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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김현옥

작품 [님, 모심] - 작가의 말

 


 

작가의 말

문화재청은 120년 전 동학군의 유골을 2015216일 화장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동학소설 팀은 문화재청과 진도군청, 독립기념사업회 등 홈페이지에 철회를 요청하는 글을 올리고, 문화재청 앞에서 2인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또한, 기자와 관련 전문가를 동원해 위협하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동참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진도 동학군의 유골은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질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어느 것 하나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촘촘하다는 노자의 말이 떠올랐다. 나와 다른 존재, 나와 우주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 점이라고 생각한 나 자신이 얼마나 많은 존재와 연결된 큰 존재인지, 나 하나의 생각과 행동이 주변에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킬지 생각하게 되면서 새삼 삶의 엄숙함을 느낀다. 세상 속에서 를 바라보면 한없이 작은 존재이나, 내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는 한없이 깊고 넓은 존재였다. 동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더 자주 묻게 되었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와 동떨어진 사건이 아니다. 조상의 혼령은 우리 가슴속에 살아남아,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관여하고 있다. 작년 동학혁명 120주년에 맞추어 15명의 동학을 사랑하는 모임여성 작가와 함께 동학소설을 쓰게 되었다.

 

강원도 동학편1894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동학혁명의 뿌리가 되는 부분이다. 최시형이 강원도 영월로 피난 와서, 원주에서 잡히기까지의 이야기이다. 늘 쫓기는 삶을 살면서도 동학사상을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던 해월 최시형의 삶은 감동 그 자체였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모든 생명 존재를 존경하고 모셨던 사람, 죽는 날까지 짚신을 짜거나 나무를 심거나 밭일을 했던 동학의 지도자였다. 해월의 이런 생태적이고 영적인 삶은 현대 장일순에게 이어졌다. 장일순은 한살림운동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운동을 하였다. 오늘의 유기농법은 거대 자본에 편승하여 국가에서 허용하는 유기농 수치 인증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자본주의 상업화의 한계에 갇혀 있다. 진정한 생명 살림은 여러 품종을 혼합하여 농사짓는 섞어 심기 소농으로만 가능하다. 단품종 대량생산을 통해 이윤을 남기는 대기업의 기계화 농법은 공생의 생태계를 파괴한다. 땅에 휴식 없이 생산량만 강요하고 있다. 대량 동물 사육과 같이 땅에 폭력적인 농법이다. 모든 것은 서로 어울려 있다. 땅이 병들면 우리 몸도 병이 든다.

 

수운과 해월 선생은 오늘날과 같은 신자유주의 대량생산으로 인한 생명 파괴 현상을 내다보고 그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모심과 어울림의 생명 사상이다. 모든 생명은 그 안에 위대한 존재를 모시고 있으니, 서로를 존중하고 모셔야 하며, 모든 생명 존재는 어울림으로써 서로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를 개체에 한정시키기보다는 관계성을 통해 큰 나로 확장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래야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동학사상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알았고, 모든 존재가 평등함을 깨달았다.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 인시천(人是天) 등으로 대표되는 하늘 사상인 동학의 풍류 정신은, 모든 존재의 영적 평등 정신을 추구하였다. 동학은 조선 말기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가렴주구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마음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피워 마침내 전국적으로 불타오르는 혁명이 되었다. 또한, 동학은 조선 봉건사회의 부정 · 부패를 척결하고 일제의 침략 야욕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였다. 이 사상은 신분 차별을 기반으로 하던 기득권 사회와 조선을 침략하려는 일본에 큰 위협이 되었다. 동학군은 조정에 의해 탄압받고, 일본군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그러나 동학은 죽지 않고 면면히 살아서 우리 민족에게 끊임없이 부활의 힘을 주고 있다. 동학혁명에 이어 일어난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은 우리 민족의 주체적 각성이요, 정신개벽의 빛이다. 동학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소중하고 가치 있는 역사이며 문화유산이다.

 

이 글은 소설이자 역사이다. 실제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둠의 세월에 묻혀 버린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상상력으로 공간을 메꾸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기록을 바탕으로 사실대로 적으려고 노력했다. 한 사람의 독자라도 글 속에서 조상들의 훌륭한 삶을 본받아 현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에 한울님이 계심을 알고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면 자신의 삶과 주변의 삶이 더 환해지리라 믿는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다. 30여 년간 공부한 동학 자료를 기꺼이 제공해 주신 원광대 박맹수 교수님, 끊임없이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어 준 도반들과 가족,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 15명의 여성 작가 동지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모든 생명 존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