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 썸네일형 리스트형 경상도편(6회)-정나구의 아들 도치를 만나다 (임술민란 때 상주에서 농민들을 조직하여 저항했던 정나구는 참수되었다. 정나구는 거사 전 처자식에도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아내와 아들 도치를 멀리 산 속으로 떠나 보냈는데...) (해월과 최맹순, 해월과 도치의 만남이 이어지고...) 1871년 영양에서 자칭 수운의 제자라고 하는 이필재의 거사가 있었다. 이필재는 끈질긴 설득으로 해월을 움직여 그의 동학조직을 이용해 부패한 영양군수를 처치했지만 문경에서 다음 거사를 준비하다가 잡혀 처형되었다. 해월은 발 빠르게 도피했지만 양아들 준이와 동생의 남편인 임익서는 잡혀 처형되고 말았다. 손 씨 부인과 딸들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필재 거사 이후 해월을 찾는 관아의 눈길은 집요했다. 해월은 강원도 깊은 산속에 숨어 살았다. 수많은 도인들이 .. 더보기 작품 [님, 모심] -11회 해월, 다시 일어서다(김현옥) 해월, 다시 일어서다 봄기운이 완연한 어느 날 다시 용담으로 갔다. 그러나 지난해 겨울 스승님은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용담은 인적이 끊겨 있었다. 언제 귀환할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관의 지목이 들끓고, 가정리 일대 최씨 문중과 수운 스승님의 부친인 근암공의 제자들이 수운의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질색을 하는 바람에 기약 없이 용담을 떠난 것이라 했다. 금등골로 돌아온 해월은 다시 일상적인 삶과 수련을 병행하며 공부하는 생활로 돌아갔다. 7월 어느 날 묵상에 잠겼다가 스승을 생각하자, 경주 서면 박대여(朴大汝) 집이 눈앞에 환히 보였다. 급히 행장을 꾸려 집을 나섰다. 과연 그곳에 수운 스승님이 와 계셨다. 전라도 남원 땅에서 겨울을 지내고 여름이 되어서야 경주로 돌아왔다고 했다... 더보기 작품 [님, 모심] -10회 최경상, 도를 닦다(김현옥) 최경상, 도를 닦다 해월은 통곡했다. 강수도 따라 울었다. 해월은 이 목숨을 오직 도를 위하여 쓰겠노라 다짐하였다. 강수도 남은 목숨을 해월을 위하여 쓰겠다고 결심하였다. 해월은 이윽고 울음을 멈추었다. 이 목숨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툭 트이며 기운이 맑아졌다. 맑고 차가운 산바람을 가슴 가득 들이마셨다. 높은 태백산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굽이굽이 능선의 이쪽과 저쪽은 양지와 음지가 섞여 있었다. 빛과 그늘은 둘이 아니었다. 산봉우리들을 그윽이 바라보니 부드러운 흙 가슴으로 뼈들을 감싸고 있었다. 산봉우리들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무엇이든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건 없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보았다. 가파른 벼랑에 군락을 이루며 서 있는 소나무들이며 회양목들이 거친 바람에도 꿋꿋하게.. 더보기 경상도편(5회)-해월이 만나는 사람들 (해월의 활약이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해월에 열광했을까요? 어떻게 전 인구의 3할 가까이가 동학도가 되었을까요?) 4. 꽃은 져도 열매는 남아 1865년 수운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해월은 비통하기 그지없었지만 그에게 남겨진 과업을 소리 없이 실천하기 시작했다. 스승의 처형으로 인하여 그도 용담정을 떠나야 했고 34년간의 기나긴 도망자의 생애가 시작되었다. 강원도와 충청도 단양을 거쳐 1884년 이후, 해월이 비교적 오래 머문 곳은 경상도 상주였다. 상주고을은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화동, 화서, 화남, 화북면이 바로 그곳인데 사람들은 통털어 그곳을 화사면이라 부르기도 했다. 해월은 백두대간을 타고 하루에 백여 리 이상을 바람처럼 날아다니며 포접을 했다. 그 결.. 더보기 작품 [님, 모심] - 8회 영해 교조신원운동 (김현옥) ◾1871년 해월 최시형 선생과 동학교도 등 수백 명이 거사를 위해 모였던 영해부 서면 우정동 (현재의 영덕군 창수면 신기2리 형제봉 아래) 병풍바위. ◾대동여지도 상의 영해부 지도-영해동학군의 진입과 퇴각로. 붉게 둥근 표시된 곳이 형제봉이다. 2. 벼랑 끝에서 영해 교조신원운동이 끝나고 (1871~) 해월 최시형, 강수, 이필제, 김낙균 등 영해 교조신원운동을 일으킨 주모자들은 살아남은 도인들과 함께 영해부에서 용화동 일월산 아래 윗대치를 거쳐 봉화군 춘양면 각화산으로 숨어들었다. 해월 일행은 숲 속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나무가 울창하여 어둡고 음침했다. 여염 사람이 쉽게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두 말이 없었다. 신발도 꿰신지 못할 정도로 급하게 피해온 길이다. 수운 최제우 동학 교조가 .. 더보기 작품 [님, 모심]- 7회 장일순, 노동.농민 운동 속에서 생명을 고민하다 장일순, 해월을 만나다 협동조합은 한편에서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농촌이 계속 허물어지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농부가 작물의 품종을 스스로 선택하고 기계화도 많이 이루어졌다. 1977년 수출 100억 불을 달성했다고 대통령이 신문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노동자의 낮은 임금과 낮은 쌀값 정책으로 이룩한 경제 성장이었다. 생산비를 밑도는 쌀값 책정에 농부는 농촌을 떠나 도시의 저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금방 무성해지는데, 농촌에는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장은 정부의 방침이라며 다수확 품종 ‘통일벼’를 심고 농약을 살포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 말에 따르지 않으면 빨갱이라는 신고가 들어갔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제초제와 비료를 선택했다. 농약 묻.. 더보기 비구름을 삼킨 하늘(4회) - 1장 1891년 공주(2) 1장 1891년 공주 (전회에 이어서) "우리 의령이와 비슷한 나이 같지요?” 그 순간 동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걱정하지 말고 일어나렴. 다 잘될 테니까. 어서 일어나야지.” 불안한 동이의 마음을 들여다 본 것일까? 또다시 가만가만 동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다정한 손길이 느껴졌다. 동이는 천근만근 무거운 눈을 뜨고 소리 나는 쪽을 쳐다봤다. “어머, 정신이 돌아오나 봐요. 얘야, 정신이 드니?” 동이는 정신을 가다듬고 가만히 눈을 뜨니, 처음엔 흐릿하던 얼굴이 점점 또렷해졌다. “얘야, 내가 보이느냐?” 낯선 얼굴 둘이 걱정스럽게 자신을 쳐다봤다. 아! 역시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다. 다정한 눈빛들이지만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역시 꿈이었구나. 동이는 절망하며 다시 눈을 감.. 더보기 은월이(5회) - 자주의 깃발은 함성이 되어(5) 은월은 연산회합을 다녀 온 후 더욱 분주해졌다. 늘 그랬듯이 금객주를 먼저 찾았다. 영옥은 금객주와 은월당으로 들어왔다. 은월이 앉은 채 두 사람을 맞았다. “영옥이가 옆에 있어 든든하겠습니다.” 금객주는 은월 옆에 언젠가부터 늘 함께 있는 영옥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우리의 뜻을 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그것이 보따리를 싸들고 삼십년 동안 만들려고 했던 해월 선생의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금객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로 보자고 했습니까?” 은월은 방긋 웃었다. “예, 마음에 맞는 객주와 상인들을 따로이 규합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왜놈들 횡포에 큰 피해를 입은 자들, 관 것들에게 치를 떠는 사람들로…” “규모는 어떻게 할까요?” “대여섯 명씩 여러 개로 조직해 주십시오.. 더보기 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3회) - 임최소현 사진설명: 구중궁궐 창덕궁의 일부 모습 대표들의 낯빛이 바뀌었다. 손병희는 낮에 비몽사몽간에 눈앞에 나타났던 장면이 이렇게 펼쳐지는 게 더욱 놀라웠다. 누군가 괘서를 붙인 후에 쫓기고 있었는데, 손병희 도력으로 무사히 빠져나갔음을 직감하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그는 이번 상소문의 대표로 이름을 올린 박광호 등 다른 대표들을 독려하여 서둘러 짐을 싸서 서울을 빠져나가야 했다. 조정에서는 이제까지 혹세무민하는 서학의 요설(妖說)에 싸잡힌 무지몽매한 집단이며 유리걸식하는 비적떼라고만 치부하던 동학도들이 엄정한 위의를 갖추고 정연한 이치를 펴는 것에 내심 놀랐다. 그들은 질서정연하였고, 나라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비판하고 걱정하는데다가, 최근에 걷잡을 수 없이 밀어닥치는 외세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 더보기 꿈이 있더냐(2회) - 벅차오르는 희망, 동학의 뜻은 넓게 넓게 퍼져라(2) 김은경이 해월 선생을 만난 것은 신사년(1881년 8월)이었다. 양반으로 태어나 오랜 시간 서책에 매달려 살아왔건만 학문의 울림은 없었다. 아니 유학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나라가 유학이 가르치는 도리는 너무 멀어지기만 하는 데에 지긋지긋했다. 돈을 주고 관직을 사고 싶지도 않았다. 백성들은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매맞아 죽어 나가기를 아침저녁 가리지 않는데, 조선의 유학자들은 서원에 모여 사대부 타령이나 하는 것이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김은경은 풍문으로 동학이 주장하는 바를 전해 듣고 귀가 번쩍 뜨였다. 천지가 개벽하는 것만 같았다. 이 조선 땅부터 지상신선의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놀라웠고, 적서의 차별을 없애는 것은 물론이고, 양반과 평민과 천민들까지 평등하게 대한다는 말에 가슴이 열렸..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