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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명금혜정

깊은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7회) - 동백숲에 흐르는 도인의 꿈(4)

 

솔섬에는 봄이 오고 있었다. 며칠간 망을 보느라 바위 굴에 숨어 있었던 이소사와 남편은 바다에서 별 기척이 없자 아침 저녁으로 슬슬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의 바다에 배가 한 척도 뜨지 않는 날이 되면 두 사람은 양지바른 곳을 찾아 오래도록 심고를 드렸다. 바위틈으로 비쭉이 쑥이 새싹을 내밀고 바람도 매운 기색이 가시고 살갗에 닿는 감촉이 좋았다.

어디 멀리 떠나야 하지 않겠소? 관졸들이 우릴 잡으려고 한다면 이곳이야 금방 눈에 띄는 곳이오. 마을 사람들이 알려주기만 하면 우리는 그냥 발각이 되고 말 것이오.”

김양문은 이소사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벌써 며칠째 같은 질문을 해대도 이소사는 쉽게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정하게 쪽을 진 머리에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꼭 닫힌 입술로 생각에 젖어 있기만 했다. 김양문은 말이 없는 아내의 표정을 살피다가 가만히 주문 13자를 외우기 시작했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그러자 이소사와 혼인말이 오가던 시절이 떠 올랐다. 영특하고 무예가 뛰어나다는 연지리의 이연하아가씨에 대한 소문은 인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인한이 덕도를 드나들 때부터 총각들은 어떻게든 이인한에게 잘 보여서 이연하와 혼인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러나 감히 그 댁에다 중매장이를 넣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김양문은 연하아가씨를 한번만이라도 보는 게 소원이어서 이인한에게 도인이 되겠다고 선언을 했다.

연지리에 사는 미모의 아가씨가 도인의 딸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말을 타고 무술을 익힌다는 그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 김양문은 입도식을 마치고 마땅해 하지 않는 부친을 설득하여 중매장이를 보내게 했다. 이소사는 김양문이 공을 들이고 들여서 얻은 배필이었다.

하늘의 기운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져 옵니다. 이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당신과 제가 부부 연으로 만나서 짧은 시간을 보냈지요. 이 섬에서의 생활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방님은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이소사가 넘실대는 파도를 내려다 보며 김양문에게 입을 열었다. 김양문은 황급히 이소사의 손목을 잡으며 애원했다.

무슨 말이오? 이렇게 함께 있는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여기에서 마지막이라니 난 그렇게 할 수 없소. 선비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조용히 식솔을 지키는 것도 도리라고 생각하오. 반드시 싸움터에 나가서 싸워야만 나라를 사랑하는게 아니란 말이오.”

김양문이 이소사의 어깨를 두 손으로 흔들며 무어라 대꾸하려고 한 입술을 손으로 막아 버렸다.

집안에서야 모셔야할 어른들이 층층히 계셔서 부인께 내 맘을 전할 수가 없었소. 지금 비록 쫓기는 처지이지만 단둘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오. 나랏일은 잠시 놓아두고 지금 이 시간을 잘 보내도록 합시다.”

이소사는 맑은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벌써 며칠째 바위틈새에 띠풀을 깔고 자야 했고, 밥을 지을 수가 없어서 가지고 온 쌀을 씹어서 먹어야 했건만 남편은 이소사를 탓하지 않았다. 여자의 몸으로 수군들을 발길질로 날려 버리고 쫓기는 몸이 되었으니 남편의 입장에서는 화가 나기도 했을 터였다. 그러나 남편은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다.

김양문은 도리질을 하며 이소사에게 속삭였다.

설령 거사가 시작된다고 해도 우리의 인연은 끝이 나선 안되오. 어떻게 맺은 인연인데 우리가 헤어진단 말이오. 당신이 가는 곳이면 나도 함께 가겠소. 지금 여기에 온 것처럼 말이오.”

이소사는 김양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섬마을 구석구석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바람이 돌고 있었다. 이소사와 김양문의 옷자락이 펄럭였다. 둘은 손을 잡고 섬 기슭을 천천히 돌았다. 섬은 오래도록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바위틈에서는 맑은 샘물이 흘렀고 양지바른 곳에는 동백숲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다.

해안가로 내려가지 바위마다 고동들이 붙어 있었고 찰박찰박 물이 차 있는 틈새에는 주먹만한 소라와 해삼들도 떠다녔다. 두 사람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바닷물로 들어가서 갯것들을 잡기 시작했다.

하하 부인의 생각이 언제나 앞서니 나는 따라가기가 힘드오. 그렇지만 부지런히 수련을 해서 나도 도인들이 느끼는 바를 하루 빨리 깨치도록 하겠소.”

김양문은 찰박거리는 물살을 피하며 손에 잡히는 파래를 뜯기 시작했다. 때마침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이소사의 붉은 뺨 위로 번지고 있었다. 이소사는 허리를 세우고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렇게 하옵서소. 그런데 저는 거사가 닥치면 분연코 일어나 싸움터로 향할 것이옵니다.”

김양문의 이소사의 볼에 흐르는 결기를 느끼며 갑자기 한기가 닥쳤다. 이소사를 잡을 수 있는 힘이 그에게는 없었다. 김양문은 두 손에 들고 있던 파래뭉치를 바다에 버리고 저벅저벅 땅 위로 올라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솔섬을 향해 달려오는 두 대의 관선이 보였다. 김양문은 다시 후다닥 바다로 뛰어 들어가서 이소사의 손을 잡아 끌며 소리쳤다.

포졸들이 들이닥치고 있소. 빨리 피합시다.”

둘을 재빨리 바위 굴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직 불기가 남아 있는 화로를 들어서 바닷속에 집어 넣었다. 푸지직 연기를 내품으며 화로가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굴 바닥에 깔아 놓은 띠풀로 짠 돗자리를 들고 둘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 사람 한 몸을 숨길만한 공간이 나왔다. 둘은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심고를 올렸다.

수군들은 이소사와 김양문이 이미 말을 타고 대처로 떠났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연지리 친정에도 이소사는 머물지 않았고 마땅히 찾아갈 친척도 없어 보였다. 관졸들은 이리저리 이소사가 숨을 만한 곳을 탐색하고 다녔다.

인근의 섬에는 빽빽이 들어찬 동백숲 때문에 사람이 숨어 들어갈만한 곳이 많았다. 관졸들에게는 섬이란 참으로 성가신 곳이었다. 한번 숨기만 하면 사람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곳이 기 때문이었다. 가파른 바위 틈새나 우거진 나무숲에는 숨은 사람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날마다 섬을 지키며 불을 피우는지 살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숨어 있는 사람들은 낮에 불을 피우지 않았다. 달도 없는 아주 깜깜한 밤에만 불을 피우고 불씨를 살려서 화롯불을 이어나가게 마련이었다.

수군의 배들은 커다란 바위에 닻을 감아 놓고 섬으로 기어 올랐다. 아직 봄바람이 살랑거린다고 해도 바닷물은 여전히 차가웠다. 네 명의 수군들은 섬 꼭대기로 올라가서 이곳저곳을 살피었다. 거친 바위로 둘러싸인 섬에는 사람이 숨을만한 곳은 동백숲 밖에 없었다.

저 숲에 숨어 있을 수도 있어.”

아닐세, 저 숲에는 아무리 봐도 물이 없어 보이네. 물이 없는 곳에 사람이 오랫동안 숨을 수는 없는 노릇일세.”

수군 포졸들이 서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동백숲으로 향하였다. 동백나무에는 붉은 동백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었다. 매캐한 동백향기에 취한 포졸들이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버렸다.

아니 이소사라는 여자는 어쩌자고 관졸들을 괴롭힌 거야? 여자가 그렇게 사나우면 그 남편은 어찌 살까?”

얼굴에 마마자국이 가득 찬 포졸이 궁금증을 드러냈다.

어이, 자네는 그 자리에 없었구만. 그 여자 몸놀림이 보통이 아니었어. 오랫동안 훈련을 한 몸이지 보통 아녀자의 몸이 아니라네. 우리들이 꼼짝도 못하고 당한 걸. 아이고, 아직도 옆구리가 아프네 그래. 내가 풍어제때 차린 말린 낙지찜좀 빼앗아 먹으려고 이소사에게 발길질을 당했지 뭔가.”

늙수구레한 포졸이 옆구리를 내밀며 하소연을 했다.

그 여자는 절세의 미인이라고 하던데 미인에게 맞은 것이 영광이지 왠 푸념인가? 나도 그런 미인에게 한번 맞아 보았으면 좋겠네.”

마마자국 포졸이 하품을 하며 대꾸했다. 봄바다는 한껏 푸르렀다. 넘실대는 파도를 내려다 보며 나이 든 포졸이 넋두리를 퍼부었다.

맞은 것도 분한데 이제는 찾으러 다니는 것도 힘드네 그려. 아무래도 여긴 아닌 듯 하니 돌아가세. 날도 슬슬 풀렸으니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그물질 하는 배에서 고기나 몇 마리 빼앗아서 회 쳐 먹으면 딱 좋겠네. 이 동백숲에 숨을 데가 어디 있겠나?”

글쎄,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만. 누가 이 솔섬으로 이소사가 들어왔다고 귀뜸을 해주었나?”
그러자 한쪽에서 여기저기 섬을 둘러보고 있던 포졸 대장이 소리를 질렀다.

이보게, 그런 소리 말게. 내가 그날 대장에게 얼마나 혼이 난 줄 모르나. 얼마나 모자라서 아녀자에게 맞고 들어왔냐고 밤새 매질을 당했네. 난 그냥 못 돌아가네. 꼭 이소사를 잡아야 하네. 아마 이 섬에 있을 것이네. 내가 화약 두 꾸러미를 주고 덕도사람을 매수해서 얻어낸 소식이야. 이소사는 남편과 함께 이 섬으로 도망을 쳤다고 하네. 아무도 몰래 밤중에 이소사에게 곡식을 대주는 섬사람들이 있다고 했다네.”

세 명의 포졸들이 입을 좌악 벌리었다. 그들은 이 작은 섬에 이소사가 숨을 만한 곳이 어디 있는지 눈으로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 줄기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네. 이 숲에 있는 모든 나무들을 타고 올라가서 살펴야 겠구먼.”

허허, 여기 동백나무가 몇 그루나 되게 보이는가? 수백 그루일세. 우리 넷이서 나눠서 올라간다고 해도 한 나절은 걸리겠네. 그런데 물도 가지고 오지 않고 주먹밥도 없이 한 나절동안 이 섬을 뒤지자는 말인가?”

마마자국이 난 포졸이 화가 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러자 포도대장이 벌떡 일어나 차고 있는 칼을 빼서 허공에 쩡! 소리가 나게 휘두르며 대답을 했다.

이소사를 잡아 가지 않으면 내 모가지가 날아갈 수도 있네. 잔소리 말고 동서남북으로 나눠서 나뭇가지를 살피도록 하세.”

세 명의 포졸들이 엉덩이를 들며 어기적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대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방향을 틀며 동백나무로 오르기 시작했다.

이소사, 기다려라. 이제 독 안에 든 쥐이다.”

포졸 대장은 잔가지가 잔뜩 퍼져 있는 고목나무부터 샅샅이 나뭇가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2015/06/08 - [소설/명금혜정] - 깊은 강은 소리없이 흐르고(6회) - 동백 숲에 흐르는 도인의 꿈(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