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리를 절뚝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현감을 전송하는 관속은 없었다.
조정에서는 급하게 나주 목사 김규식을 안핵사로 임명하여 광양현으로 파견하였다. 안핵사는 박창규를 비롯하여 난리에 깊이 관여한 백성들을 잡아들여 효수하였다.
하지만 관속들에 대한 처분은 달랐다. 이방 백지홍을 비롯하여 호방, 병방 등은 난리에 깊이 개입한 관속인데도 원악도로 유배 보내는 것으로 그쳤다.
제3장 청혼
구례 구만촌에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양또치 집 옆에 아담한 초가집을 짓고 조삼도 가족들이 옮겨와 살게 된 것이다. 양계환과 조두환은 자주 구례에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날도 양계환은 광양 월포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올라와 구례 구만촌 가까이에서 내렸다. 늦여름 무더위도 가시고 가을 하늘이 파란 것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섬진강 가에는 빨래하는 아낙들이 있었다. 강가에서 언덕으로 오르는 길에 앞서 가는 두 여인이 있었다. 머리에는 빨래한 것을 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걸음이 빠른 양계환이 그들을 지나쳤다. 계환은 부끄러워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도 어떤 여인들인지 궁금하였다. 고샅으로 들어섰을 때 양계환은 걸음을 멈추고 먼발치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여인들을 보았다. 그 여인들은 모녀지간인 듯싶었다. 처녀는 단정하고 고왔다. 속으로 구례엔 미인들이 많구나 했다. 아버지도 첩을 여기서 얻었다. 지금 그 첩 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지만.
먼발치에서 한번 봤을 뿐인데도 머릿속에서 처녀의 고운 자태가 떠나질 않았다. 그날 이후로 양계환은 부쩍 더 구만촌을 찾았다. 올 때마다 빨래터에서 그 처자를 볼 수 있을까 마음 졸였지만 그날 이후론 처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 처자가 들어간 고샅길 주변도 몇 번이나 가 봤지만 처자 얼굴은커녕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양계환이 하루는 양또치에게 그 고샅에 큰 집 처자가 어떠냐고 물었다.
“아, 임정연 어르신 댁 서엽이 아씨 말인가요?”
“서엽이….”
“근디 서엽이 아가씨를 왜 물어요?”
“아니 그냥, 그 처자가 좀 궁금해서요.”
양또치는 허허 웃었다.
“아따, 우리 도련님! 그 처자를 어찌 또 보고 맘에 품었는갑소. 아, 글먼 지가 다리라도 놔 드리까?”
양계환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면서 답했다.
“야.”
“그 집이라면 나도 잘 앙깨 도련님 댁에서 허락만 허먼 집사람을 중매쟁이로 보내도 되꺼요마는….”
그 말을 들은 양계환은 마음이 바빠졌다. 바로 월포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께서는 마침 안방에 계셨다.
“어무니, 지도 인자 장개나 가 볼라요.”
“야가 갑자기 자다가 봉창 뚜드는갑네! 뜽금 없이 뭔 장개다냐? 차근차근허니 이약을 해 봐.”
“어무니, 구례에 지 맘에 쏙 드는 처자가 있당깨요. 어무니가 어찌 쫌 해보이다!”
“그래, 어떤 처자가 우리 아들 맘을 훔쳤을꼬?”
어머니는 환하게 웃었다. 지금껏 혼인 이야기를 할 때는 아무 반응이 없더니만 드디어 때가 왔구나 싶어 반가웠다. 어머니는 서둘러서 구례 임정연 댁으로 청혼을 넣었다.
구례 임정연의 집에서는 갑작스런 청혼을 받고 놀랐다.
임정연이 아내에게 말을 붙였다.
“여보. 이 청혼을 어찌하면 좋겠소? 양또치 마누라 이야기로는 그 집이 광양에서 큰 부자라 합디다.”
조용히 듣고 있던 아내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 집이 부자인 거야 이 근동 사람은 다 알지이다. 하지만 난 시아부지 자리 땜세 싫구만요. 그 아버지란 양반이 여그서 귀동이 어매를 첩으로 데려간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이다. 우리가 다 아는디.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면 온갖 첩을 들여서 우리 서엽이 애간장을 태울 것인디 그런 자리로는 돈이 억만금이래도 보내기 싫구만요.”
“그럼 이 일을 어찌 헌다 ~ ”
“어쩌긴 뭘 어째요? 제가 중매쟁이를 불러 잘 말헐 것인께 그것은 걱정 마소.”
구례 임정연의 집에서 며칠 후 거절의 답이 왔다. 이유는 궁합이 안 맞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것은 거절의 표현일 뿐이었다. 양계환과 그의 어머니는 크게 상심했다.
양계환은 한동안 집 밖에도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만 뒹굴거렸다. 여러 날이 되어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아들을 보다 못한 그의 어머니가 봉강의 친구들까지 집으로 불러 들였다. 친구들하고 술이라도 먹으라고 어머니는 아들 친구들이 올 때마다 술상을 잘 차려 주었다. 자주 친구들을 만나고 시간이 흐르자 구례 처자는 조금씩 잊혀졌다. 대신 석훈이와 만나기만 하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두 사람은 나라 돌아가는 꼴은 엉망이고 유학 경전 공부도 세상 살아가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유석훈이 양계환에게 동학을 소개했다. 구례에서 동학 공부하는 날이라고 같이 가자고 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이 모두 믿기는 것은 아니나, 친구의 말이 간절하여 두말하지 않고 그 길로 바로 따라 나섰다.
그런데, 놀라웠다. 동학 공부하는 집이 임서엽의 집이었다.
‘애써 잊었던 임서엽 처자를 볼 수 있다니 이게 무슨 인연인가? 하지만 나와 혼인은 할 수 없는 여자다. 이 집에선 이미 나하고의 청혼을 거절하였다. 하지만 이 집 사람들은 내가 청혼했던 광양 월포의 양 도령인지 모른다.’
계환은 다시 속이 쓰렸다. 임서엽이와 인연이 아닌 줄 알면서도 두근거리는 맘을 어찌할 수 없었다.
계환의 착잡한 속내를 알길 없는 석훈은 찾아드는 청년들과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다. 청년들은 속속 모여들었다. 남원 사람 류태홍이 먼저 인사를 청했다.
“안녕하시오. 난 류태홍이요. 예전부터 만나고 싶었소. 요즘 나라 꼴이 말이 아니지라. 다들 어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궁리가 많지라. 나도 그러요만….”
유석훈이 말을 걸었다.
“그리 말씀 허시는 걸 봉깨, 그쪽은 뭔가 질을 찾으셨는갑소~이!”
빙긋이 웃으며 류태홍이 대답했다.
“그러지라. 지가 길을 제대로 찾았지라. 혹 들으셨는가 모르겄는디 우리가 살 길은 동학이요. 동학은 사람이면 누구나 살 길을 알려 주지라. 요새 관것덜이랑 왜놈, 양놈, 되놈 등살에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인디 우리는 최제우 대선생이 알려주는 우리 교, 동학으로 똘똘 뭉치기만 하면 살 길이 환히 보이요. 그런게 그대들도 동학에 들어오시요.”
옆에서 눈을 크게 뜨고 듣던 양계환이 물었다.
“긍깨 동학에만 들어가면 저 관것들한테도, 왜놈, 되놈, 양놈들한테도 안 당하고 살 무슨 수가 생긴단 말이요?”
“그러지라. 우리 도학 우리 학문인 동학으로 똘똘 뭉쳐 양반 상민 가리지 않고, 부자 가난한 사람 가리지 않고 서로서로 도와 잘 살 방도가 있소.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서로 돕고 살면 우리 힘으로 잘 살 수 있지라. 동학이 궁금하면 다음 공부 모임에도 꼭 오시오.”
제4장 개벽운수(開闢運數)
동학 공부를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양계환은 동학 공부 모임이 구례에서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구례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봄바람은 가지 끝에 잔설처럼 남은 매화 꽃잎을 날려 행인들의 코끝을 간질였다. 산에는 흐드러지게 핀 왕벚꽃이 온통 세상을 환하게 만들었다. 청년들은 별 일이 없어도 가슴이 설렜다. 해가 중천에 닿으려면 아직 시각이 좀 남았는가 싶은데 구례 임정연의 집에는 젊은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흔 아홉 칸은 아니어도 그 근동에서 제법 크고 넓은 집이건만 청년들 여남은 명이 들어서자 집이 꽉 찬 듯했다.
그 집 아들 임봉춘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손님을 맞이했다. 광양의 양계환, 유석훈, 조두환, 서윤약, 한군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대문간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시오. 광양의 젊은 청년 도인들은 다 모여서 오시구만요. 보기 좋수다. 하여간에 오시느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겄소. 저쪽 사랑채에 다 모여 기시오. 어서들 듭시다.”
월포 양계환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남원 류태홍 접주도 오싰소? 오늘 강론이 궁금해서 며칠 전부터 오늘이 오기를 목이 빠지게 지달맀당깨요.”
“허허. 양 접주만 그런 것이 아니오. 오늘 오는 사람들 다 그런다오. 어서 갑시다.”
인사가 끝나자 임봉춘은 사랑채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방문을 열자 방안에도 이미 사람들이 가득해서 어찌 들어갈까 싶었다. 바깥 쪽 사람들이 쭈뼛거리고 방안 눈치만 살피고 있자 이 집 주인이자 방 안에서 가장 연장자인 임정연이 말을 내었다.
“허허. 남원의 류태홍 접주님 강론이 사람들 마음을 다 끌어 댕긴갑소. 오늘은 지난 번 보다 더 많이 모였습니다 그려. 좀 좁지만 바짝 다가앉아서 오늘 강론을 들어보께라. 자자, 이짝으로 어서들 올라와 앉으시구랴. 멀리서들 오싰는디 다 같이 들어보십시다.”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방 밖에 사람들이 들어오도록 자리를 만들고 인사들을 나누었다. 자리가 정돈되자 얼굴이 환하고 인상 좋은 임정연이 모임 시작을 알렸다.
“오늘 강론을 해 주실 분은 지난번과 똑같이 남원의 류태홍 접주요. 오늘 말씀도 기대되지요. 먼저 심고합시다.”
방 가운데 상 밑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청수를 상 위에 올리고 임정연은 심고를 하였다.
“한울님, 임진년(1892년) 삼월 초이튿날 남원 류태홍 접주님을 모셔 동학 공부를 시작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 도인들 가슴에 파고들어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여 동학하는 삶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소서.”
심고를 마치자 류태홍 접주는 방안에 도인들과 한 명 한 명 눈인사를 나누었다. 나이는 젊지만 류태홍 접주는 언제 봐도 차분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강론을 시작하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기가 어떤 시기인지 궁금하시지요? 이 시기에 대해 일찍이 최제우 대선생께서 말씀하셨고 그것을 최시형 선생이 다시 정리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을 살펴보고 이야기들을 나눠보지요.”
자리가 비좁아 바싹 붙어 앉은 봉강 유석훈과 월포 양계환은 눈빛을 반짝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류태홍 접주를 바라보았다.
“지금 운수는 개벽운수(開闢運數)라고 우리 대선생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운수는 천지가 개벽하던 처음의 큰 운수로 돌아가세계 만물이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크게 바뀔 운수가 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산하의 큰 운수가 다 이 도에 돌아오니 새 한울 새 땅에 사람과 만물이 또한 새로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임봉춘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그러면 지금 시기가 천지가 개벽하는 것처럼 양반도 천민도 없고, 니 땅 내 땅도 없고, 오로지 새 한울 새 땅에 모든 것이 새로워질 개벽의 시기가 가까웠다는 말씀인가요?”
류태홍이 천천히 대답했다.
“다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더 이어서 말씀을 살펴보고 생각들을 나누시지요.”
옥룡의 서윤약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류태홍 접주를 독촉했다.
“참말로 그런 세상이 언능 오면 좋겄소. 류 접주, 계속 해월 선생 말씀을 이어보시지요.”
“세상 만물이 나타나는 때가 있고 쓰는 때가 있으니, 달밤 삼경에는 만물이 다 고요하고, 해가 동쪽에 솟으면 모든 생령이 다 움직이고, 새 것과 낡은 것이 변천함에 천하가 다 움직인다고 하였습니다.변하여 화하고, 화하여 나고, 나서 성하고, 성하였다가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나니, 움직이면 사는 것이요 고요하면 죽는 것이라고 다시 새겨 주셨습니다.”
이맛살에 주름을 지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봉강 유석훈이 물었다.
“그럼 지금 시기가 움직여야 살고 가만 있으면 죽음에 드는 시기라는 말씀인가요? 만약 그런 말씀이라면 우리가 앞으로 어찌해야 할까요?
한군협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 썩어빠진 세상을 확 뒤집어엎어 삐리야 된다는 말씀이 아닐까요? 탐관오리 한두 놈 징치헌다고 해서 바로 잡아질 일도 아니고, 서양에서 헌다는 민회처럼 왕이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우리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맹그라야 쓴다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그만요. 글고 양반이니 쌍놈이니 허는 것도 싹 다 없어지고 이 세상 사람이면 모두가 한울로 대접받는 세상을 맹그라야 쓴게 우리가 싸게싸게 움직이야 되지 않겄냐 이말이지다. 여러분, 지 말이 틀렸습니까?”
“맞소.”
“아고, 시원허니 말 잘했소.”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치는데 월포 양계환이 나서며 말했다.
“누가 들을까니 무섭소마는 맞는 이야기지이다. 요새 왜놈들이 나 세상이다 허고 설치고 댕기 싼디 시방 이 모냥으로 살다가는 이 땅이 금새 왜놈 땅 돼 불겄소. 요새 광양 앞바다는 왜놈들 등쌀에 우리 어민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요. 관군 놈들은 왜놈덜헌티는 꼼짝도 못험시롱 광양 사람덜헌티만 험허게 뜯어 가부요. 그걸 보먼 가심에서 천불이 난당깨요.”
좌중에 올라오는 열기를 누르며 류태홍 접주가 강론을 이어 갔다.
“천지일월은 예와 이제의 변함이 없으나 운수는 크게 변하나니, 새것과 낡은 것이 같지 아니 하고 새것과 낡은 것이 서로 갈아드는 때에, 낡은 정치는 이미 물러가고 새 정치는 아직 펴지 못하여 이치와 기운이 고르지 못할 즈음에 천하가 혼란스러울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를 당하여 사람 사는 세상에 윤리, 도덕이 무너지고 사람은 다 금수의 무리에 가까워질 터이니 큰 난리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가슴속에 뭐가 올라오는지 유석훈은 목이 메었다.
“어째 말씀 하나하나가 이러코롬 가심팍에 팍팍 꽂힌다요? 참말로 놀랍그만요. 시방 우리가 사는 꼴이 어디 사람 사는 꼴이다요? 껍딱만 사람이제 이거는 짐승만도 못헌 꼬라지랑깨요. 근디 썩어빠진 정치 땜시 골벵 드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만 있는 것은 아닌갑더만요. 중국처럼 큰 나라도 백성들은 살기가 심들어서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났더랑깨요. 긍깨 우리나라도 사람을 한울처럼 소중히 여기는 우리 동학도인들이 나서야 희망이 생기는 거지다이~! 기왕에 개벽운수를 탄 김에, 이참에 확 바까 뿔먼 쓰겄당깨요.”
옥룡의 서윤약이 다시 말을 받았다.
“참말로 글먼 좋겄지다이~. 류태홍 접주, 남은 말씀도 언능 이어 보시이다.”
류태홍 접주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더니 말씀을 이어 갔다.
“우리 도는 우리나라에서 나서 장차 우리나라 운수를 좋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우리 도의 운수로 인하여 우리나라 안에 영웅호걸이 많이 날 것이니, 세계 각국에 파견하여 활동하면 형상 있는 한울님이요, 사람 살리는 부처라는 칭송을 얻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얼굴에 활짝 웃음을 띠면 이마 주름은 펴지고 입 양쪽으로는 나잇살 주름이 깊게 잡히는 임정연이 말했다.
“젊은 양반들은 부지런히 동학 포덕을 해야 쓰겄소. 나중에 개벽 세상이 되면 세계 각국에 나가 우리 도를 퍼뜨려서 이 세상이 다 천국이 되게 하먼 얼마나 좋겄소. 세상 만물을 다 한울로 모시고 특히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는 세상이 오먼 그 세상이 한울나라 다시 말하면 천국 세상이지라. 아! 생각만 해도 좋소. 내가 그때까정 살아 있으먼 좋겄소. 우리 집 봉춘이 자식놈은 그런 천국에서 살겄지라. 그 나라를 위해 할애비가 힘 좀 써야겄구만이라.”
젊은이들은 다같이 환하게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자 양계환이 물었다.
“어느 때에나 그리 될까요?”
류태홍 접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우리 대선생께서는 그것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그 때가 있으니 마음을 급히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때가 올 것인데, 만국 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후퇴하는 때가 바로 그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사람 좋은 인상을 지닌 서윤약이 궁금증을 내었다.
“만국 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후퇴하는 때라먼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덜이 크게 곤욕을 치르게 될 거라는 말씀으로 들리구만요. 왜놈, 되놈, 이름도 잘 모르는 나라에서 들어오는 양놈들이 한바탕 우리 땅에서 난리를 치고 나가먼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찌 감당허까~이? 아고! 생각만 해도 난 무섭소.”
그 말에 좌중이 조용해지자 방문 쪽에 자리 잡고 앉아 있던 유석훈이 말했다.
“꼭 그리 볼 일 만은 아니지다. 지금 이 나라 안은 탐관오리들 등쌀에 남아나는 것이 없소. 그런 판인깨 만국 교역을 헐라고 들어오든지 우리나라를 뺏어갈라고 들어오든지 간에 왜놈, 되놈, 양놈들이 설치고 댕겨 곧 한바탕 난리가 날 성도 싶소만, 나라 관리들은 그런 나라 정세는 신경도 안 쓰고 오히려 왜놈덜헌테 붙을까, 로서아놈덜헌테 붙을까, 되놈덜헌테 붙을까 그러고 자빠졌소. 그래서 우리 해월 선생이 요 사태를 미리 알고서 허신 말씀이지다. 긍깨 우리가 개벽운수를 제대로 맞이헐라먼 탐관오리 몇 놈은 목을 따 버리고 척양척왜 깃발을 들어야 겄소. 시방 개벽운수가 온다먼 운수는 이짝으로 굴러 온다 생각허고 한판 크게 움직일 채비를 해야겄구만요.”
다들 표정은 심각하지만 대체로 유석훈의 말에 동의하는지 여기저기서 맞장구가 터졌다.
“맞소.”
“우리 손으로 개벽운수 맞을 채비헙시다.”
좌중의 분위기가 열을 띠어 가는 가운데 류태홍 접주가 심고로 마무리하였다.
“한울님, 오늘은 개벽운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도인들의 가슴에 소중히 담은 말씀대로 용기를 내어 개벽 세상을 열어 갈 수 있도록 굽어 살피소서.”
주문을 외는 시간이 이어졌다. 모두 함께 주문 소리에 실어 개벽 세상을 열어 보려는지 딴 날보다 주문 소리가 크고 힘찼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한울을 모셔 우주 만물의 무궁한 조화를 이루고 이를 영원히 잊지 않아 만사가 다 이루어지고 저절로 알아진다.’는 뜻을 지닌 동학 본주문을 모두들 힘차게 외웠다.
섬진강은 흐른다 Part 2(7회~12회)로 이어집니다.
- 기계유씨 대동보 편찬위원회에서 1991년 10월 1일 발행한 족보 제5편 1067쪽에 부모와 아들이 동학란 졸로 기록되어 있다. 그 가족은 동학혁명으로 대가 끊긴 것이다. 그리고 언제 사망했는지 확인할 기록이 없고, 대가 끊긴 것으로 추정되는 사촌 가족들도 있다. 오로지 단 한 가족만이 동학혁명 이후 김제로 피신하였고, 거기서 다시 경기로 이사하여 살았는데, 광양에서 떠날 때 돌아오면 죽은 목숨이니 절대로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말을 듣고 피신하여 살았다. 1970년대 들어서야 광양 봉강으로 돌아와 조상 묘 두어 군데를 찾았다고 하였다. 광양군지에 나오는 봉강면 접주 유석훈은 기계유씨 족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동학란 졸로 기록된 것으로 그때 그 집안의 누군가였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족보에도 없는 유석훈 접주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본문으로]
- 진월의 양 접주를 광양시지에서 확인하고 그 후손을 찾았다. 후손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의 이름은 양계환이고 그 집안은 원래 잘 살았다고 하였다. 동학혁명 이후에도 양계환은 살아남아 계속 피신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확실하지 않아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였으며, 제사날도 대강 정하였다고 하였다. 후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양계환은 진월 구동마을을 배경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본문으로]
'소설 > 유이혜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진강은 흐른다 Part 2(7회~12회) (0) | 2015.08.19 |
---|---|
<섬진강은 흐른다 12회> 10장 휘날리는 동학농민혁명의 깃발(1894년) (0) | 2015.07.30 |
섬진강은 흐른다(11회) 9장 동학의 꿈 (0) | 2015.07.23 |
섬진강은 흐른다(10회) 8장 법헌 최시형 (0) | 2015.07.16 |
섬진강은 흐른다(9회) - 7장 보은 원평 취회(1893년) (0) | 2015.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