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봄날
뜻이 통한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라도 석훈은 임봉춘의 집을 찾았지만 구례까지 친구 집을 쥐방구리 드나들 듯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석훈은 봉춘의 집에 드나들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갸름한 얼굴에 입술이 붉은 서엽이 때문이었다. 봉춘이 동생 임서엽이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봉강에서 달덕이재를 넘어 구례까지 산길을 달리고 섬진강을 건너는 나룻배에 몸을 실었다. 성불사를 지나 백운산 줄기로 이어진 높은 산을 넘을 때도 힘든 줄 모르고 달음박질로 산을 탔다. 그런데 봉춘의 집에 자주 들르는 사람은 자기만이 아니었다. 친구들도 은근히 자주 왔다. 석훈이 다섯 번 오면 계환과 두환이 중에 누군가를 한 번은 마주쳤다. 친구들은 봉춘과 시간을 보내면서 동학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서엽이 한 번씩 들러 새참을 가져다주고 가면 괜스레 총각들 얼굴이 붉어졌다. 석훈은 애가 달았다. 도통 서엽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석훈은 봉춘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월 어느 날 해가 다 저물어 가고 어둠이 깔릴 무렵이었다. 친구 조두환이 숨을 할딱거리면서 석훈의 방문을 열었다.
“뭔 일로 이리 숨넘어가게 왔당가?”
그때서야 숨을 한번 몰아쉬더니 두환은 능글능글 웃으면서 농을 걸었다.
“어이! 유접장! 유접장헌티 존 일이 있는디 이약을 허까마까?”
석훈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존 일?”
“그래! 이약해 주먼 술 한잔 살랑가?”
“그거이사 들어 봐야제 술을 내던가 말던가 허제!”
“오늘 구례 조삼도 아재네 갔다가 봉춘이를 만났네. 봉춘이가 내일 자네 보고 화엄사나 항꾸내 놀로 가자고 허더마. 자네헌티 존 일이람서 나보고는 알라 말고 빠지라던디 도대체 나 모르게 뭔 일들을 꾸미는 거여?”
그때서야 석훈은 얼굴빛이 붉어지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참말로 수상허네! 봉춘이 그 사람도 절대 안 갤차 주던디, 대체 뭔 일이당가?”
“으응? 암것도 아니네!”
실눈을 뜨고 석훈의 얼굴을 살피던 두환이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 시방 봉춘이 여동생 땜시 글제?”
그때서야 석훈은 안 되겠다 싶은지 실토했다.
“자네도 알았는가? 나 그 집서 첨으로 서엽이 처자를 봤을 때부터 좋았당깨.”
“우리도 진즉에 다 알고 있었네! 암튼 낼 잘해 보소~이!”
그날 저녁 석훈은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이면 서엽이와 가까이서 만난다. 좋다. 아니 두렵다. 만나면 뭘 할까?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텅 비었다. 그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였는데 먼동이 텄다. 석훈은 재빨리 행장을 차리고 성불사 뒷산으로 내달렸다. 그날은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처럼 달려 아침 해가 환하게 빛날 즈음 구만촌에 닿았다. 보통 날 같으면 바로 대문을 열고 들어갈 것인데 오늘따라 괜히 쭈뼛거리고 오금이 저렸다. 한참을 서성대고 있었더니 마침 봉춘이 나타났다. 봉춘은 석훈을 보고 웃었다.
“왜? 오늘은 들어오기가 좀 꺼끄라븐가?”
석훈은 머리를 끄덕였다.
“자네 그리 수줍어서 내가 멍석 깔아줘도 서엽이 마음을 잡을 수 있을랑가 모르겄네.”
“나중 일이사 어찌 되던 간에 우선 쩌그 화엄사 가는 쪽 성황당에 먼저 올라가 있소! 나가 서엽이랑 쫌 있다가 그리로 갈랑깨.”
석훈이 성황당에 와서 기다린지 한참 만에 서엽이와 봉춘이 나타났다. 서엽이 석훈이 쪽으로 다가와서 떡을 내밀었다.
“언능 드시이다! 아침도 안 드시고 오싯쓰껀디.”
봉춘이 끼어들었다.
“그래~! 언능 묵게~! 물도 마시 감서.”
석훈이 인절미를 두어 개 먹고 물도 한 모금 마시고 나자 봉춘이 뜻밖의 말을 하였다.
“어이! 석훈이! 오늘 나는 남원에 류태홍 접주를 만나러 가야 헝깨 자네가 우리 서엽이 화엄사 구경 좀 시키 주소. 자가 가차이 삼서도 여지껏 화엄사 귀경을 한 본도 못했다고 하도 그래 싸서 나가 덱꼬 갈라고 했는디, 갑자기 일이 생기서 자네를 불렀응깨 잘 덱꼬 댕김서 귀경 잘 허고 오소~이!”
석훈은 당황했다.
“으응?”
“ 놀래기는. 왜~! 싫은가?”
“아니. 싫은 건 아니고.”
“암튼 우리 동생 잘 부탁허네.”
그리고 봉춘은 성황당을 벗어나서 저만큼 달아났다.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을 때 서엽은 먼산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봉춘이 떠나자 석훈은 그제서야 서엽을 봤다. 서엽은 도시락 보자기를 들고 있었다.
“무거운디 이리 주소! 도시락은 내가 들고 갈랑깨.”
서엽은 들고 있던 보자기를 내주었다. 석훈은 보자기를 받아들고 서엽의 차림새를 찬찬히 살폈다. 서엽은 짚신을 신고 있었다. 아마도 봉춘이 오늘은 많이 걸어야 하니 짚신을 신으라고 하였던 모양이다. 붉은 치맛단은 버선발 위에 있어 걷기에 편해 보였다. 노랑 저고리는 한껏 화사하였다. 길게 땋은 머리에 자줏빛 댕기를 매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어서 그런지 더 활달해 보였다. 석훈은 속으로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말을 하였다.
“저, 저, 서엽이!”
서엽이 석훈이 쪽으로 천천히 돌아섰다. 석훈이 또 침을 삼키는지 입술에 힘을 주더니 말을 건넸다.
“오늘 나랑 화엄사 가 볼랑가?”
의외로 서엽의 대답은 쉽게 나왔다.
“그래요.”
서엽의 눈에 비친 봄날의 산야는 아름다웠다. 산색은 더없이 푸르렀다. 두 사람 앞으로 난 산길도 시원했다. 산길은 초록빛 연한 잎들을 달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뻗어 있었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가만히 심호흡을 했다. 얼마 만에 동네를 벗어난 나들인가? 도토리나무, 때죽나무, 소나무, 벚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여린 나뭇가지들까지 환하게 비추었다. 길가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많은 들꽃들은 모양도 향기도 다 달랐다. 세상엔 이렇게 다른 꽃들이 많았구나. 사람도 꽃도 모두가 다 다르다는 생각을 하자 웃음이 났다.
서엽은 살짝 앞서 걸어가는 유석훈을 봤다. 그는 처음 봤을 때보다 키가 더 커 보였다. 훌쭉한 키에 뚜렷한 얼굴 윤곽선을 지녔다. 오늘 그를 따라가라는 봉춘 오라버니 말이 싫지 않았다. 서엽은 동학하는 오라버니들은 다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석훈과 함께 간다고 생각하니 더 좋았다.
산길 모퉁이를 돌자 꽃향기가 풍겼다. 조금 걸어 올라가자 푸른 잎사귀 아래로 하얀 꽃망울이 가득 달린 나무가 보였다. 앞서가던 석훈이 그 나무 아래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더니 서엽이에게 손짓을 했다. 서엽이 머뭇거리자, 자기가 선 자리를 비키며 어서 들어와보라고 했다.
서엽이 나무 아래로 오자 석훈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서엽이! 고개 좀 들어 보소.”
서엽이 목을 뒤로 젖히고 보니 눈앞이 온통 하얀 꽃 천지였다.
“꽃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것 같아요.”
“향기도 좋제?”
“아! 향기도 좋고 꽃도 참 예뻐요.”
“서엽이, 자네도 예쁘네.”
서엽은 잠시 어지러웠다. 꽃향기에 취했는지, 부끄럼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서엽이, 이 나무 이름이 뭔지 안가?”
“이름이 뭐예요?”
“때죽나무.”
“때죽나무. 꽃은 예쁜데 나무 이름이 이상하네요.”
석훈은 때죽나무 꽃가지를 꺾어서 서엽에게 건네주었다.
“이 꽃이 가을이 되면 땅을 향하여 수많은 열매로 열리는데 그 껍떼기가 중머리 맹키로 회색빛으로 빤질빤질허고 똥굴똥굴헝깨 마치 중들이 떼로 몰려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리 불렀다네. 떼중나무라고. 그 말이 때죽나무로 배낀 거지~!”
“이 꽃에 그런 이상한 이름이 붙었단 게 재미지네요.”
“시방 여그서는 우리가 떼죽꽃에 둘러쌓였는디 이따가 화엄사에 도착하면 거그서는 사람 떼중을 볼 꺼시네. 하하.”
서엽이 때죽나무 하얀 꽃가지를 자기 코에다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오라버니, 이렇게 예쁘고 향기도 좋은 꽃이 떼죽꽃, 떼중꽃이라 그런께 이상해요.”
두 사람은 다시 부지런히 걸었다. 해가 중천에 이르렀을 때 화엄사가 눈앞에 보였다. 서엽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도시락을 먹고 절구경을 하자고 하였다. 도시락밥은 맛있었다. 화엄사 경내는 웅장했다. 조선 3대 사찰이라더니 절 집 규모가 놀랄 정도였다. 스님들도 많았다. 서엽이 웃었다.
“오라버니 말씀대로 떼중이네요.”
서엽이 그리 말해 주자 석훈도 기분이 좋은지 환하게 웃었다.
“서엽이, 저기 각황전 앞에 석등이랑 석탑이 보이제? 둘 다 무작허니 오래 되고 엄청시리 신령스럽당깨 저그를 돔서 소원이나 빌어 볼랑가?”
“참, 오라버니는 동학하는 사람이 무슨 말씀이단가요? 지는 한울님을 모시는 주문을 외울라요.”
“아, 그렇지. 서엽이 자네는 동학 낭자지!”
둘이는 함께 웃었다.
각황전을 지나 대웅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자탑이 있었다.
“사자탑도 멋지네요.”
“저 사자탑이랑 비슷한 것이 광양 옥룡사에도 있구마. 옥룡사는 울집서 산 고개 하나만 넘어가면 있는디 그 절도 도선국사가 세운 절이라네.”
“그래요?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네요.”
석훈이 장난끼가 발동하는지 서엽 얼굴 가까이로 바짝 다가왔다.
“서엽이 동학 낭자! 그러다가 떼중 되실라고요?”
서엽이 석훈을 향해 눈을 흘겼다.
“오라버니! 그리 놀릴 거예요?”
“아닌가? 하하”
두 사람은 화엄사 대웅전 뒤편에 있는 암자로 발걸음을 옮겼다.
암자로 가는 길옆으로 계곡물이 흘렀다. 청량한 물소리가 잦아드는가싶으니 대숲이 나타났다. 대숲을 지나 구층암에 다다랐다. 구층암 앞에 다 부서진 삼층석탑 하나가 비스듬하게 보였다. 거기를 돌아서니 안마당 쪽을 향해 승방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특이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모과나무였다. 나무 기둥 하나는 툇마루를 뚫고 하늘을 향해 솟아나는 듯하고, 바로 한 칸 옆에 기둥은 반대로 지붕을 뿌리로 받치고 땅 속으로 뻗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두 기둥 다 자연 상태 그대로 다듬지 않아 우둘투둘한 것이 살아있는 나무 같았다. 모과나무를 만져보던 서엽이 얼굴을 돌려 석훈을 봤다.
“오라버니, 이 기둥 좀 봐요? 이거 모과나무지요?”
“응, 맞구마.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여까지 들어와 불태운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받쳤구만. 이 기둥은 몇 백 년은 갈 것이여.”
“모과나무 기둥이 단단하게 보이긴 하네요.”
"비뚤비뚤 못 생긴 나무도 이래 쓰이니 참말로 보기 좋구마. 우리 사람들도 다 쓰임이 있고 귀헌 깨 우리 동학에서 누구나 다 한울님이라 하는 거겄제.“
“오라버니는 인자 모과나무 기둥을 봄서 도통하시는구마요. 하하”
“나는 안직 멀었구마.”
석훈은 서엽이 추켜세우자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어졌다.
어느덧 해도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석훈은 서둘렀다.
“인자 언능 돌아가세. 여그 오래 있다간 까까머리 중 되겄네.”
“그래요.”
두 사람은 발걸음을 빨리 하면서도 올 때보다 더 정겹게 대화를 나누었다.
“자네도 동학 경전 봤는가?”
“참 나. 오라버니보다 지가 더 많이 경전을 필사했다는 것을 모르시오?”
“아, 그랬는가? 앞으론 나가 자네헌티 동학을 배워야 쓰겄구마이.”
석훈의 말에 서엽은 웃었다.
“오라버니가 저에게 잘 보이면 필사본도 드릴 수 있지요.”
“동학 낭자, 아니 사부님. 오늘 화엄사 안내까지 해 드맀는데 지헌티도 필사본 한 부를 내라 주이다.”
서엽은 깔깔 웃었다.
“글까요. 앞으로 오라버니가 하는 것 봐서 더 많이 필사해 드릴 수도 있고요.”
“예이! 무엇이든 분부만 하옵소서.”
이번엔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깔깔거리고 웃었다. 두 사람은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웃으면서 바쁘게 걸었다. 해는 어느새 제 집을 찾아가 버리고 어둠이 깔릴 즈음 구만촌에 당도하였다. 서엽이 대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석훈은 돌아섰다. 다시 봉강 석평까지 돌아갈 길이 멀었다. 하지만 서엽의 마음을 얻은 석훈은 몸도 마음도 날아갈듯이 가벼웠다.
석훈과 서엽은 그해 가을 혼인 날짜를 잡았다. 서엽의 아버지 임정연은 석훈을 앞에 앉혀 놓고 당부하였다.
“자넹깨 나가 우리 서엽이를 맡기네. 자네도 한울, 서엽이도 한울잉깨 서로 위해 주고 서로 존중함서 살게나. 살다가 혹 어려븐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 모두가 똑같이 한울인 것만 명심허고 서로 애끼 주고 살먼 심든 시절도 지나가고 좋은 날이 올 걸세. 서엽이헌티도 동학을 제복 갤차 놨씅깨 자네 동네 부녀자들 포덕허는 일에도 큰 힘이 될 걸세.”
제6장 삼례취회(1892년)
임진년(1892년) 가을에 혼례를 올린 새신랑 유석훈은 서엽이와 함께 하는 나날이 좋았다. 밖에서 일이 있어도 빨리 집에만 가고 싶었다. 서엽이와 동학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이 좋아 겨울이 와도 추운 줄 몰랐다. 날마다 얼굴에 웃음을 달고 사는 그에게 삼례에서 열리는 교조 신원을 위한 모임 참여하라는 경통이 왔다. 새신랑 유석훈은 그 소식도 좋았다. 이제 사람들은 동학 세상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뚫고 있다. 거기에 자신이 할 몫이 있다. 지난번 공주 모임 때는 광양까지는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 하는 일이고 보니 충청도 인근의 도인들 중심으로 참여자를 제한한 거라 했다. 이번 대회에 광양 동학 도인들은 다 가는 거다. 서둘러야 한다.
“여보, 이번 삼례 모임에는 광양 도인들도 많이 참여허껀깨 행장을 잘 챙기주소.”
“농사일도 다 끝나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겠네요. 여자들도 그런 데 가는 사람 있으면 나도 한번 따라가 보고 잡소”
“나도 우리 이삔 각시를 델꼬 가고 잡소만 거그 가는 것이 보통 고생이 아니라서….”
“당신도 조심하셔요.”
어제 저녁부터 바쁘게 몰아챈 덕분에 사람들이 마당에 꽉 찼다. 유석훈은 그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는 단단한 사람이라 목소리도 차분했다.
“심고. 한울님! 여기 광양 도인들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모레 아침 일찍 삼례로 가려 합니다. 수운 대선생의 원을 풀고 동학 세상을 만들러 갑니다. 또 남의 나라에 와서 조선 백성들의 피를 말리는 양인들, 왜인들이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는 뜻을 분명히 하려 합니다. 한울님 우리 동학 도인들을 보호하소서. 심고”
심고를 마치고 유석훈 접주는 사람들을 향해 짧지만 단호하게 말을 했다.
“여러분! 인자 동학 도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공주서는 충청도 도인들이 모여서 충청 감사에게 수운 대선생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고, 척왜양하고, 동학 도인들을 대상으로 가렴주구를 일삼는 지방관들의 불법 행위를 금지해 달라고 요구했답니다. 거그서 한참 만에 나온 충청감사의 답이 앞의 두 가지는 임금님이 허시는 일이니 자기가 이러타 저러타 못 허고 동학 도인들에 대한 지방관들의 불법행위와 탄압은 못하도록 하것다는 약조를 했답니다. 인자 우리 전라도 차례라 전라도 동학 도인들이 삼례에서 다 모이기로 했습니다. 우리도 다 같이 삼례로 가갖고 동학을 핑계 삼아서 우리를 못살게 구는 관리들을 꼼짝 못허게 헙시다. 글고 이참에 수운 대선생의 신원으로 동학을 인정받읍시다. 또 남의 나라에서 제나라보다 더 설쳐대고 우리를 못살게 구는 왜놈들의 기도 좀 꺾어 놓읍시다. 그리해서 사람이면 모두가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봅시다. 우리는 모레 아침 일찍 출발허겄습니다. 여기 옆에 선 이 사람이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세세허니 일러드릴 것입니다.”
유석훈에 이어 양계환 접주가 말을 이었다.
“동짓달 초하루 날에 다 모인다고 헌깨 서둘러야것습니다. 광양서 삼례까지는 아침에 일찍허니 나서갖고 안 쉬고 걸으면 나흘 뒤 저녁밥 묵을 때쯤이먼 삼례에 도착허꺼그만요. 삼례 도착헐 때까지는 한데 잠도 여러 날 자야 허꺼네요. 모임에 참석허고 결과가 좋으먼 그날 저녁부터 바로 내리 오껀디 일이 잘 안 풀리서 그 다음 날로 밀차지먼 한데서 또 여러 밤을 더 자야 할랑가도 모를 일이그만요. 시방 여그서는 우리 일이 이틀이 걸릴지 사흘이 걸릴지 확실허니 알 수가 없습니다. 긍깨 열흘 이상 걸린다 생각하고 거기에 맞차서 옷이랑 주먹밥도 넉넉허니 챙기야겄습니다. 떡도 좋고 고구마 삶아 말린 것도 좋습니다. 뭐이던 간에 식량이 될 만헌 것이먼 조금씩이라도 이녁이 묵을 걸 챙기야 헙니다. 인자 날도 추버징깨 옷도 단단허니 챙기고 여벌 짚신도 마련허이다~! 다들 돌아가시서 단단허니 대비해 갖고 내일 아침에 일찍허니 마을 앞길에 모이서 함께 삼례로 떠납시다~!”
다음날 아직 어둑어둑한데도 마을 앞은 사람들이 잔치 마당에 몰려온 것처럼 많이 모였다. 좀 살 만한 집은 솜을 두둑이 놓아 누빈 옷을 단단히 챙겨 입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명의 홑겹 옷을 두 겹씩 겹쳐 입었다. 허리춤에는 짚신 서너 켤레를 달아 달랑거리고 등짝에 괴나리봇짐을 하나씩 챙겨 지고는 시끌벅적 웃고 떠들었다.
광양 사람들은 삼례까지 부지런히 걸었다. 공주 소식을 들은 터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 걸은 지 한 식경이 더 지나자 다들 뱃속이 출출했다. 앞에 가는 유석훈 접주는 밥 먹는 것도 잊었는지 밥 때에 관한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참다 참다 안됐는지 옆에서 양계환 접주가 말을 꺼냈다.
“유석훈 접주, 때가 돼서 사람들 배고푼디 간단허니라도 요구를 좀 허고 가야 쓰것그마.”
“아~! 그네이~! 나가 언능 삼례 갈 생각만 허다 봉깨 밥 때도 잊어 부렀네.”
“그럼 여그서 젝제금 챙기 온 걸로 요구를 헙시다~! 없는 사람들은 좀 더 가져온 사람들이 갈라 묵기도 허고. 무단허니 마을 옆을 지날 직애 사람들헌티 묵을 것을 부탁허거나 손을 대서 민폐를 끼치는 일이 안 생기게 다들 각별허니 조심헙시다이~!”
선 채로 유석훈은 아내가 준비해 준 주먹밥 한 덩이를 들어내어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있나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직은 다들 먹을 것을 챙겨 왔는지 빈손은 안 보였다.
길가 한쪽으로 자리 잡은 패에서 복돌이가 촐랑댔다.
“야, 너네 주먹밥에는 뭐 들었어? 나는 장만 쪼깨 발랐는디 니 것은 색깔이 다르다야. 쪼깐만 띠어 줘 봐. 내 것하고 바꿔 먹게.”
윤약이가 주먹밥 한 귀퉁이를 떼어주며 대꾸했다.
“히히, 언제 본겨? 니 없을 때 언능 묵어 불라고 했는디 니가 봐 부렀어. 아놔 묵어라”
주먹밥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것도 여러 질이었다. 보리만 있어서 뭉쳐지지가 않고 흩어져 버리는 밥, 그저 소금만 쪼깨 발라 간작즈럼한 밥, 김 가루가 붙어 있는 밥, 멸따구가 붙어 있는 밥……. 젊은 축들은 서로 바꿔 먹고 나눠 먹고 볼따구가 미어지게 밥을 입 속에 털어 넣고는 또 무슨 장난말로 웃음이 터지는지 밥알이 튀어나오곤 했다.
사람들은 밥을 먹자마자 바로 앉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걸었다. 밥도 먹었겄다 걷기만 하는 것이 심심했다. 인적이 없는 길을 걸을 때쯤에 젊은 축들이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주문 노래를 하자는 것이었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주문을 노래하듯이 가락을 붙여서 함께 목청껏 부르면 힘이 나고 걷는 것도 재미났다. 신바람이 더 나는 축들은 몸을 들썩이다가 대열 옆으로 삐져나와 춤사위를 덩실덩실 한바탕 풀어 놓고 다시 자신의 대열로 들어갔다.
신바람 나게 며칠을 걸어서 삼례 근방으로 들어섰다. 삼례역으로 가자면 조금 더 가야 했다. 앞서가던 유석훈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시방 삼례에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비좁응깨 우리는 이쯤에서 자리를 잡고 밤을 샌 담에 내일 아침 일찍허니 삼례역으로 들어갑시다.”
사람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논으로 들어섰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은 바짝 말라 있었다. 논 가장자리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볏짚가리가 쌓여 있었다. 다들 볏짚가리를 가져다 풀어헤쳐 깔고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남은 짚단을 나눠서 이불삼아 같이 덮고 잠을 청했다. 십일월에 접어든 날씨는 추웠다. 턱이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굴비를 꿰어 놓은 것처럼 일렬로 몸을 서로에게 밀착하여 붙이고 같이 짚덤불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사람들은 아직 안 자는지 짚덤불 속에서도 두런두런 말소리가 났다.
복돌이였다.
“언 놈 코고는 소리가 화포 소리만 혀.”
윤약이는 복돌이가 웃자고 하는 말을 차분히 받았다.
“그런께, 이 추운디서 참말로 잘 자네.”
둘의 말에 성삼이가 끼어들며 꿈꾸듯 말하였다.
“참말로 동학 세상이 오면 부자덜이 가난한 우리덜을 도와서 우리도 땅을 가지게 될까? 글고 그 땅에서 두레로 농사지어 다 같이 나눠먹게 될까?”
“그렇게만 되면 참말로 좋제. 아니 생각만 해도 오지게 좋은 그런 일은 냅두더라도 나라에서 세금만 덜 뜯어가도 살 만 하제.”
“맞어. 왜놈덜한테 절대로 쌀을 넘기면 안 되는디 웬수놈의 세금 낼라먼 가실걷이를 하나마나 그 좋은 쌀이고 콩이고 다 넘겨야 되니. 뭔놈의 세상 꼬라지가 이리 돌아가는지. 그 바람에 쌀값이 자꼬 올라가 지주들만 존일이제. 웬수 중에 젤로 큰 도적놈이 왜놈들이여.”
“그걸 알면서도 가실에 곡석을 넘기게 만드는 게 세금 아니당가. 땅주인 양반놈들은 세금도 덜 내고 배 뚜디리고 살다가 창고에 차곡차곡 쌓인 쌀은 봄 되면 비싸게 팔아 자꼬 부자가 된당께. 나도 이번 봄 넘기기가 수월찮을 성 싶네. 아무래도 논다랑지 하나는 또 없어질 성 싶당께. 개 같은 세상이여. 후유.”
“긍깨 빨리 동학 세상이 와야 써. 다같이 한울님인게 양반 상놈 없이 서로 존중하고 귀히 여기고 유무상자하여 서로 돕고 살면 그것이 천국이고 한울세상이제.”
“그러먼 세금도 좀 덜어지까?
“양반 상놈이 없어지면 세금도 좀 공평히 내겄제.”
“동학세상이 오기만 하면 우리는 살아서 천국을 누리는 거네~이!. 양반상놈도 따로 없고 세금도 낼 만큼만 내고, 마누래 자석들이랑 배부르면 그것이 천국이제.”
평상시에는 누구를 만나기만 하면 입이 쉴 새가 없는 복돌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윤약이와 성삼이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그저 듣고만 있더니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따 듣기만 해도 좋다.”
“아까는 겁나게 춥더만 인자 이리 따닥따닥 붙어서 짚덤불 덮고 오래 있은께 안 춥네. 화포총 쏘대끼 코고는 놈이 이유가 있었구마. 우리가 이래 붙어서 누운께 이 한디서도 잘 만 허네.”
복돌이 이야기를 끝으로 잔사설이 잦아들고 사람들은 한데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각자 챙겨온 먹을거리를 꺼내 놓고 서로 나눠 먹었다. 입안에 오래 담아 입김으로 데워서 씹어 삼켰다. 그래도 꿀맛이었다. 요기를 끝낸 사람들은 짚단을 처음대로 다 가지런히 하여 묶었다. 그리고 짚가리를 쌓았다. 사람들이 많아 그 일은 언제 시작했냐는 듯이 금방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 논은 사람들을 하루 저녁 따듯하게 품어주고는 그 자리에 어제 모습 그대로 있었다.
삼례역으로 옮겨오니 사람들의 행렬이 끝이 안 보였다. 전라도 각처에서 모여든 도인들의 위세에 관보다도 놀란 것은 동학 도인 자신들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우리 도인이라는 사실에 감격하여 하루 종일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통성명 하는 일로 보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모두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답답해할 때쯤 의송소에 다녀온 유석훈 접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일 동짓달 초이틀 날에 전라감사 이경직에게 소장을 올린다고 허네요. 소장 내용은 충청도하고 똑같이 ‘수운 대선생 신원과 동학 도인에 대한 수탈 중지, 그리고 무단히 나라의 부가 왜놈 양놈들한테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요. 시방 여그는 전주, 익산, 여산, 고부, 나주, 광주, 화순, 장흥, 남원, 임실, 곡성, 보성, 구례, 순천, 광양 등 전라도 대부분 지역과 그밖에 수원 등 각지에서 온 동학 도인 수천 명이 모있다고 허는디 시방도 계속 사람들이 모이 들고 있씅깨 학실허니 얼마나 되는가는 모르것다네요.”
“아무래도 내일 소장 올리고 나먼 그 결과까지 보고 가야 허껀깨 오늘 저녁도 어제 저녁에 밤을 샌 논으로 가야 헐랑갑소. 다들 그리 알고 준비들 허이다~이!”
다음 날 삼례에 모인 사람들은 전라좌도 류태홍, 전라우도 전봉준을 대표로 하여 소장을 써서 이경직 감사에게 보냈다. 전라감사 이경직은 이미 공주 일을 알고 있었던지라 충청감사와 똑같이 소장을 처리하였다. 지방 관원들에게 동학 도인들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감결(공문)을 내려 보내겠으니 한시바삐 동학 도인들은 해산하라고 하였다.
여기서도 이 감결이 허울뿐인 거라 흩어져야 하느냐, 확실한 답을 얻을 때까지 버텨야 하느냐 등등으로 말들이 돌았으나, 이번에도 도소에서는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 다음 소식을 전하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동학을 받아들이고부터 관원만 보면 피해 다니며 살던 사람들이었다. 공주 모임의 소식을 전해 듣고 삼례로 모이라 하였을 때 한편으로 신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원의 탄압을 더 심하게 받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런데 삼례에 와서 동학 도인을 무단히 수탈하지 말라는 감결을 도내 각 군현에 내려 보낸다는 소리를 다시 들으니 용기백배하였다.
어떤 술수가 있던지 간에 우선은 감사 나리가 동학 도인들을 거론하며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는 것을 직접 보고 겪으니 궁벽진 시골 고을에서 보고 듣는 것과는 천양지차의 감이 있었다. 그 깊은 감격을 안고 밤길을 타고 광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추워도 추운 줄을 몰랐다.
제7장 보은 원평 취회(1893년)
석평 마을을 감싸고 있는 뒷산에는 산죽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봄날의 기운은 산죽 색깔을 어느새 싱그러운 초록으로 다 바꿔 놓았다. 빽빽하다 못해 무성하다는 느낌을 주는 산죽 사이로 띄엄띄엄 소나무들이 서 있다. 검게 갈라진 등걸을 휘어 올려 우뚝 선 소나무가 장관이다. 연하디 연한 잎사귀를 달고 봄바람에 한들거리는 대나무들 보란듯이 소나무는 진한 검초록의 뾰족한 솔 잎새를 대나무 군락을 훨씬 넘긴 높이에 펼치고 있다. 마치 대장 군사가 병졸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모양마냥 기운도 당당하게 우뚝 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섰다.
그 앞에 석평 마을 집들이 자리를 잡았다. 유석훈 접주 집은 석평뜰에서 바라보면 높고 그들먹한 터에 자리를 잡았다. 사랑방에는 동네 청년들이 다 모였다. 다른 동네 청년 얼굴도 보였다. 재 너머 옥룡에서 넘어온 서윤약, 서형약 형제도 있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간혹 들르던 형제 도인이었다. 장난끼 많은 동생 서윤약이 제법 무게 잡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유석훈 접주, 뭔 일이 있소?”
유석훈 접주는 방안에 모인 젊은 청년들을 향해 입을 떼었다.
“저번에도 이약했제마는 시방 나라 안팎의 정세가 엄청 빠르게 변허고 있소. 우리 조선만 임금이니 양반이니 허고 관리들이 백성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날뛰고 있지다. 시방 우리나라에 들어와 갖고 우리를 뜯어 묵을라고 환장을 허고 있는 왜놈들만 허더라도 몰라보게 배낐당깨요. 누던지 능력만 되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한몫 잡아 크게 출세한다고 저놈들이 시방 이 조선 바닥을 휘젓고 댕기는 거는 여러분들도 소문 들어서 잘 알고 있것지다이~!”
조두환이 나서면서 말했다.
“몸서리 낭깨 그 개놈의 새끼들 이약은 쎄도 대지 마이다~!”
다시 유석훈이 말을 이었다.
“시방 이 나라 꼴을 보먼 참말로 한심허당깨요. 민씨 일파들이 권력을 잡고 베슬자리들을 폴아 묵을라고 눈이 삘그래 농깨 돈으로 베슬 사 갖고 내리 온 놈들이 본전 챙기것다고 오살나개도 많이 뜯어 가는 거 아니것능가요. 무엇보담도 우리 동학 도인들에 대해서는 동학이 나라에서 금하는 것이다 하여 무단히 잡아 가두고, 또 매질을 함서 돈을 뜯어가는 것이 비일비재 허요. 그래서 지난해 공주에서 충청 감사에게, 글고 삼례에서는 전라 감사에게 의송을 넣어서 수운 대선생 누명을 풀어주라 하였소. 또 억울하니 갇힌 도인들은 풀어 주라 하였소. 그 결과로 감사가 각 군현에 감결을 내린 일은 다 알고 있지다. 글고 올초에는 드디어 한양에서 임금님께 직접 상소를 안 올렸소. 임금님도 그때 그 자리에서는 모다 돌아가 허는 일 열심히 허면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 했다는디 그것이 말만 그러치 바로 그 담날로 법헌 어른이랑 그때 앞장선 대접주덜 잡으러 눈에 불을키고 들쑤셨단 거 아니요. 허니 우리 동학이 나라의 인정을 확실히 받는다는 거는 여전히 언감생심인 것도 잘 알 것이요.”
“유접주. 그거이사 어지깨 오늘 져끄는 일도 아닌디 뭔 사설이 이리 기요?”
“허허. 나가 말이 좀 질어졌능갑소. 암튼 인자는 우리가 다시 일어서야 쓰겄소. 우리가 공주로 삼례로 몰려가서 의송을 넣고 어쩌고 하는 사이에 동학 도인들 사이에도 말씀들이 크게 돌았소. 우리 동학 도인들이 내 한 몸 잘되자고 동학에 입도한 것이 아닌 이상, 수운 대선생 신원도 신원이제만 그와 함께 이 허물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세워야만 우리 도도 살고 도인들도 맘놓고 동학 세상을 만들 수 있겄다 하는 이약이요.”
“근게 그 일을 허는디, 어쩌코롬 하자는 말인가 그말을 허란께.”
“서양에서는 민회라는 것이 있어 갖고 나라 안팎의 모든 살림을 백성들의 의견을 모아서 헌다고 허더만요. 우리도 장차는 그런 민회를 만들어야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요새 많당깨요.”
골똘히 듣고 있던 서형약이 고개를 갸웃하며 유석훈 접주의 말 사이로 파고들며 질문을 했다.
“저도 쪼까 듣기로는 서양의 그 민회라는 거는 임금님도 따로 없고, 백성들이 나라의 주인이 돼서 나라 살림을 이러고저러고 헌다는디 그게 가당한 말이다요? 또 왜국도 청나라도 황제국인데 그런 제도를 따른다는 게 어째 앞뒤가 맞아지는지 잘 모르것소.”
“잔 들어보소. 저 유럽이라는 땅에 큰 나라인 불국(프랑스), 덕국(독일), 그라고 또 다른 아메리카라는 대륙에 미국이라는 나라에는 따로 임금이 없고 백성들이 뽑은 대표가 나라 살림을 맡아서 헌다고 헙디다. 조선처럼 엄연히 수백 년 된 왕실이 있는 영국이라는 나라도 나라 일은 왕이 마음대로 못 허고 국민이 뽑은 대표랑 의논을 해서 나라 살림을 헌다고 허더랑깨요. 요새 우리나라에 들어와 갖고 즈그 나라마냥 설치는 청인, 왜인들도 시방은 이 제도를 따라 갈라고 애를 쓴다고 헌단디요. 그래야 서양맨키로 국력이 쎄지고 맥없이 전쟁에서 지고 허는 일이 없게 된다면서요. 근디 서양 나라 놈덜의 존 제도를 배와서 즈그들 나라에서만 즈그들끼리 잘 살먼 좋을껀디 우리나라를 뺏아 묵을라고 눈에 불을 쓰고 설치고 댕기고 있씅깨 보통 일이 아니지다~이!”
이번에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의협심이 강한 한진유가 끼어 들어 질문하였다.
“서학이라는 거시 사람은 모다 하나님 자석이라 공평해야 한다고 함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허라고 헌다더마는 어찌 가난한 나라를 뺏아 묵을라고 설친당가요?”
“즈그 나라에서 난 것만 묵고 살아도 즈그들 배는 찰꺼시요마는 사람 욕심이라는 거시 끝이 없씅깨 옆 나라를 침략해서 제멋대로 빼뜨라다가 제 놈들만 배지 부르게 살자는 수작인 거것지다~이! 긍깨 똥구녕까지 욕심덩거리만 빵빵허니 찬 놈들헌티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당허기만 허먼 절대로 안 된당깨요.”
옆에서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서윤약이 유석훈의 말을 무질렀다.
“우리가 시방 그걸 몰라서 당허는 거는 아닌디, 민횐가 뭔가 허는 것도 그대로 되기만 허면야 좋체마는, 말이 쉽지 지대로 허자면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오. 이참에는 뭔가 뾰쪽헌 수가 있어서 우리를 부른 것이다요?”
무지르는 말인데도 유석훈은 오히려 반겼다.
“맞소. 그래서 이번에는 법헌 어른이 계시는 법소에서 큰 결정을 했소. 돌아오는 수운 대선생 기념일인 삼월 열흘 날을 기해 동학 도인들이 다 들고 일어나기로 했답니다. 지난해 십일월 삼례 가서 동학 도인들이 수천 명이 모인 거 본 사람덜이 여그 많이 있소만, 인자 충청도 전라도 따로 모일 것이 아니라, 아예 전국 도인들을 모다 모타가꼬 본격적으로다가 척왜양을 요구하자는 것이지요.”
“그거 참말로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그만요.”
유석훈은 거기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을 보고 부탁하였다.
“박흥서 접주님께서 이번 보은 취회에 대해 말씀해 주시이다!”
박흥서 접주가 방안에 사람들을 둘러보고 말하였다.
“우리의 요구 조건은 지난해 공주와 삼례 모임, 그리고 올해 광화문 복합상소 때와 똑같소. 첫째, 수운 대선생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 주어서 우리 동학을 당당하게 공부하고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둘째,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백성들만 파먹고 사는 탐관오리들을 징치하는 것이고, 셋째, 욕심이 끝이 없어 남의 나라에까지 들어와 조선 백성들을 죽음의 길로 내모는 되놈, 양놈, 왜놈들을 다 몰아내어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자는 것이오.”
여기까지 말하고도 무엇이 미진했던지, 가슴에 복받치는 것이 있던지 박흥서 접주는 침을 한번 삼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껏 보고 젺어서 다들 알겄제만 이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요. 이 일은 이루어질 때까지, 앞으로 우리가 목숨을 걸더라도 기필코 해내야 하는 일이요. 돌아오는 수운 대선생 기념일인 삼월 열흘 날 보은 장내리에 조선의 모든 동학 도인들이 모이자고 경통이 내려왔소. 여기 있는 젊은 도인들이 이번에는 앞장을 서야 할 것이요. 나라를 살리는 일에 남녀노소가 따로 있겠소만 젊은이들이 힘을 내야 그 젊은 기운이 몰아가는 힘에 온 나라가 펄펄 끓을 것이오.”
항상 박흥서 접주 옆에서 일을 말끔하게 처리하곤 하는 유석훈 접주가 오늘도 단정한 자세로 앉아 듣더니 이제 자기 차례라는 듯이 말을 붙였다.
“삼월 열흘날까지 보은으로 갈라먼 준비를 쎈찮허니 해서는 안 될것입니다. 지난 번 삼례 때보다 거리도 상구 더 멀고 거그서 일을 다 마칠 때까지 전딜라먼 솔찮허니 비용이 들꺼그만요. 도인들 중에 형편이 어려븐 사람은 밥술이라도 뜨는 도인들께서 유무상자해서 보은 갈 경비를 챙길 수 있게 서로 도와야 허꺼그만요. 우리는 보은으로 당도하기 전에 원평으로 먼저 모이갖고 거그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랑 항꾼에 보은으로 올라가게 될거그만요. 갈 길이 멀고 어려븐께 이번 일은 여그 모인 사람들이 몬춤 앞장서야겄습니다.”
웃음 많은 서윤약이 선선히 나섰다.
“우리 동네는 저허고 성이 맡아야 쓰것소~이! 형편 되는 대로 곡식도 좀 걷고 옷가지 짚신도 넉넉하게 준비해야것그만요. 이번에는 어떤 주먹밥이 인기가 있쓸랑고~! 하하. 삼례 때도 영판 재미나고 오지던디~. 이참에는 전국 도인들이 다 모인당깨 얼매나 오지고 신명나는 판이 벌어질랑가 모르것소~이!”
며칠 뒤 보은을 바라고 출발한 광양접 사람들은 아쉽게도 원평에 머물게 됐다. 보은에는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사람들이 모여 들어 뒤늦은 사람들은 원평에 따로 모여 보은과 행동을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원평의 도소에 도착한 유석훈은 남원 류태홍 접주를 찾았다. 류태홍 접주는 원평 너른 들판 가운데를 흐르는 원평천을 지나 원평장터에 전라좌도 대표들이 모여 있다며 석훈을 그쪽으로 데려갔다. 스무 명도 넘을 성 싶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옆에서 류태홍 접주가 한 사람을 가리켰다.
“저 양반이 김개남 대접주요. 우리 전라좌도 사람들을 이끌고 있소.”
김개남 접주는 키가 컸다. 얼굴에 광대뼈가 도드라진 것이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보였다. 입술은 두껍고 눈빛은 강했다. 석훈은 김개남 대접주를 보자마자 이 썩어빠진 나라에 확실히 맞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봤는데도 믿음이 생겼다. 저이라면 따라서 일을 도모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김개남 대접주는 임실, 장수, 남원 접주들에게 경통을 받았는지 가볍게 확인했다. 접주들은 그랬노라고 답했다. 그쪽 선을 타고 구례, 하동, 광양, 순천, 고흥까지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이번에는 조선 팔도로 경통이 야무지게 전해졌는지 보은 장내리가 거사일이 되기 전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는 접주도 있었다. 김개남 대접주는 그 말에 동의하는지 머리를 끄덕이더니 정식으로 인사를 올렸다.
“다들 먼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지라. 제가 김개남이올시다. 이번에는 꼭 우리의 소원을 이뤄야겠지라. 그러자면 우리가 여기서 좀 머물러야 쓰겄소. 다들 준비는 잘 하고 오셨지라? 각자 소개를 하고 자기 포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자랑 좀 해보실라요.”
김개남 대접주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임실 접주인 한흥교가 나섰다.
“김개남 대접주의 말씀이 옳구만요. 저는 임실 접주 한흥굡니다. 우리 임실 도인들도 이번에는 단단히 작정을 하고 야무지게 준비하여 나섯써라. 우리 포가 오백 여남은 명 될게요.”
뒤이어 장수 대접주 황내문이 말하였다.
“제가 장수 접주 황내문이올시다. 보아하니 내가 좀 나이든 축에 속하겄구만요. 앞으로 우리 모두 힘을 합해 좋은 동학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우리 포는 준비를 야무지게 하느라고 참여하라는 경통을 받은 날부터 바로 대비하였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겄소. 특히 우리 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폐가 되는 일을 하여서는 안 되것써서 저희 도인들도 형편 닿는 대로 유무상자하여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올라왔소. 우리 포도 오백 명은 넘을 성 싶소. 그러니 김개남 대접주는 우리 포 염려는 붙들어 매고 저쪽 관군 동향이나 잘 살펴보구려.”
황내문 접주의 과시하는 듯한 언사를 듣고 빙긋이 웃는 사람이 있었다. 멀리 광양에서 올라온 유석훈 접주였다. 그가 말을 텄다.
“광양 봉강 접주 유석훈입니다. 우리는 남쪽 멀리서부터 오니라 엄청 심이 들었그만요. 우리 포 사람들은 길이 멀어서 많이 오지는 못했는디 광양 도인들은 이백 명이 조금 넘습니다. 우리 도인들은 여기 올 여비를 챙기니라 소도 폴고 논을 폰 사람들도 있그만요. 긍깨 우리 광양 사람들 열정도 여그 모인 접장님들 못지 않을 것인깨 그 정성을 제대로 알아 주시야 허꺼그만요.”
줄줄이 늘어놓는 접주들의 보고가 장황했다.
김개남 대접주가 챙기는 사람들 숫자만 해도 어림잡아 수천은 넘을 성 싶었다. 원평에 모인 도인들이 그럭저럭 2만은 넘어 보였고, 보은은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했다. 김개남, 전봉준, 손화중 등은 원평을 근거로 삼아 보은의 소식을 들으며 사람들을 챙겼고, 몇몇 대표격을 뽑아 보은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 사람을 보냈다. 원평에 도착한 다음날로 유석훈에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김개남도 직접 보은으로 향했다. 거기 일행에 유석훈은 양계환 접주와 또 다른 지역에서 온 접주 여남은 명과 함께 보은으로 향했다.
원평들을 메운 사람도 많았지만, 보은은 그야말로 사람결에 땅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원평에 모인 도인의 곱에 곱은 되어 보였고, 이렇게 동학 도인들이 보은으로 몰려들자 동학 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보은으로 밀려들었다. 그들 중에는 탐관오리가 날뛰어 못 살겠다고 일어섰던 임오년 거사에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매서운 관의 눈길을 피해 숨어 살면서 때를 기다린 사람들이었다. 보은에는 왜놈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는 것에 분통을 터트리며 그들을 내쫓을 방도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농사를 지어도 쌀 한 톨 남지 않고, 장사를 하여도 돈 한 푼 남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장내리로 달려 왔다. 또 모진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어디든 피해야 할 것인데 차라리 보은 길이 자신을 살리는 길이라 여기고 앞장선 자도 있었다. 그렇게 보은 장내리에는 조선 땅에 살아도 산목숨이 아닌 것처럼 힘든 사람들이 보은취회에 희망을 걸고 발길을 재촉한 사람들이 많았다.
동학 접주들은 알았다. 저렇게 몰려오는 아픈 백성을 안아야 할 사람은 나라님이지만 조정은 이미 그럴 뜻도 힘도 없음을. 이 나라의 헐벗고 상처 입은 백성을 품에 안을 수 있는 동학이어야 하고 자신들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보은에서 유독 유무상자 정신을 강조하였다. 보은 장내리에서부터 이 나라의 아픈 백성 모두를 동학의 접포 조직 안으로 묶어 세울 때 새로운 한울 세상이 온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들은 바빴다. 그리하여 보은 대 집회를 계기로 동학 조직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김개남 대접주도 원평에서나 보은에서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각 지역의 접주들을 동학 접포 조직으로 바로 세우고 그들과 동학 경전 이야기들을 나누느라고 날밤을 새웠다. 김개남 대접주가 유석훈 접주, 양계환 접주에게 이태 전 자신의 집에 머물고 간 법헌 최시형 이야기를 들려 준 것도 그리 바쁜 날 중의 하루였다.
제8장 법헌 최시형
법헌 최시형이 김개남 대접주 집에 들른 것은 신묘년(1891년) 유월이었다.
며칠 전에 김개남은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뭔 생각이 났던지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부엌에 있는 아내를 불렀다.
“여보, 이번에는 법헌 어른께서 우리 집에서 묵어 가실지도 모르것소.”
“예? 그분께서 우리집에 묵다니요?”
“이번에는 내가 이 지역의 중요한 일을 맡아야 할 성 싶소. 그리 되면 여러 일을 짚어 주시려고 우리 집으로 오실 게요.”
“그러면 어찌 준비를 해야 할까요? 음석이랑, 옷이랑 ...... 아주 바쁘겄네요. 석이네랑, 염이네랑 부지런히 해야겄구만요.”
“당신이 내 옆에서 잘 거들어 주니 고맙소. 우선 그 어른 여름 옷이 몇 벌 필요할 게요. 내 해보다 조금 작게 지으면 될 게요.”
부부간에 그리 말을 나누고 난 후 임실댁은 입에 단 내가 날 정도로 바빴다. 며칠 새 옷도 마무리 했고 그 어른 잡수실 기본 찬도 갖추었다. 난생 처음 말로만 듣던 최법헌 선생을 뵙는다 생각하니 바쁜 줄도 몰랐다.
“임실댁, 그 어른은 어찌 생기셨을꼬.”
“그 어른은 저그 충청도 어디서 며느리가 베 짜는 집에 잠시 들렀는데 그 시아부지 되는 사람이 나오니께 저 베 짜는 며느리가 한울인게 잘 모시라고 말씀하셨다던디 참말로 그러셨을까?”
“그 말이 맞을 성 싶어. 우리 동네 남정네들 달라진 것 보먼. 동학에 입도하기 전에는 우리집 남편도 나한테 말을 함부로 했제. 그란디 동학에 입도한 뒤부터 사람이 싹 달라졌어. 그래도 가끔 옛날 버릇이 튀어나오드니. 그라먼 나는 웃음시롱 여자도 한울이람서 이것이 한울 모시는 것이요? 하고 대들먼 그짝에서 웃어부러.”
“하하하”
“동학이 우리 여자들한테 젤로 좋은 것이여. 근디 임실 댁네로 동학 최고 어른이 오신당께 참말로 좋구마.”
“그 어른 모시는 분은 어찌 생기셨을까? 여자 동학 도인들도 같이 오시먼 좋겄구만. 우리도 만나보게.”
이리 사설을 늘어놓으면서 하는 일이라 힘든 것을 모르고 재미났다.
남자 옷을 여섯 벌이나 지어 임실댁 스스로 뿌듯해하던 날에 최법헌 어른이 집에 오셨다. 그 어른은 중간 정도의 남자 키에 단단해 보였다. 눈이 형형하여 범접하기 어려웠고 괜히 옆에 서 있는 사람이 쭈뼛거려졌다. 하지만 그 어른이 말씀을 하시자 대번에 그 따뜻함이 사람 마음을 풀리게 하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 어른은 김개남 부부와 그 집의 아들과 딸에게도 맞절을 하였다. 그리고 심고를 하였다.
“심고 한울님! 김개남 접장 집에 왔습니다. 김개남 접장은 호남의 동학을 크게 키울 사람입니다. 그가 맡은 육임의 소임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심고.”
“우리 다같이 주문을 외웁시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법헌 선생과 함께 외우는 주문 삼십 번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동이라 넋을 놓고 있는데 법헌 선생께서는 웃으시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저는 아랫방으로 갈 터이니 그 방으로 짚단 좀 가져다주시지요.”
짚단을 가져다 드리니 익숙한 동작으로 손을 잽싸게 놀려 짚신을 삼았다. 그러면서도 법헌 어른을 처음으로 뵙고 놀라서 방으로 따라오는 아이들과 머슴들에게 자상하게 동학 말씀을 나누어 주었다.
“백술이와 분녜, 그리고 두치, 막쇠라고 했지요. 여러분들은 모두 나와 같은 한울님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은 한울님이지요.”
“어르신, 백술이는 주인 집 아들이고 지는 머슴인데 우리 두 사람도 똑같은 한울님인가요?”
“맞아요. 두 사람 다 똑같은 한울님 맞아요. 하지만 생긴 모습은 다르지요. 여러분을 태어나게 한 부모 얼굴도 신분도 다르지요. 하지만 두 사람 다 존귀한 한울님이에요.”
“히히, 그라먼 우리를 못살게 구는 썩은 관리들하고 왜놈들도 한울님들인가요?”
“맞아요. 그 사람들도 한울님 맞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존귀한 한울님인 줄 모르고 존귀한 한울님인 조선 백성들을 괴롭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몰라서 그래요. 그러니 우리가 한울님 공부를 많이 해서 그 사람들을 깨우쳐주어야 해요.”
“우린 힘도 없는데 맨날 사람들을 잡으러 오고 못살게 구는 사람들을 어떻게 깨우쳐 주어요?”
최시형은 뭔 그런 일이 있냐는 듯 따지고 드는 아이들을 보고 빙긋이 웃었다.
“그 사람들 안에도 한울님이 다 있어요. 그러니 그 사람들 안에 한울님이 커지도록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 그 사람들이 달라지겠지요. 우리가 지극정성으로 한울님을 모시고 그 사람들 안에 한울님이 자리를 잘 잡게 되면 새 세상이 오지요.”
“정말 한울님을 모시기만 하면 새 세상이 와요?”
“그래요. 또 하나 지킬 것이 있어요. 우리 몸과 마음은 하나여요. 그래서 항상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내 마음 속의 한울님도 좋아하고 세상 만물인 한울님도 키울 수 있어요. 내가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내 안의 한울님과 다른 사람 몸의 한울님을 괴롭히지 않고 존중할 수 있어요.”
“맞아요. 어르신, 양반들과 못된 관리들은 자기들은 일 안 하고 농사도 안 지으면서 우리 식구들이 애쓰고 농사지어 놓으면 가실에 다 뺏어가부러요. 그 양반들은 일도 안 하고 사니까 우리를 괴롭히는 거네요.”
“벌써 그 이치를 알아버렸네요. 몸 부려 일 안하고 그저 자신 한 몸이나 자기 족속들 몸만 편하게 살려고 하면 다른 귀한 한울님들 몸을 괴롭히면서 뺏어가려고만 하게 되지요. 그래서 탐관오리가 생기고, 왜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에까지 와서 쌀을 뺏어가지요. 우리가 그런 욕심 사나운 사람들을 깨우쳐 주려면 더 부지런히 일해야 해요.”
“에이, 오늘도 일 많이 했구먼요.”
“주문 외우면서 하면 힘든 일도 쉬워져요. 그럼 우리 짚신을 같이 삼아볼까요?”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노래하듯이 주문을 외우는 아이들의 볼은 발그레하고 입가에는 환하고 부드러운 햇살같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히히히 어르신, 이래 주문을 외우면서 짚신을 삼으니께 하나도 안 힘들고 재미나요. 딴 일 할 때도 주문 외움서 해야겄네요.”
“그래요. 그러면 좋지요.”
최시형은 호남 지방에 동학 교세를 확장하느라고 바빴다. 김개남 집에서 머문 열흘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멀리서부터 동학에 입도하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가까이 임실부터 남원, 곡성, 구례, 하동, 진주 그리고 순천, 광양에서도 어찌 기별이 닿았는지 찾아들 왔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염원했다. 조선 땅에 부는 새 바람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렀다. 전라도 사람들 분위기는 거셌다. 이곳은 아이들부터도 탐관오리 이름을 부르고 적개심을 드러내었다.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개벽 세상에 맞닿아 있었다. 최시형은 고민했다. 본래 동학 세상은 이들의 염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개벽세상 평등세상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들의 염원을 감싸 안고 가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하지만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이필제가 중심이 되어 벌였던 영해거사로 입은 도인들의 피해는 너무 컸다. 그동안 이만큼 동학을 키우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던가. 여기서 다시 개벽 깃발을 높이 치켜들면 우리 동학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를 차분히 따져보려 했다. 생각은 복잡했지만 전라도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열망을 따라 새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고 동학의 세 확장에 힘이 났다.
삽입 그림 저작권 정보 : "Korea_Nature_in_Gyeonggido_05" by Republic of Korea is licensed under CC BY-SA 2.0
제9장 동학의 꿈
광양 도인들은 원평 너른 들판을 관통하는 원평천 왼편으로 자리를 잡았다. 원평장터에 마련된 도소에서는 좀 떨어져 있지만 물가 언덕 쪽으로 돌담을 쌓고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지내고 있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보은 장내리를 보고 온 유석훈과 양계환도 저녁밥을 먹은 후 사람들에게 보은 다녀온 이야기를 하느라고 소란스러웠다. 그때 김개남 대접주가 들어왔다.
“유석훈 접주, 양계환 접주, 우리 이야기 좀 나눌께라?”
“예. 뭔 일이시당가요?”
“별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짬 날 때 광양 접주님들이랑 동학 이야기를 좀 하고 잡소.”
유석훈은 놀란 얼굴을 펴면서 대답했다.
“김개남 대접주를 뵙는 것만 해도 영광인디 동학 말씀을 나누어 주신다먼 참말로 좋지다.”
유석훈은 김개남 대접주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거침없이 활달한 기상을 가졌으면서도 소탈하고 따뜻한 그가 좋았다. 김개남 대접주는 며칠 전에도 도인들에게 법헌 최시형 어른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었다. 유석훈은 전라좌도 조직을 굳건히 세우느라고 쉴 새 없이 바쁜 김개남 대접주의 활동이 놀랍고 고마웠다.
김개남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나는 훈장 일을 함시로 참다운 진리를 찾아서 여그 저그 많이 떠돌아 댕겨 봤소. 그러다 보니 한때는 서학에도 기웃거려 봤소만 어쩐지 나하고는 안 맞습디다. 그러다가 서학보다 더 좋은 우리 학문 우리 도학인 동학 소식을 듣고는 ‘이제야 내가 찾던 진리를 찾았다’ 싶은 것이 온 몸에 느껴집디다. 그만큼 나는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고 있던 차에 동학을 만난 게지요. 나는 그렇게 동학 도인이 되었소. 유접주와 양접주는 어찌하여 동학 도인이 되었소?”
유석훈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수줍은 듯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도 대접주님이랑 똑같은 생각이그만요. 저 사는 집도 그리 부자는 아니어도 그저 살만헌 정도라서 일찍부터 집에서 한학을 공부했지이~다. 근디 어느 순간부터 한학이 우리 사는 현실이랑은 동떨어진 소리로만 들리고 맘에서 멀어지더랑깨요. 향교에도 나가 봤는디 거그서 허는 시회라는 것도 한심헌 말장난 겉기만 허구요.”
“시골서 책 좀 보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유접주도 똑같이 느꼈소그려.”
“얘~! 글다봉깨 한학 공부도 재미가 없고 씨들하던 판에 남원 류태홍 접주와 인연이 닿았그만요. 류태홍 접주가 전해주는 이약을 듣고 처음에는 오지개 놀랐당깨요..”
“뭔 이야기에 놀랐소?”
옆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양계환이 나서면서 대답했다.
“남자도 한울이요, 여자도 한울이요, 양반도 한울이요, 노비도 한울이라는 소리를 첨 들을직애는 참말로 천지가 개벽허는 소리로 듣키더랑깨요.”
이번에는 유석훈이 말했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논학문’에서 스물한 자 주문을 조근조근허니 읊어 주고 뜻을 세세허니 갤차 주는디 그동안 답답했던 머릿속이 훤허니 뻥 뚫리는 거 겉더랑깨요. 그때 그 느낌은 시방도 생생허그만이다~.”
유석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양계환도 김개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개남이 말을 이었다.
“나도 김덕명 접주로부터 동학을 소개받을 때 감동이 대단했지라. 동학만이 우리 조선 사람이 살 길이구나 싶었소. 특히 최제우 대선생께서 경신년에 동학을 창시할 때 그때부터 개 같은 왜놈을 경계하라 하시고 보국안민을 부르짖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랐소. 지금 나라꼴 돌아가는 형세를 보시요. 탐관오리도 문제지만 왜놈들 설치는 통에 이 나라가 곧 그놈들 손에 떨어질까 봐 걱정이요.”
왜놈들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양계환의 눈빛이 흔들렸다.
“왜놈들 이약이라먼 통간에 말도 마시이다! 지가 사는 광양에서도 왜놈덜 땜시 백성들 살기가 이만저만 심든 것이 아니그만요. 그놈들은 올 여름에도 나락이 채 익기도 전에 입도선매를 해삐릿당깨요. 그놈들 수에 절대로 넘어가면 안 된다고 도인들헌티 신신당부를 허고 단속을 혔지만서도 세금 독촉에 시달리던 우리 도인 몇 사람이 가실에 나락을 주것다허고 선금을 받고 난 담에서야 지를 찾아 왔더만요. 그래서 그 길로 돈을 좀 챙기 갖고 입도선매 계약을 해지 헐라고 그놈들을 찾아갔는디 그놈들은 진작에 딴 동내로 떠부렀더랑깨요. 우리 도인들은 그저 닭 쫓던 개 모냥으로 하늘만 원망하고 돌아온 적이 있그만요.”
“아이고, 저런. 이쪽 지역도 왜놈덜이 간혹 돌긴 하제만 안즉 쌀을 많이 빼내가던 못하는 것 같습디다. 그런데 그 지역은 왜놈덜이 더 설치는 구먼요.”
“그거 뿐이라먼 말도 안 허지이다! 광양은 골약, 월포 바다가 참말로 좋아뿌요. 월포는 다압 섬진강에서 흐르는 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질이라 투망을 물에 담그기만 해도 괴기들이 그냥 옹구발로 져 나를만큼 바글바글허니 몰리 들고 거그다가 해우(김)랑 포래랑 반지락에 게까지 바다에 나가기만 하면 먹을 것이 지천이랑깨요. 근디도 시방은 그쪽 바다에 붙어사는 사람들 형편도 말이 아니더만요. 한 십여 년 전만 해도 왜놈덜 집이 한두 집에 불과했는디 인자는 떼로 몰리 와 갖고 집을 지 놓고 삼시로 시도 때도 없이 그물질을 해 대는 통에 조상 대대로 살아온 우리 땅에서는 말헐 것도 없고 인자 우리 바다에서까지 우리 조선 사람들이 쫓겨나고 있당깨요.”
“그놈덜이 우리땅을 차지허고 살기 시작허먼 쉽게 물러가던 안헐 것이요.”
“근디다가 그놈덜은 왜국에서 딜이 온 신식 총을 가지고 있어 농깨 그 총을 들이대고 일을 허는 통에 우리 조선 사람덜은 어쩌지도 못허고 눈 뻐끔허니 뜨고 당허기만 헌당깨요. 저번에도 우리 도인 한 사람이 해우를 뜯어다가 발에 떠서 몇 백 장을 몰라(말려) 놔 농깨 그 놈덜이 와서 기냥 걷어가 삐맀다더만요.”
“그런 죽일 놈덜을 봤나? 그래서 어찌했다요?
“그 질로 왜놈들 집에 찾아가 해우를 내 노라고 했더마는 즈그들은 그런 거 갖고 온 적이 없다고 딱 오리발을 내밀더래요. 금방 먼발치에서 그놈들이 걷어가는 것을 보고 달리갔는디도 어먼 소리를 헝깨 어찌나 억울하고 화가 나던지 왜놈들 집이서 큰 소리를 냈다더만요. 긍깨 그 놈들이 바로 총을 들이댐서 목숨이라도 살라먼 아가리 닥치라고 해서 그냥 돌아나왔다던디 그 소리를 들응깨 참말로 나 속에서 천불이 나더랑깨요.”
듣고 있던 김개남이 혀를 차며 물었다.
“세상에 그런 도적놈들을 가만 두었어라? 관가에 발고라도 해사 쓰겄구만.”
“관이라고 어디 우리 조선 사람들 편을 들어주기나 헌당가요? 관에 있는 놈덜도 왜놈덜 앞에서는 꼼짝 못 헌지가 오래 돼 삐맀더만요. 오히려 관가에 발고 하러 간 우리 도인들을 보고 사도를 쫓는 무리들 아니냐고 어먼 죄를 물리고 주리를 틀고 헝깨 잘못 걸맀다간 골벵만 든당깨요.”
“이런 개같은 세상이라니! 이제 이 나라에서 우리 백성들이 믿을 곳은 우리 스스로 한울인 동학밖에 없다는 것이 날로 확실해지고 있어요. 왜놈들이 우리 백성들을 동학으로 한데 묶어주는 일을 하고 있구만요. 그놈들이 우리 조선 백성들의 피땀을 다 쓸어 가는 이때에 우리 동학 접주들이 할 일이 많지요. 지금처럼 힘든 시기에 아프고 힘든 우리 백성들을 다 동학 안으로 불러 모아 우리가 유무상자 정신으로 안아야 쓰겄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한울 세상이 빨리 열리지라.”
고개를 끄덕이면서 유석훈이 대답했다.
“예. 지도 진작부터 그리 생각허고 있었그만요.”
김개남은 보기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열변을 토하였다.
“두 접주님들도 이번 취회가 끝나고 광양으로 내리가먼 시방보다 더 큰 열정으로 우리 동학 포덕 활동을 벌려야 쓸 것이오. 마당 포덕으로 들어온 도인들도 동학 정신을 깊이 새기고 스물 한 자 주문을 부지런히 외우도록 하고 그것이 좀 힘든 사람들은 열 세자 주문을 입에 달고 살도록 단단히 일러야겄소. 특히 왜놈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더 관심을 가지고 우리 동학 도인으로 받아들이야 쓸 것이오. 두 사람은 나와 함께 뜻을 크게 지닜으니 이 일을 힘 있게 해낼거라 믿소.”
양계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유석훈은 단호한 결심을 드러내었다.
“예. 대접주님. 광양 일은 우리가 목숨을 걸더라도 심차게 해볼랑깨 걱정마시이~다!”
한 달여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던 원평 너른 들에서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질서정연하게 나가는 행렬이었지만 들어올 때 다들 꿈에 부풀었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다소 썰렁한 풍경이었다. 지난해 공주취회, 삼례취회, 그리고 올해 정월의 광화문복합상소, 이번 삼월의 보은취회, 원평취회를 통해 많은 백성들은 그들의 소망을 간절히 호소하였건만 여전히 최제우 대선생 신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척왜양의 어떤 조치도 조정에서는 내린 바가 없다. 겨우 얻은 것은 탐학한 관리 징벌 조치를 내리겠다는 언급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동학 도인들의 수고가 헛된 것은 아니었다. 이 나라를 살릴 사람은 동학 도인들밖에 없다는 자각을 삼천리 백성들 가슴에 깊이깊이 담았다. 백성들은 이제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그 백성들과 함께 동학 도인 조직은 한층 강고해졌다.
유석훈 접주는 광양 동학 도인들을 챙기면서 발걸음을 빨리 했다. 집을 떠나온 지 한 달이 넘었다. 도인들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그동안 광양 도인들은 원평 장터에서 조금 떨어진 원평천변에 돌로 성을 쌓고 그 안에 짚단을 깔고 지내면서 원평 도인들의 도움으로 먹을 것은 어찌어찌 해결했다. 하지만 옷을 제때 갈아입지 못한 사람들은 검댕이 덩굴에서 뒹굴다 나온 것 같았다. 된통 고뿔을 앓은 도인 몇 사람은 볼이 패이고 눈이 쑥 들어간 게 저러다 목숨 줄을 재촉당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됐다.
도인들의 초라한 행색도 마음이 쓰였지만 정작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를 헤아려 보면 아무래도 이 나라는 전쟁을 피할 수 없지 싶었다. 지금도 살기가 힘든데 이 일을 어찌할 것인지 가슴 속에 큰 돌덩이가 얹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김개남 대접주와 약속하지 않았던가. 개벽세상을 불러 오는 동학 일에 목숨을 걸겠다고. 지금 보은이나 원평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거개가 다 그 생각을 품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다 같이 함께 가는 길이라면 승산은 충분하다. 그쪽으로 생각이 뻗치자 좀 힘이 났다.
석훈은 다리가 무겁고 걷기가 팍팍해도 광양으로 내려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가는 내내 아내 서엽이가 보고 싶었다. 아내는 이번 취회에 올라오기 한 달 전부터 달거리가 없다면서 아이를 가졌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아내가 처음 그 말을 하였을 때 석훈은 도무지 믿기지 않고 이상하기만 했다.
‘아버지가 되다니. 나를 닮은 한울이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니. 정말일까?’
겉으로 봐서 아내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하기만 했다. 그걸 생각하면 아내가 더 보고 싶었다. 아내는 요즘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마을 사람들에게 열심히 동학 포덕 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내는 말을 예쁘게 잘 했다. 동학 경전 이야기를 풀어서 구수하게 전하는 솜씨는 석훈보다 윗길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이라 동네 아주머니들은 주로 석훈이 집으로 모여 함께 길쌈을 했다. 석훈이 어린 시절엔 집에서 길쌈하는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그런데 왜국에서 들여오는 값싼 무명베가 퍼지기 시작하자 그 일도 시들해지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고 힘들어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세라도 내야지 싶어 저녁 마다 길쌈에 매달렸다. 심심하면 모여서 하는데 석훈 집은 베틀이 여러 개라 마실 삼아 오는 아주머니들이 예닐곱은 되었다. 지금쯤 서엽은 아주머니들에게 동학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놓고 있을 터였다.
서엽이 시집 와 가마에서 내리자마자 본 시집은 컸다. 대청마루가 훤했다. 서엽은 아래채에 기거했다. 남편이 보은으로 올라 간 뒤로도 서엽은 외로울 틈이 없었다. 낮에는 시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했다. 서엽이 저녁상을 치우고 방으로 들어가 뱃속에 아이를 생각하며 배를 만졌다. 남편 생각이 났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웃굴몰 아주머니와 배튼머리 새댁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 사람은 베틀이 있는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새댁, 오늘도 재미난 이야기 좀 하게. 나는 저쪽에 앉아서 옷감을 짤라네.”
“성님이 그짝에서 짤라요. 그람 나는 이짝에 앉을라요.”
웃굴목 아주머니가 서엽을 찬찬히 보더니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구례 새댁이 쪼까 이상한디. 혹시 아이 생긴 거 아니여?”
서엽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얘. 그런 성 싶어~다. 달거리가 끊어진지 두 달이 넘었구만요.”
“어매. 이 집 좋은 일 났네. 이 집은 손이 귀헌디 복덩이가 들어왔구마. 신랑은 안단가?”
“보은 가기 전에 말을 하기는 했는디 그때는 긴가민가 했지다.”
배튼머리 새댁이 끼어들며 물었다.
“어매. 좋겄다. 난 아직도 소식이 없는디. 니 신랑이 겁나게 보고잡제. 근디 어저께는 그 뭣이냐 ‘내수도문’인가 하는 여자들 이야기 했잖여. 동학에는 애기 이야기도 있는가?”
“응. 있어. 그람 오늘은 동학 태교 공부 좀 하까. 이녘도 알고 있으먼 좋을 것인께.”
“그래. 그것이 좋겄구만. 얼렁 이야기 해보소.”
서엽이 얼른 동학 책을 한번 훑어 읽고서 이야기를 풀었다.
“일단 아이를 임신하면 육고기, 물고기, 논 우렁, 물가의 가재도 먹지 말고 고기 냄새도 맡지 말라고 하셨어~다.”
“어매 그람 뭘 먹으라고? 어째서 그런당가?”
“아무 고기라도 먹으면 그 고기 기운을 따라 사람이 태어나고 모질고 탁한 성정이 된다고 하셨어~다.”
“그건 그러고 또 뭘 개리라고 했단가?”
“한 달이 되면 그때부터는 기운 자리에 앉지 말고, 잘 때에 반듯이 자고, 모로 눕지 말라 하셨어~다.”
웃굴몰 아주머니가 말을 붙였다.
“참말로 좋은 말씀이구마. 그것은 우리도 예전부터 지켜 온 것이긴 혀. 또 뭣이 있는가?”
“김치와 채소와 떡이라도 기울게 썰어 먹지 말라 하셨어~다.”
“그것은 나도 우리 자석들 가질 때 잘 지켰구마.”
“또 이어서 말할께~다. 임신을 하면 울타리 터진 데로 다니지 말며, 남의 말 하지 말며, 담무너진 데로 다니지 말며, 지름길로 다니지 말며, 가벼운 것이라도 무거운 듯이 들며, 방아 찧을 때에 너무 되게도 찧지 말며, 급하게도 먹지 말며, 너무 찬 음식도 먹지 말며, 너무 뜨거운 음식도 먹지 말며, 기대 앉지 말며, 비껴 서지 말며, 남의 눈을 속이지 말라고 하셨어~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굴목 아주머니가 말했다.
“하먼, 그래야제. 그것은 나도 대강 지켰고마. 이걸 다 지키먼 좋은 아가 태어난당가?”
“얘. 앞에서 말한 것은 지키지 아니 하면 사람이 나서 요사(妖邪)도 하고, 횡사(橫死)도 하고, 조사(早死)도 하고, 병신도 된다고 하셨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아무 고기나 안 먹고, 행동을 바르게 하고 열 달 동안 뱃속의 한울님을 잘 공경하고 믿어하고 조심하오면, 사람이 나서 몸도 반듯하고 건강하고 총명도 하고 지혜롭고 재주가 뛰어나고 옳은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하셨구만요.”
서엽은 숨이 찬 듯 한번 침을 삼키고 말을 이어갔다.
“이 경계의 말씀을 잘 지켜 행동하면 문왕 같은 성인과 공자 같은 성인을 낳을 것이니 정성으로 수도를 하라 하셨어~다. 특히 이 법문을 침상가에 던져두지 말고 남편 되는 사람은 조용하고 한가한 때를 타서 수도하시는 부인에게 외워 드려 뼈에 새기고 마음에 지니게 하라고 하셨어~다. 그러니 이 ‘내칙’은 남편도 꼭 알고 있어야 하겄구만요.”
웃으면서 서엽이 말을 마치자 배튼머리 새댁이 깔깔거리고 물었다.
“구례 새댁 남편은 내칙 알고 기실까? 나는 오늘 우리 서방한테 꼭 말해줘야 쓰겄구마.”
서엽도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지도 남편이 오면 ‘내칙(內則)’을 알고 기신지 물어봐야겄구만요. 모르먼 동학하는 사람 맞냐고 따져야 쓰것당께요.”
웃굴몰 아주머니가 함께 웃으면서 말하였다.
“요새 가만 들어보면 동학이 여자들한티 겁나게 좋은 것이랑께. 난 요담에 우리 순이 시집 보낼 때 동학하는 사위만 봐야겄구마.”
“어매! 동학하는 남자 아니먼 인자 장개도 못 가것구마~이!”
그날 저녁도 여자들은 길쌈보다 동학 공부에 열을 올리고 깔깔거리는 사이에 밤은 깊어갔다.
제10장 휘날리는 동학농민혁명의 깃발(1894년)
그날은 양계환이 논농사를 챙기려고 집을 나서려는데 아침 댓바람에 유석훈이 찾아왔다. 봉강서 월포까지는 한나절은 부지런히 걸어야 할 길인데 새벽 일찍부터 길을 나선 모양이다. 그만큼 급한 전갈이 있는 거였다. 유 접주 표정이 심각했다. 사랑채에 들어서 자리를 잡자마자 그는 품에서 종이 문서를 꺼내면서 말했다.
“양 접주. 우리가 말하던 일이 예상헌 거보다 빨리 왔구마. 전라도 무장에서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접주가 기포(起包)했다고 연락이 왔네. 이거이 포고문이여. 언능 읽어봐.”
“엉? 그럼 전국에서 기포한단 말이여? 어디 보자.”
그렇게 물어보면서 전해 받은 포고문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
나라에는 부채가 쌓여 있는데도 갚으려는 생각은 아니하고 교만과 사치와 음탕과 안일로 나날을 지새워 두려움과 거리낌이 없어서 온 나라는 어육이 되고 만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이는 진실로 수령들의 탐학 때문이다. 어찌 백성이 곤궁치 않으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이 깎이면 나라가 잔약해지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도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계책은 염두에 두지 않고 바깥으로는 고향집을 화려하게 지어 제 살길에만 골몰하면서 녹위만을 도둑질하니 어찌 옳게 되겠는가?
우리 무리는 비록 초야의 유민이나 임금의 토지를 갈아먹고 임금이 주는 옷을 입으면서 망해가는 꼴을 좌시할 수 없어서 온 나라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고 억조창생이 의논을 모아 지금 의로운 깃발을 들어 보국안민을 생사의 맹세로 삼노라. 오늘의 광경이 비록 놀랄 일이겠으나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각기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면서 함께 태평세월을 축수하고 모두 임금의 교화를 누리면 천만다행이겠노라.
갑오년(1894년) 삼월 스무 날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포고문을 다 읽은 양계환은 유석훈에게 물었다.
“시방 전국에서 다 일어난다는 거여?”
양계환이 다 읽기를 기다리던 유석훈이 대답하였다.
“그리 되게 헐라고 전국 도인들이 다 짜고 있었든 거지. 우리도 서둘러야겄네. 될 수 있는 대로 챙겨서 백산으로 올라오라는 통기가 왔어. 우리 봉강 접은 올 농사 준비를 언능 해 놓고 모레 새벽부텀 올라갈라는디 월포 도인들은 어쩔랑가?”
“잘됐그마. 저번에 우리가 이약헌대로 목숨 걸고 해볼 만한 일잉깨 당연허니 올라가야제. 그래 새 세상이 오기만 헌다먼야 뭔 일인들 못허겄능가. 우리 접 사람들도 채비하고 바로 올라가야 쓰겄네.”
양계환이 그리 대답하자 유석훈이도 편하게 말을 내놓았다.
“근디 아무래도 이참에 올라갈라먼 우리 도인들이 노자를 충분허니 챙기 갖고 나서야 허꺼고, 글라먼 계환이 자네나 나나 요번에는 집안 살림에서 솔찮허니 축을 내야 헐 꺼인디 자네는 어쩐가?”
“울 아부지 모르게 돈을 빼낼라먼 나가 고생 좀 해야 쓰겄구마.”
“허허. 그래도 우리 집은 아부님이 동학 도인들을 이해허는 편이라 그리 어렵진 않을 꺼그마. 아매도 울 아부님이 논마지기 값이나 챙기 주시꺼여. 계환이 자네 아부님은 좀 심들다고 혔제?”
양계환은 손사래를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어이, 말도 마소. 우리 집 영감 인색한 거시사 근동에는 소문이 다 낫승깨. 아직도 난 재산 권한이 한나도 없그마. 이참에는 울 엄니를 통해서 논문서 도둑질이라도 해야 될랑가 모르것는디 어찌 되도 되겄지이~! 암튼 나가 울 집서는 젤로 큰 도적이랑깨! 하하하.”
소 팔고, 논 팔고 채비를 단단히 하고 갑오년(1894년) 늦은 삼월에 백산으로 올라온 광양 도인들은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인 기세에 놀랐다. 어제 저녁에 늦게 도착하여 다른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둔 장막 언저리에서 어찌 자는 줄도 모르고 그저 아무데나 사람들 틈에 끼어서 잘 때는 몰랐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백산 꼭대기 너른 마당을 돌아보니 사람들은 몇 사람 안 보이는데 장막 옆으로 세워둔 깃발이 유유히 흔들리는 것이 장관이었다. 노란색 비단에 보국안민(輔國安民), 청색 비단에 탐관진멸(貪官盡滅), 붉은색 비단에 척양척왜(斥洋斥倭) 깃발이 대회라도 하는 냥 어떤 깃발이 더 선명한지 자랑이라도 늘어놓을 것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거기에 끼어들기가 부끄러운 듯이 작은 깃발들은 한쪽에 늘어서 있는데 그 숫자가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았다. 깃발만 봐도 세상 일이 다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설렜다. 힘이 났다.
광양 사람들은 김개남 휘하로 들어가 움직이기로 했다. 사람들이 워낙에 많이 모인지라 사월이 되자 동학 도인들은 전주로 진격하기 위해 크게 두 개 부대로 나누어 움직였다. 부안현을 점령하여 황토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부대는 전봉준과 손화중이 지휘하는 부대였다. 그때 김개남 부대는 백산 결진에 합류하여 동학군의 위세를 떨치고 부대를 나뉘어 움직일 때 태인 관아를 점령하고 전주성을 향하여 나아갔다. 하지만 관군이 전주 입구를 지키고 있고 또 관군 1만여 명이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다시 부대를 나누어 남하하였다. 김개남 부대는 태인 용산에 머물렀다. 그때 사람들에게 꼭 지킬 것을 당부하는 동학농민군 12개조 수칙이 나왔다.
동학농민군 12개조 수칙
1. 항복한 자는 사람으로 대한다.
2. 곤궁한 자는 구제한다.
3. 탐학한 자는 추방한다.
4. 순종하는 자는 경복한다.
5. 도주하는 자는 쫓지 않는다.
6. 굶주린 자는 먹인다.
7. 간사하고 교활한 자는 없앤다.
8. 빈한한 자는 불쌍히 여겨 도와준다.
9. 불충한 자는 제거한다.
10. 거역한 자는 좋은 말로 잘 타이른다.
11. 병든 자는 진찰하여 약을 준다.
12. 불효한 자는 형벌한다.
사람들 속에 낀 유석훈과 양계환은 깃발을 들고 싱글벙글하면서 장막에 붙여진 방문 동학농민군 12개조 수칙을 읽고 있었다.
장난끼 섞어 유석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
“긍깨 우리는 시방 전쟁을 험시롱도 동학 한울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거구마~이! 12개조 수칙을 잘 지키 감시롱 관군들이랑 싸울라먼 쪼까니 심들겄는디. 쌈 허다가 관군들이 다치먼 치료해조야 헌당가?”
그 말끝에 양계환이 핏발을 세우며 대꾸했다.
“그런 씨부럴놈덜을 뭔 치료를 해준당가? 나헌티 걸리기만 허먼 모가지를 확 따 삐리야제. 그놈들헌테 우리 도인들이 얼매나 많이 당했는디. 그 수칙은 우리 도인들이랑 백성들헌티만 해당되겄제~! 그런 거만 보지 말고 눈 좀 크게 뜨고 잘 보소. 삼. 탐학한 자는 추방하고 칠. 불충한 자는 제거한다고 안 써 있는가? 긍깨 우리는 탐관을 제거허먼 되는 것이여. 그것들헌테 멍청허니 당허지 말고 싸울 직애는 두 눈 크게 뜨고 그것들을 확 조사부러야 헌당깨~! 그래야 한울님이 사는 것이여.”
핏대를 세우고 열을 올리는 양계환의 말에 유석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글고 봉깨 글쿠먼. 알겄네~! 알겄어~! 잘 싸울 것잉깨 시방부터 열 내지마소.”
동학군이 대를 나누어 움직이자 초토사로 내려온 홍계훈도 역시 경군을 나누어 동학군을 추격하였다. 하지만 홍계훈은 황토현 전투에서 보인 동학군의 위세에 크게 놀란지라 동학군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승부는 피했다. 그 대신 전주영장 김시풍을 비롯하여 몇 사람에게 동학군과 내통하였다는 혐의를 씌웠다. 다음 달 홍계훈은 동학군들이 보란 듯이 그들의 목을 쳐서 전주 남문 밖에 높이 내걸었다. 초토사의 잔악한 조처에 동학군은 크게 반발하였다. 김개남이 이끄는 부대에 젊은 별동대 대장 김인배가 나섰다.
“초토사로 온 놈이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별 못하고 사람을 막 죽이고 있어라. 홍계훈이 그놈은 그동안 동학군의 위세를 겁내어 군대도 출동 안 하더니 그나마 관에서 가장 강직하여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사람들만 골라서 효수시켜 주니 원 이걸 우리가 고맙다고 해야 될까라? 그런 무식한 놈이 초토사니 이 나라도 참말로 한심하지라.”
김개남은 김인배의 말이 끝나자 주변 젊은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렇게 한심한 관군 놈들이 저대로 계속 가면 우리나라는 3년도 못되어 일본이나 로서아 수중으로 떨어질 게요. 아니지 청나라도 있지요. 하지만 요새 보면 가장 악랄한 왜놈덜 아가리로 들어갈 공산이 크제라. 지금 이 나라를 지킬 사람들은 우리 동학밖에 없소. 또 관군과 싸워 이기려면 젊은이들이 틈나는 대로 전투 훈련을 해야 쓰겄소.”
김개남 장군이 젊은이들에게 군사훈련을 하라고 말을 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젊은 대장 김인배는 장성 황룡천으로 이동하여 전투를 치렀다. 4월 24일 경군 선발대 대관 이학승이 이끄는 3백여 명이 황룡천변 월평리의 삼봉 아래에 모여 있던 동학군을 공격함으로써 싸움은 시작되었다. 경군의 쿠르르포 포격으로 순식간에 동학군 쉰 명 정도가 쓰러졌다.
“피융, 피융!”
날아오는 총탄에 옆 사람이 쓰러졌다. 겨우 무명 저고리에 무명바지를 입고 황토색 끈을 머리에 질끈 묶은 동학군들은 날아오는 총탄에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총알을 피해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김인배 대장은 삼봉쪽으로 방향을 틀어 잡고 달리면서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저기 뒤에 삼봉으로! 삼봉으로 달려!”
“피융 피융!”
계속해서 총알은 날아왔다. 총성과 함께 연기가 났다. 김인배 옆에 있던 복술이가 달려가다가 총에 맞았다. 양계환이 복술이를 붙잡아 끌어가면서 달렸다.
“복술아, 안돼. 조금만 더 가자.”
몸이 축 늘어지면서 복술이는 말했다.
“형! 나는 안 되겄어. 형만 언능 달려. 형은 꼭 살아~!”
떨어져 나가는 복술이를 뒤로 하고 김인배와 양계환은 삼봉으로 달렸다.
삼봉에 도착한 사람들은 진영을 다시 정비했다. 삼봉 옆 언덕 쪽에 자리잡은 경군은 계속 쿠르르포를 쏘아댔다. 그때 한쪽에서 대나무 장태 수십 개가 몰려 나왔다. 보통 집에서 보는 닭의 둥우리 같이 생겼는데 조금 더 컸다. 밖에는 칼이 꽂혀 있고 아래에는 두 바퀴를 달아서 굴러 오는데 마치 큰 고슴도치 떼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 뒤에 바싹 붙어 동학군이 함성을 지르면서 달려 나왔다.
“와와-!”
“와와-!”
관군은 연신 쿠르르포를 쏘아댔으나 이번에는 장태가 총알을 먹어 버리고 오히려 동학군 쪽에서도 포를 쏘아대며 수천 명이 무리지어 달려들자 금방 전세는 경군에게 불리하게 전개됐다. 이제 경군은 쿠르르포며, 회전식 기관총이며, 수많은 탄환도 버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군 대관 이학승도 어이없이 전개되는 형세에 놀라 도망치려 하였으나 도망칠 곳도 없어 병사 다섯 명과 함께 칼을 휘둘렀다. 그때 이학승이 휘두르는 칼을 받아치는 사람이 있었다. 김인배였다.
“잘 만났다. 여기가 오늘 니 무덤 자리여. 내 칼도 한번 받아 봐.”
옆에 이미 수없이 많은 동학군이 있어 이학승도 어찌하지 못하는 사이에 젊은 동학군 대장 김인배의 칼은 번쩍 날았다. 그대로 이학승의 목이 뎅겅 떨어져 나갔다. 옆에 있던 병사들도 동학군이 휘두르는 칼에 맞고 죽창에 찔려 그대로 쓰러졌다. 마침 이학승이 쓰러진 곳에 있던 양계환이 이학승의 칼을 추켜들며 말했다.
“워매! 이 칼이 인자 임자 지대로 만났구마~이! 묵직한 거이 좋구마~이!”
“만세!”
“만세! 동학군 만세!”
갑오년 4월 24일, 황룡천 전투는 이렇게 동학군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나라의 정예부대를 격파한 동학군은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이제 전주성이다. 가자! 전주성으로!”
## 지금까지 연재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출판된 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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