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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한박준혜

은월이(2회) - 자주의 깃발은 함성이 되어(2)

은월이

-자주 깃발은 함성이 되어

 

------!”

함성소리에 깜짝 놀란 은월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형제바위에 김석진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포대를 감싸 안은 채 김석진은 다시 고함을 질렀다. 그의 목소리는 병풍에 둘러싸인 석바위 하나하나마다 부딪쳐 튕겨져 오르며 소용돌이 쳤다. 은월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허공으로 손을 내밀어 김석진을 잡아 보려고 했다. 소용없었다. 김석진의 우렁찬 소리는 다시 소용돌이처럼 은월이의 온몸을 감쌌다.

이놈들 듣거라. 이 땅은 수천 년 얼이 새겨진 곳이다. 감히, 왜놈들이 들어올 땅이 아니다!”

은월은 자리에 썩 주저앉았다. 이어 어디선가 함성소리가 북소리에 실려 들려왔다.



--. ”

김석진의 외침은 계속되었다.

내가 죽어도 개벽은 영원하다!”

은월이 귓가에 맴돌던 소리들은 석바위에 부딪치고 나와 맥놀이를 일으키며 은월이를 후려쳤다. 은월이 몸이 흔들렸다. 은월이는 아득한 어지럼증에 시달리며 두 눈을 찔끔 감았다.

 

임술년(1862) 5월 은진현 관아

 

은아, 은아! 어서 내려와라!”

현감이 사는 기와집 처마에서는 앞치마를 한 아낙이 어두운 표정으로 급하게 손짓을 했다.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소리를 연거푸 질렀다.

기와집 지붕 위에 여섯 살 난 여자아이가 쪼그리고 앉았다. 담 밖에서 함성소리가 나자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때 담장 너머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아낙은 뒤로 자빠졌다. 일어서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다시 자빠졌다. 아낙은 하늘을 빤히 쳐다보았다. 손짓을 하며, 목청껏 은이의 이름을 불렀다.

은아! 은아!”

은이는 벌떡 일어나 반갑게 소리쳤다.

“어매! 훈장 선생님이에요.”

은아! 떨어져!”

저기 저기요! 장수 같아요! ! 어매도 얼른 올라오세요. 어서요!”

은이의 눈에 들어온 훈장 선생은 성난 군중들을 이끌고 앞장서 있던 윤희옥이었다. 윤희옥은 연산에 살던 서자 출신 반쪽양반으로 과거에 번번이 떨어지자 은진현에서 서당 선생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가 진주의 농민들의 봉기 소식을 듣자, 이참에 모리배 같은 악덕한 관리들을 몰아내자며 동무들을 규합하여 난을 일으켰다. 윤희옥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간 선한 눈 속 어디에 숨겨 두고 살았던지, 핏발선 눈으로 세상에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 윤희옥은 하늘 높이 칼을 치켜들고 갈라지는 쇳소리로 외쳤다.

백성을 위해 나라가 존재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민본입니다. 백성을 괴롭히는 임금은 하늘도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부패한 관리들을 다 쓸어버립시다!”

윤희옥의 말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산하를 울렸다. 기와집에 서 있던 은이는 팔짝팔짝 뛰면서 손뼉을 쳤다. 위태로웠다.

훈장 선생님이, 너무 멋져요! 어매, 얼른 올라오라니깐요. 어서요.”

은이는 마당에 있는 어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은이 어매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정신없이 사방을 둘러봤다. 은이는 손가락을 쭉 내밀었다. 손가락 끝을 따라 갔다. 사다리가 눈에 띄었다. 흔들거리는 사다리를 두 손으로 힘껏 잡고, 한 층 한 층 힘을 주며 오르기 시작했다. 사다리 꼭대기에 다다라서야 은이가 지붕 위에서 내미는 손에 어매의 손이 닿았다. 은이는 어매에게 안겨왔다. 그제서야 후들거리는 다리에 다시 불끈 힘을 주며 담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은이를 안은 채 담 너머 바라본 세상은 딴 세상이었다. 고을 사람들이 대나무에 낫, 괭이, 쇠스랑을 손에 들고 장정이든 아낙이든, 노인네에 아이들까지 윤희옥을 따르고 있었다. 은이 어매는 따스한 눈빛을 윤희옥에게 보냈다. 은이 어매 머릿속에 윤희옥의 따스함이 스쳐 지나갔다. 관비였던 은이 어매는 은이를 챙겨주었던 윤희옥이 고마웠다. 은이 어매도 빈궁한 윤희옥을 챙겼다. 윤희옥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리는 듯했다.

백성이 바야흐로 나라의 근본이라 했습니다.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것은 바로 족보와 노비문서입니다. 그것만 없어져도, 의로운 세상이 될 겁니다.”

은이 어매는 윤희옥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저분이 꿈꿨던 세상이 바로 이건가? 의로운 세상.”

이때 은이가 어매 손을 꽉 잡았다.

훈장 선생님이 의로운 세상을 꼭 보라고 했어..”

그래서, 지붕 위로 올라온 거야?”

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 훈장 선생님이 사다리를 만들어 줬어.

어느덧 봉기한 고을 백성들은 은진현 관아 마당을 가득 채웠다. 은이를 안고 한손으로 사다리를 부여 쥐며, 은이 어미는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비로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땅을 디딘 은이는 두 팔을 벌려 환하게 웃었다. 은이 어매는 두근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은이의 손을 잡고 구경꾼 속에 끼어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수선한 중에도 할 일을 정해 둔 사람들처럼 분주하게 패를 나누어 일사불란하게 그들이 땀 흘려 지었던 곡식을 창고에서 꺼내 마당에 쌓아 올리고, 또 빚이 적힌 치부책을 찾아 내왔다. 윤희옥은 마당에 빚이 적힌 책이 수북이 쌓인 책과 곡가마를 노려봤다. 윤희옥이 시끌한 좌중을 진정시키며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양반집에서 가져 온 노비서도 가져오시오!

한 패의 사람들이 들고 있던 노비문서를 마당에 내동댕이쳤다. 윤희옥은 횃불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윤희옥은 문서 더미에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은이는 어매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흔들었다.

어매, 저거.”

윤희옥은 횃불로 문서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불길이 타올랐다. 마치 소지를 하듯 노비문서 한 장이 다타기를 기다려 윤희옥은 굵은 목소리로 힘을 주어 말을 했다.

사람은 하늘입니다. 사람은 하늘 아래 다 같습니다! 이 노비문서, 치부책을 태우는 것은 그것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들을 모두 불태워 버립시다!”

횃불을 사람들은 노비문서와 치부책에 횃불을 던졌. 잠시 머뭇대던 불길은 금방 문서와 책더미를 뒤덮으며 하늘을 향해 타올랐다. 노비문서와 빚이 적힌 책들은 뜨거운 화염을 내뿜으며 잿더미로 변해 갔다.

와아!”

불꽃보다 더 높은 하늘로 사람들의 함성이 터져 올랐다.

은이는 눈빛을 반짝이면서 박수를 치며 신이 나서 말을 했다.

어매, 사람이 하늘이래요. 하늘.

은이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마냥 웃기만 했다. 은이 어매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은이를 바라봤다.

저 어린 것이 뭘 알고 저리도 좋아할까?“

윤희옥은 사람들 틈에서 은이와 은이 어미를 발견하고,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상기된 표정으로 지은 함박웃음에 어느덧 살기는 가시고 없었다. 은이는 윤희옥에게 손을 흔들었다. 은이 어미는 한손으로 머리를 매만지면서, 흰 이를 드러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봉기를 주도한 사람들은 창고를 헐어낸 곡식들을 고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나눠 주었다. 반나절도 안 돼 모든 물화가 제각기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관아 마당엔 서책의 잔해들이 재가 되어 어지러이 휘날렸다. 부서진 세간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기세등등하던 관아 건물은 폐가처럼 볼품이 없어졌다.

해가 저물자 골목마다 웅성대던 사람들의 발길조차 끊어지고, 온 고을이 무인지경처럼 고요해졌다.

집으로 돌아온 은이와 어매는 어둠이 짙게 깔린 문밖을 주시하며 윤희옥을 기다렸다. 어둠을 한가득 묻혀서 윤희옥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훈장 선생님!”

은이가 소리쳤다. 윤희옥은 은이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릅을 꿇고 앉았다.

훈장 선생님!”

은이가 나를 기다렸구나.”

은이는 윤희옥의 품에 와락 안겼다.

훈장 선생님!”

윤희옥은 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붕위에 올라가 세상을 구경한 기분이 어떠하더냐?”

심장 쿵쿵 뛰었어요!”

그렇단다, 넓은 세상을 바로 보는 일은 심장이 뛰는 일이다.”

그런데, 훈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가 궁금하더냐? 말해 보거라.”

저기 하늘이 어떻게 사람이 되요? 아까 그랬잖아요.”

윤희옥은 하늘을 향해 은이를 두 팔로 번쩍 들어올렸다.

이거 봐라, 은이가 하늘에 있으니, 은이도 하늘이다!”

은이는 환하게 웃었다.

은이네는 윤희옥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거사 당일 잠시 집에 들렀던 윤희옥은 그 밤으로 집을 나가 이틀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의 전언으로 윤희옥을 비롯한 주모자들이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며 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만 전해들얼 수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 밤 늦은 시간, 방으로 윤희옥이 숨을 헐떡이면서 들어왔다. 은이 어매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윤희옥을 바라봤다. 몸을 살짝 떨었다. 윤희옥은 은이 어매의 손을 지긋이 잡았다.

괜찮습니다. 다 잘 될 것입니다. 강경에 강변촌 언덕배기에 기생집이 있습니다. 이 책을 명월이라는 기생에게 보여주면 알아서 도와줄것입니다

은이 어매는 책을 받아들고 사르르 떨었다. 윤희옥은 은이 어매 손을 살며시 잡았다.

저도 곧 뒤를 따르겠습니다.”

은이 어매는 멍하니 윤희옥만 바라봤다. 은이는 책에 쓰여진 글자를 읽었다.

, , , .”

윤희옥은 은이를 무릎에 앉혔다. 윤희옥은 은이 머리에 자주색 댕기를 달아주었다. 자주색 댕기 귀퉁이에 노랑나비가 새겨져 있었다.

은이야, 어머니를 잘 보살펴야 한다.”

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이 어머니... 이 책은 은이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은이 어매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윤희옥을 바라봤다.

싫습니다. 그냥 여기에 있게 해주세요....?”

은이 어매는 윤희옥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윤희옥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안됩니다. 곧 이곳으로 관군이 들이닥칠 것입니다.”

은이는 윤희옥에 품에 와락 안겼다. 윤희옥은 한쪽 팔로 은이 어미의 어깨를 잡아 당겨 은이와 함께 가슴에 품었다.

그날 밤으로 은이네는 집을 나섰다. 은이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혼자 우뚝히 서 있던 윤희옥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은이는 엄지와 검지로 자주색 댕기를 매만졌다.

금강 끝 강경에서 걸음을 멈췄다. 은이 어미와 은이는 옥녀봉에 올랐다. 금강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은아, 우리 여기서 살자.”

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이 가슴에 동경대전을 품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은이는 하늘이다. 하늘처럼 살 거야!”

은이는 금강 끝을 바라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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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0 - [소설/한박준혜] - 은월이(2)-작품줄거리-한박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