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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김현옥

작품 [님, 모심] - 2회 해월 피체지 답사

 

해월 피체지 답사

기사는 예상했던 대로 반응이 뜨거웠다. 며칠 뒤에 유청은 기사가 난 신문을 들고 장일순 선생을 찾아갔다. 그 며칠 동안 장일순의 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취재기자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학구열로 장일순의 말을 들어 보고 싶었다. 새로운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녀는 오랜만에 어린애 같은 설렘을 느꼈다.

 

유청이 찾아가자 장일순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선생의 부모님과 형제가 직접 지었다는 아담한 기와집은 정원이 넓었다. 키 큰 측백나무 옆에는 쥐똥나무와 단풍나무가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다. 정원 곳곳에는 산죽나무, 백일홍나무가 서 있었다. 초여름인데도 마당에는 질경이, 민들레, 괭이밥, 토끼풀 등이 납작 엎드린 채 꽃을 피우고 있다가 가끔씩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렸다. 자갈 틈 사이에 끼어서 사람발에 밟히지 않을 정도로만 낮은 키로 자라서 꽃을 피우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유청은 꽃들을 바라보며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선생님, 풀이나 새 속에도 한울님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찾아왔습니다.”

장일순은 빙그레 웃었다. 편안하고 따스한 물결이 자신에게까지 밀려오는 듯했다. 장일순의 미소에 유청의 마음도 부드럽게 풀리고 있었다.

“유 기자, 저기 흔들리는 단풍나무가 보이지?”

유기자는 고개를 들어 장일순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서 흔들 듯 까불거리는 나뭇잎들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나무가 흔들리는 것은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나무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그거야, 바람 때문이지요. 바람이 와서 흔들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죽은 나무보다는 살아있는 나무가 더 잘 흔들린다는 것을 아는가?”

“그래요?”

“북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가죽 때문이겠나, 가죽을 채우는 공기 때문이겠나?”

“공기요. 타이어도 공기를 가득 채워 탱탱하면 잘 굴러가든요. 북도 팽팽해야 소리가 잘 나겠지요.”

“그렇지. 북을 반듯하게 펴주는 것은 바람이지. 사람 또한 바람 기운으로 말하고 걷는다고 할 수 있지. 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이 육체일까 신체 속에 스며있는 바람일까?”

유청은 이해한 듯도 싶고, 전혀 못르는 것 같기도 했다.고개를 갸웃거리며 쉽게 말을 할 수 없었다.

“모든 생명체는 육체라는 외형이 있지. 그리고 그 안에는 마음이 담겨 있거든. 우리는 밥 먹고 숨쉬며 살지만, 또한 이것들을 알아차리는 고요한 존재도 있단 말이야. 육체만이 나라고 강하게 말할 수가 없는 거지. 사람에게서 마지막 숨이 빠져나갔을 때 남은 시신은 과연 누구일까? 이제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이해하겠지? 마음 중에는 모두를 위하는 하늘마음이 있는가 하면, 나만을 위하는 육체 마음도 있지. 육체 마음이라는 구름에서 벗어나면 본래 우리는 하늘마음이거든.”

유청은 자신의 육체 속에 하늘 마음이 담겨 있다는 말에 강하게 부정할 수가 없었다. 자세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구름 너머의 파란 하늘이 자신에게도 깃들어 있을 것 같았다. 자신 속에 파란 하늘을 상상하자, 일상 생활에 치어사느라 답답하던 가슴이 풀리는 듯했다.

 

“해월 선생은 말씀하셨지. 풀 한 포기, 새 한 마리 속에도 한울님이 깃들어 있다고. 당연히 내 자신 속에도 한울님이 계시니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지. 내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내 안에 계시는 한울님을 존중하다보면, 다른 사람이나 생명도 저절로 아끼고 사랑하게 되겠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는 존재이니 우리는 같은 형제인거지.”

유청은 장일순 선생을 통해서 어쩌면 새로운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장일순 선생을 자주 만나뵙고 싶었다. 그리고 해월 선생이 말씀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고 싶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녀가 서화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장일순은 웃으며 자신은 서화를 가르치지 않는다 했다. 그래서 그녀는 몇 달 뒤에 서화와 고미술에 관심이 많은 친구 5명과 함께 ‘치악고미술동우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옛날 그림들을 찾고 보존하고 감상했다. 유청은 장일순에게 그 모임의 고문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걸 구실 삼아 장일순 선생을 자주 찾아뵙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유청은 서화를 구경한답시고 틈만 나면 봉산동 장일순 선생의 집을 방문했다. 선생과 그의 부모 ‧ 형제가 직접 지었다는 소박한 기와집은 정원이 넓었다. 키 큰 측백나무 울타리 안에 산죽나무, 백일홍 등이 우거지고, 토끼풀이며 나리꽃이 정원 뜰을 수놓고 있었다.

 

세 번째 방문하는 날 처음으로 서재에 안내되어 들어가니 많은 책으로 둘러싸인 정면에 사진 액자 두 개가 걸려 있었다.

“이분들은 누구세요?”

유청이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사진 속 할아버지를 가리켰다.

“모자를 쓴 분은 내 할아버지일세. 서화를 좋아하고 사람 돕기를 즐겼던 따뜻한 분이셨지. 할아버지로부터 처음 붓글씨와 인간 사랑하는 법을 배웠어. 할아버지는 집에 어떤 사람이 찾아오든지 외면한 적이 없으셨지. 항상 따뜻한 밥을 대접하셨어. 그 옆에 계신 분이 서화를 가르쳐 준 차강(此江) 박기정(朴基正) 선생, 역사와 현실을 올바르게 보는 안목을 가르쳐 주신 분이야. 이분은 총 들고 의병 활동하다 말년에는 서화를 팔아 독립 활동 기금으로 보내곤 하셨어.”

장일순은 솔직하고 따뜻했다. 스스럼없이 한참 어린 자신에게도 다정하게 말씀해 주었다. 아직 존경할 만한 분이 없는 유청은 부러웠다. 장일순 선생이 이분들의 영향을 받으셨겠구나 생각했다.

유청이 훌륭한 분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저만치에 다른 사진이 보였다.

 

“저기 턱수염이 무성한 분은요?”

“저분이 바로 해월 선생이시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

장일순은 따뜻한 눈빛으로 잠시 해월의 사진을 응시했다.

“모든 생명을 한울님으로 모시며 노동과 밥을 신성하게 여기신 분이지. 노동은 신성한 존재에게 공양을 올리기 위한 인간의 거룩한 의무라고 하셨지. 그래서 평생 몸으로 노동을 실천하셨어. 관의 탄압으로 쫓기는 삶 속에서도 늘 기도하고 일하며 동학 교세를 키워 나가셨지.”

“저분이 바로 해월 선생님이라구요?”

유청이 상상하던 해월 선생 모습이 아니었다. 좀 더 근엄한 모습일 거라고 상상했는데, 사진 속의 해월은 풀리고 흩으러진 옷고름을 아무렇게나 맨, 여느 시골이나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농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장일순은 서화전에서 봤던 많은 글이 해월 선생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유청은 다시 해월을 쳐다보았다. 저분은 어떤 공부를 하셨기에 뛰어난 지혜를 갖게 된 것일까? 유청은 호기심이 일었다. 사진인데도 작고 빛나는 두 눈에 기운이 생동하고 있었다.

 

 

 

날씨가 좋은 토요일이었다. 서울 인사동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 시대 여성 그림전’이나 보러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유 기자, 해월 선생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했지?”

장일순이었다. 느리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밝은 음색이 느껴졌다. 뭔가 좋은 일이 있나 보다.

“예, 지금 뵐까요?”

“아니, 열 시쯤 보세. 마늘 심고 나서….”

“선생님께서 직접 농사도 지으세요?”

“그럼, 내 먹을 것은 내가 심어야지.”

유청은 오랜만에 여유 있는 아침 시간에 곡우차를 우렸다. 창문 밖으로 붉게 물든 단풍나무 잎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의 운율을 탄 나무들의 움직임이 춤사위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장일순과 해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장일순은 해월 최시형을 ‘민족의 거룩한 스승’이라고 했다. 자주 해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젠 유청도 해월의 팬이 되어 버렸다. 가끔 그가 몸담은 강원일보에 해월 이야기를 실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유청이 봉산동 집으로 찾아갔다. 장일순은 유청에게 호저면 송골로 간다고 했다. 유청은 해월과 송골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궁금해하며 30분 정도 차로 달렸다.

“저 위 농로 쪽으로 걸어가지.”

마을 초입에 차를 세우고, 나락이 누렇게 익은 들길을 지나 동네 어귀의 한 밭에 이르렀다. 한쪽에는 콩과 들깨가, 다른 쪽에는 배추와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다. 옥수수수염이 말라 있는 것이 빨리 수확해야 할 것 같았다. 들깨 향기가 고소하게 코끝을 간질였다. 할머니 혼자 엎드려서 콩대를 낫으로 베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청은 할머니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누구여? 잘 모르는 색시인데.”

할머니는 머릿수건을 벗어 땀을 닦으며 잠시 일손을 멈추었다.

“할머니 혼자 일하세요?”

“그려, 일할 손이 있어야지. 영감은 몸이 아프다고 누워 있어.”

“자녀분은 없으세요?”

“없긴, 다 도시로 나갔지. 도시에서 돈 번다고.”

“이 밭이 할머니네 밭이에요?”

“그려, 내년에는 농사도 못 짓겠어. 아무리 농사를 지어 봐도 돈이 돼야 말이지. 비료 값이 더 들어.”

“콩이나 들깨에는 약을 치지 않잖아요.”

“고추나 배추에는 약을 안 치면 농사가 안 돼. 이제는 힘들어서 그것도 못 해.”

“이 주변 좀 둘러봐도 되지요?”

“알아서 해. 무엇이 볼 게 있다고.”

할머니는 다시 엎드려 콩대를 베기 시작했다.

“그냥 구경 좀 하려고 그럽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할머니 혼자 일하시니 힘드시겠어요.”

유청은 할머니를 되돌아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농촌 현실이야. 노인들만 남아서 마을을 지키며 소규모로 농사를 짓고 있지. 몇 년 전부터 마을에 어린아이 울음소리나 아이들 노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

“마을이 늙어 가고 있군요.”

“그래, 순환이 되지 못하고 있어. 도시는 포화 상태고, 농촌은 텅 비고…. 언제부터 농사가 천대받는 일이 되었을까? 한때는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라고 했는데 말이지.”

 

유청은 장 선생이 가볍게 한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갈수록 농사짓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는 큰일이 나는 거지. 정부에서 자동차 수출한다고 쌀값을 저가에 정해놓으니, 생산비도 못 건지는 농민들은 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지.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는 제초제며 농약으로 생명을 죽이는 농사를 짓고 있어.”

“이러다가는 앞으로 정말 먹을 것이 없겠는데요. 먹거리가 점점 오염되고 있으니 말이에요.”

“문제는 사람들이 먹거리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데 있지. 자동차는 안 타도 살 수 있지만,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어.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동차는 중요하게 여기고, 쌀은 무시한단 말이야. 이러다간 결국 선진국에 의존하는 경제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어. 나이를 먹을수록 생명을 존중하고 모시라고 하셨던 해월 선생의 말씀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네.”

유청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 또한 지금까지 음식에 대해서나 농촌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한살림운동을 후원하기 위해 장일순 선생이 전시회를 열었을 때도 기자로서 의무적으로 인터뷰를 했을 뿐이다. 오염되지 않은 먹거리운동은 단순히 개인적 기호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는 생명의 뿌리와 맞닿아 있는 문제였다.

 

동네 어귀를 지나 장일순과 유청은 더 위쪽으로 올라갔다. 장일순은 산 바로 아래에 있는 밭을 가리켰다.

“이곳 원주시 호저면 송골 바로 여기가 해월 선생이 잡혀가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던 집이 있던 곳이야. ”

밭에서 옛날 집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이 밭의 흙과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들은 90여 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억할 것이다.

유청은 해월이 이곳에서 제자들과 수련하고, 관군에게 잡혀가던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을 해월의 심정을 헤아리며, 유청은 눈 아래 넓게 펼쳐진 10월의 들판을 바라보았다. 벼들이 고요히 사색에 잠겨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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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3 - [소설/김현옥] - 작품 [모심]-1회 장일순과의 대담 (김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