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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한박준혜

은월이(10회) -<춘분> 금산기포로 김석진이 궁지에 몰리다

 

춘분 (3.20)

은월당 안마당에서는 아낙들이 장독을 씻고 있었다. 장 담그 좋은 날에 사람들이 모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장 담기 좋다는 춘분에 사람들이 알아서 모여 몇 일째 장을 담갔다. 너른 뒷마당이 꽉 찼다. 달구지에 장독을 싣고 온 금객주 휘하의 상인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했다.

전주댁이 큰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다들 새참은 먹어야지.”

일손을 놓고 그때서야 비로소 허리를 펴며, 아낙들은 전주댁을 바라보았다. 전주댁은 국수틀 손잡이를 누르면서 환히 웃고 있었다. 영옥은 국수틀에서 쏟아지는 국수를 끊는 물에 받아 익혀가지고 찬물로 옮겨 식히는 일을 하면서 해맑게 웃었다.

전주댁과 영옥의 모습을 본 은월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낙들은 개다리소반에 국수를 먹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중문이 열리고, 훤칠한 사내가 들어섰다. 아낙이 소리를 쳤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개다리소반 양반 아니야?”

맞네 맞어! 개다리소반인지 양반이지. 일루 와서 한 젓가락 같이 합시다.”

안마당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영옥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반짝이며, 중문으로 들어온 김석진을 바라봤다. 전주댁은 국수틀을 발로 세게 치며, 영옥이를 쏘아 붙였다.

뭐하는겨? 국수가 불잖아! 덤벙덤벙. 아이고 나이를 어디로 쳐먹은겨?”

, 어매, 나갔어요. 불은 국수 내가 먹을게요!”

영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앞치마를 풀어 탁탁 털어 국수틀에 던지고는 중문 쪽으로 뛰어갔다. 전주댁은 눈이 커졌다.

영옥아, 이년아! 국수마저 안 뽑을 겨? 아이고, 썩을 년!”

영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김석진에게로 달려갔다.

김접장, 먼 길 오시느라고 시장하시죠? 얼른 안방으로 드세요.”

김석진은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고개만 약간 숙여 인사를 했다. , 은월이가 있는 대청마루로 향했다. 안방으로 영옥은 정성스럽게 국수를 들고 왔다. 은월은 영옥이가 들고 들어오는 소반을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못 보던 소반이구나.”

금객주가 지난번에 나주서 사온 소반이에요.”

은월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밖에 아낙들은 다들 소박한 개나리소반에 먹는데 어찌 화려한 소반에 국수를 내오는 것이냐?”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하는 영옥에게 김석진은 다가가 소반을 맞잡았다. 영옥은 소반에 손을 때고 얼른 자리에 앉았다. 김석진은 소반을 내리면서 말을 했다.

금객주 정성도 생각하는 속 깊은 마음이니 너무 뭐라 하지 마십시오.”

영옥은 고개를 푹 숙이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영옥 접장도 시장할 텐데 같이 듭시다.”

김석진은 당황한 영옥이를 감싸듯 이야기했다. 은월은 톡 쏘면서 말을 했다.

김 접장, 소반 위에 이미 국수가 세 개입니다.”

영옥이 얼굴은 붉은 매화처럼 더 붉어졌다.

시장하실 테니 어서 드세요.”

김석진은 말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마당에서 전주댁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이년이, 국수 뽑다 어딜 간겨! 영옥아! 냉큼 나오지 못해! 썩을 년!”

영옥은 붉어진 뺨에 손등을 갔다 댔다. 은월은 젓가락을 들었다.

어서 듭시다.”

금세 한 그릇을 비웠다.

김 접장!”

.”

호남 상황이 어찌 돌아갑니까? 무장에서 포고문을 발포하였다 들었습니다.”

무장에 수천의 동학 도인들이 집결하여 고창성을 점거하고, 그곳에서 고부읍성을 단숨에 점거하여 이용태에 부화뇌동한 관속들을 모두 징치한 후에 백산에 웅거했다 합니다. 미처 합류하지 못했던 원근의 큰 접주들이 속속 백산으로 집결하고 상당한 무기까지 갖추었다고 합니다.

부대가 되었군요.”

백산에서 전봉준 총대장에 총관령에 손화중 김개남, 총참모에 김덕명 오시영, 영솔장에 최경신, 비서에 송희옥 정백현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이때 금객주가 급히 들어왔다. 금객주 손에는 서찰 하나가 들려 있었다.

김석진 접주도 마침 와 계셨군요. 방금 등짐장수한테 받은 겁니다.”

금객주는 책상에 서찰을 펼쳤다. 은월은 미간을 찌푸렸다.

백산에서 뿌려진 격문이군요.”

영옥은 신기한 듯 가까이 가서 격문을 읽었다.

우리가 의()를 거()하여, ()에 지()함은 그 본의(本意)가 단단타(斷斷他)에 있지 아니하고, 창생(蒼生)을 도탄(塗炭)의 중()에서 건지고 국가(國家)를 반석(磐石)의 우에다 두고자 함이다.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이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금객주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해다.

가슴 뛰게 만드는 글이 아닙니까. 이 격문 말고도 도인들이 지켜야 할 네 가지 사항과 12개조의 군율까지 발표했다고 하니, 이제는 당당한 의군이 된 셈입니다.”

…….”

또한 큰 깃발에 보국안민이라는 글씨를 써넣어 수천 명의 도인들이 어디서고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은월은 금객주를 바라보면서 말을 했다.

얼마나 모였다고 합니까?”

등짐장수 말로는 백산이 꽉 찼다고 하고, 끝이 안 보일 정도라고 하더군요. 육칠천은 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김석진은 바로 말을 이었다.

호남 전역으로 퍼지는 기운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 없습니다.”

금객주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맞장구를 쳤다.

지금이 기다리던 때가 왔습니다. 허나, 지난 금산 봉기로 민심이 뒤숭숭합니다. 보부상들의 움직임이 좋지 않아 걱정입니다.”

김석진은 날을 세웠다.

금객주, 아시지 않습니까? 민보군과 결탁한 보부상들이 꾸민 모략인 걸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알고 있네, 하지만 민심은 거짓을 진실로 믿는다는 걸세.”

불의를 저지른 보부상들을 응징해야 합니다.”

여기서 보부상들을 건드리면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은월이는 장죽꽂이에서 담뱃대를 꺼내 장죽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잡아당겼다. 재떨이에 놓인 싸리껍질을 벗겨 약물을 먹인 노끈을 들어 담배통에 갔다 댔다. 노끈 끝에서 타던 불이 담배통에 옮겨 붙은 소리가 났다. 은월은 크게 숨을 내쉬면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동학을 잡겠다고 유림과 보부상이 결탁한 것은 분명 우리에게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근 한 달을 금산과 진산에서 의로운 활동을 했으니, 반격을 해오겠지요. 예상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미 권력을 가진 자들이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조만간 금산과 진산에서 고제학을 중심으로 한 민보군과 보부상이 한패가 되어 크게 붙겠지요.”

은월은 담배연기를 다시 크게 들여 마시면서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지금은 나무보다 숲을 봐야 할 때입니다. 작은 눈을 굴리면 금세 크게 커지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대세다 싶으면 계속 모이는 법입니다. 순식간에.”

은월은 담배를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우린 숲을 봐야 합니다. 앞으로 가도 뒤로 빠져도 결국 공주로 가는 길목인 이곳 연산으로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석진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얼굴이 굳어지면서 말을 했다.

은월 접장함께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선은, 불의를 저지른 저 보부상들도 처단해야 합니다.”

나도 김 접장과 같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싸우는 세력이 있으면 뒤에서 받쳐주는 세력도 있어야 싸움이 간고하게 갈 수 있지요. 또한,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의와 맞선 세력은 누군가가 나서서 응징할 것입니다.”

은월은 다시 담배를 물었다.

김 접장, 싸움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입니다. 모두가 전방만을 생각한다면, 싸움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잊지 마세요. 모든 싸움의 절반은 후방입니다. 후방의 역할을 연산에서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 좋고, 평야지대에 감영과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 지리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서 후방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김석진은 눈이 반짝이며 말을 했다.

그래서, 영옥이와 저를 묶어 주셨군요.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김 접장, 우리가 개벽을 하자는 것이 뭐겠습니까? 밥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의로운 일을 한다고 해도, 먹어야지요. 입어야지요.”

은월은 영옥이를 쳐다봤다.

영옥아. 그래서, 아낙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포의 반은 아낙들의 힘이다.”

영옥의 눈빛도 반짝였다. 은월은 김석진과 영옥의 손을 잡았다.

김석진은 전방에서 다른 접들과의 연합을 잘 해야 합니다. 다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영옥은 후방에서 물자공급을 잘 해야 한다. 둘이 한 호흡이 된다면 개벽으로 가는 큰 물길이 만들어질 거라 확신합니다.”

김석진과 영옥은 심장에서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금객주도 결의에 찬 얼굴로 은월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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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진산에서 밀린 동학도들이 연산에서 대열을 정비하면서, 주둔하게 되었다. 윤도인은 허겁지겁 박영채가 머물고 있던 안방으로 들어왔다.

박 접장, 박 접장!”

무슨 일이오?”

연산에 동학도들이 모이자, 공주 이인역에 등짐장수들 수천 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박영채는 보던 책을 덮었다. 윤도인은 상기된 얼굴로 앉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그렇게 될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동학도들이 등짐장수들만 보면 죽인다고 하여, 성토를 하고 있답니다.”

그래, 어찌하고 있는가?”

이인역 쪽으로 김석진이 직접 갔다고 하는데.”

박영채는 버럭 화를 내며 큰소리로 말했다.

김석진이? 금산에서 그리 일을 벌여 놓고선 가서 또 일을 만들려는 작정인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셈이죠. ,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박영채는 주먹을 꽉 쥐었다.

김석진이 오는 대로, 회합을 할 테니 그리 알고, 준비하시오!”

, 알겠습니다.”

윤도인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면서 피식 웃었다. 윤도인이 방문을 나가려 하자, 박영채가 윤도인을 불러 세웠다.

윤 도인.”

, 무슨 시킬 일이라도 있습니까?”

난리통에 윤지영을 잊고 있었네. 어찌 하고 있는가?”

윤도인은 머리를 끌쩍거리면서 말을 했다.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종손 윤씨 어른이 윤지영을 데리고 갔습니다. 혹여, 이번 난에 참가할까 봐 염려가 된 모양입니다.”

그럼, 지금 집에 있는가?”

집안 사정을 알 만한 사람 말로는 신식 군대에 보내려고, 한양인가 인천인가에 보냈다고 한 것 같은데. 아이고 아이고, 참 참 참.”

왜 그러는가?”

연산에 동학도들이 들어와서 까맣게 잊고 있었네. 마포나루에서인지 인천항인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양복 입은 일본인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봤다고 들었습니다.”

박영채는 입을 실룩거렸다.

윤지영이 왜놈들과 어울린다?”

, 제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윤지영에 대해 더 알아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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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박영채 접주의 안방은 도인들로 꽉 찼다. 한쪽에 은월이와 영옥이가 앉아 있었다. 박영채는 영옥이를 은근하게 바라보다 은월이의 차가운 시선에 이내 눈을 돌렸다. 윤도인은 눈에 힘을 주면서 말을 했다.

다들 모였으면 회합을 시작하겠습니다. 박접장이십니다.”

다들 고생이 많았습니다. 연산에 들어온 도인들이 무사히 빠져나갔고, 아직도 전봉준 접 중심으로 기포의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전체 상황을 진단하고, 나서는 몇몇 문제에 대해 의견을 듣고자 모이라 했습니다.”

윤도인이 나섰다.

지난 금산 기포 때, 서리배들의 집을 불태우고, 이를 보부상들이 동학 행세를 하며 저지른 행패라고 하여, 보부상들을 무자비로 응징한 행위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도인으로서는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이고, 또한 보부상들이 동학과 맞서게 한 중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합니다.”

방안은 술렁였다. 윤도인을 따르는 몇몇이 거들고 나섰다.

윤도인 말이 맞습니다. 얼마 전 이인역에 보부상들이 결집하여 큰일이 날 뻔했지요. 지금 금산의 민심이 동학에 대한 원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이를 본 사람의 말만 듣고, 스승님의 가르침을 어긴 자들을 가만두면 안 됩니다.”

우선은 도인이라는 자가 서리들의 집을 불태우고 무고한 살상을 한 자가 누구이며, 더욱이 몰염치하게도 보부상이 동학 행세를 하면서 서리들의 집을 태웠다고 뒤집어씌운 자가 누구인지부터 밝히고, 철저히 징계를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말만 듣고, 보부상에게 행패를 부린 자도 같이 응징해야합니다.”

은월은 얼굴색 하나 흔들지 않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영옥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방안에서 김석진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윤도인은 영옥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말을 했다.

거짓을 고한 자 보부상에게 행패를 부린 자부터 지위를 박탈하고.”

이때 왈칵 방문이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방문 쪽으로 향했다. 김석진이 서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들어 왔다. 김석진 뒤에 낯선 사람이 따라 들어왔다. 윤도인은 김석진을 보자 큰소리로 말했다.

때마침 들어왔습니다. 징계가 무서워 도망간 줄 알았는데. 바로, 우리 정신을 흩트린 자가 바로 김석진 입니다. 김석진! 당장 무릎 꿇으시오!”

방안은 어수선해졌다. 김석진은 윤도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방안 가운데 박영채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앉았다. 같이 따라온 낮선 사람은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박영채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 회합이 어떤 자리인지 알면서, 낯선 자를 데리고 왔는가?”

박 접장, 회합에서 억울하게 몰렸으니 해명하기 위해 증명을 해야 될 것 같아 증인을 데리고 왔을 뿐입니다.”

윤도인은 기가 막혀하면서, 김석진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면서 말을 했다.

감히! 보자보자 하니, 접의 질서도 무시하고, 어디서 날뛰는 게요? ? 데리고 오더라도 접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박 접장, 불순한 저자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문제가 생겼고, 그 문제의 시작이 바로 저자이니 당장 내쳐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회합의 규율도 어긴 자입니다.”

윤도인이 큰소리를 내자 다들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윤도인을 따르는 자들이 김석진을 향해 당장 징계하자고, 고함을 쳤다.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때 영옥이가 일어서더니 김석진 옆으로 나가 섰다.

영옥이라 합니다. 제 말을 좀 들어 보십시오. 김석진 접장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보부상들이 서리들의 집을 태우고 동학 비도들이 했다고 고함치는 것을 본 사람입니다. 전 분명히 봤습니다.”

난감해진 윤도인은 영옥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자네가 어찌 증명할 건가?”

영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저자입니다!”

영옥은 문 앞에 서 있는 낯선 사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영옥의 말이 떨어지자, 그자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윤도인은 당황했다. 은월은 큰머리를 매만지면서 말을 했다.

박 접장, 해명할 기회를 주어야할 것 같습니다.”

박영채는 눈을 감았다. 윤도인은 펄쩍 뛰었다.

박 접장, 뭔 소리를 듣는다는 겁니까? 징계를 피하기 위해 거짓으로 꾸민 일들입니다. 당장 저, 김석진을.”

영옥은 윤도인의 말을 끊고 나섰다.

벌을 받더라도 제가 받아야지요. 제가 김 접장한테 말해, 동학 행세를 하고 행패를 부린 보부상을 응징하자고 한 사람입니다. 벌을 받더라도 제가 받겠습니다. 낯선 자를 회합에 감히 데리고 오자고 한 것도 바로 접니다. 모두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어떠한 벌이라도 받겠습니다.”

영옥이가 완강하게 나오자 윤도인은 어쩔 줄 몰라 박영채만 쳐다봤다. 은월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박영채를 바라보면서 말을 했다.

김석진 접장 해명을 듣고, 영옥이가 징계를 받아야 한다면 그렇게 하고 끝내지요.”

박영채는 눈을 뜨고, 영옥을 바라봤다. 박영채는 낯선 사내를 가리키면서 말을 했다.

금산 보부상이냐?”

예예.”

어찌 증명할 수 있느냐?”

이 방안에도 저를 알아보는 자가 있을 겁니다.”

낯선 자는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저는 금산서 인삼을 파는 보부상의 우두머리 김치홍의 비서 장씨라고 합니다.”

이자를 아는 도인이 있는가?”

한 도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박영채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좋다. 어찌하여, 김석진을 따라 이 자리까지 왔는가?”

이인역에 김석진이 찾아왔습니다. 금산 때 일에 대해 따져 묻고, 행패를 부린 자만 응징했을 뿐이고 앞으로 응징이 아닌 대화로 응대하겠다고 했습니다. 동학도인은 부패한 관리들을 때려잡아 나라의 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기포했지, 보부상과 대결하기 위해 나선 게 아니니 이해하고 서로 오해를 풀자고 했습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보부상의 잘못을 사과하면 다시는 동학도인들이 보부상을 응징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행패는 민보군과 함께 보부상 우두머리들이 한 짓이 분명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우리 등짐꾼들은 우두머리들이 시키면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대다수 보부상들도 그런 거짓 행패를 하면서, 의로운 일로 싸우는 동학도인과 척을 지며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윤도인은 장씨를 노려보면서 말을 했다.

그럼, 금산 기포 때 서리들 집을 함께 태웠느냐?”

시키는 대로 태우라 해서 현장에서 보부상들과 서리들 집을 태웠습니다.”

은월은 콧방귀를 뀌고,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박 접장, 더 들을 것이 남았나요?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러 왔으니 큰 품으로 안아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장씨와 좋은 시간을 갖도록 하고 영옥과 김 접장은 징계를 할 게 아니라 상을 줘야겠습니다. ”

은월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영옥아 가야겠구나.”

은월은 방문 앞에 엎드리고, 있는 장씨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나도 본 적이 있구려. 윤지영한테 인삼을 가져온 등짐장수 아니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은월정에 한번 들르시오. 차 한 잔 합시다.”

은월은 고개를 돌려 박영채를 노려봤다.

박 접장, 회합은 끝난 것 같은데, 바빠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하하하하.”

은월은 큰소리로 웃으면서 앞서 방을 나갔다. 민망한 표정을 짓던 도인들도 하나둘씩 나갔다. 박영채는 일그러진 얼굴로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박영채가 회합을 끝내자, 김석진과 젊은 도인들이 은월을 따라 나섰다. 은월은 대문 앞에서 김석진을 기다렸다.

김 접장, 다행입니다. 때를 잘 맞춰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은월 접장.”

고맙긴요. 애쓴 사람이 금객주입니다. 큰 고비는 넘겼지만 여전히, 견제가 심합니다.”

잘못된 것 싸우면서 갈 수밖에요.”

은월은 김석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은월은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세차게 고삐를 당겼다. 영옥은 고삐를 잡고 말에 타지 못하고 서성였다.

영옥아, 말에 타거라.”

김석진은 영옥의 말을 잡아주었다. 그는 말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을 했다.

마음고생 많았다.”

김석진의 짧은 말 한마디에 영옥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영옥은 말에 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석진은 영옥이가 말을 타도록 옆에서 손을 잡아주었다. 영옥은 김석진 손을 꽉 잡았다.

어서 가야겠습니다. 은월 접장이 기다립니다.”

김 접장.”

영옥은 김석진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찰싹-”

김석진은 잡은 손을 빼서, 말 엉덩이를 쳤다.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은월과 영옥은 말없이 한동안 말을 탔다. 은월은 금강하구로 내려가는 논산천에 잠시 멈춰 섰다.

영옥아. 어미가 아무 말 없더냐?”

은월은 마음속이 불안했던지 불쑥 튀어나왔다.

? 무슨 말이요?”

아니다.”

물어 봐도 되요?”

무엇을 말이야?”

은월 접장도 사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연모하는 사내가 있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을.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지.”

사랑이라.”

은월은 말을 세웠다. 그리고 논산천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머릿속에 온통 그 사람뿐이고, 가슴 터질 듯이 보고 싶어 죽고 싶다가도 막상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 숨조차 쉴 수 없지. 그런 자가 있느냐?”

…….”

호랑이가 먹이를 보면 절대 놓치지 않듯이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절대 놓치지 말거라. 미련은 죽을 때까지 가는 법이니. 평생 미련을 버리지 못할 거면 차라리 치열하게 싸우면서 사랑을 가지 거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말이다.”

은월은 웃으면서 영옥이를 바라봤다.

영옥아, 늦겠다. 어서 가자.”

둘은 봄바람을 가르면서 힘차게 말을 타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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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방에 박영채와 윤도인만 남았다. 윤도인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을 했다.

분명히, 김석진이 한 짓이 맞습니다. 아무래도 흉계를 꾸민게 맞습...”

윤도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를 내는 법이 없던 박영채가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르면서 소리를 쳤다.

더 이상 말을 하지 마시오, 윤도인! 오늘일로 그동안 쌓아 올린 덕을 한번에 날렸단 말이오! 도대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자는 윤도인의 말에 내 귀가 홀린듯하니 이제 물러가시오. 당장!”

당황한 윤도인은 기죽지 않고, 실실 웃으면서 말을 했다.

박접장, 은월접장이 힘이 세지면 결국 박접장 입지도 흔들리지 않습니까? 하늘에 해와 달은 하나지 둘이 될 수 없는 법입니다. 은월접장 후계자 영옥이만 곁에 두시면, 은월이는 종이 호랑이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접을 접답게 만들기위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저의 충성심을 믿어주십시오.”

박영채는 윤도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다신, 도인들 앞에서 조롱거리를 만들지 말게!”

알겠습니다."

 

2015/06/22 - [소설/한박준혜] - 은월이(9회)-충의깃발을 들고 금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