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썸네일형 리스트형 한울님이 나와 함께하므로 두려울 것이 없었다 Q. 소설 쓰는 과정에 생긴 에피소드 A. 1.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소설을 쓰고 있으면 가끔 교장 선생님이 교무실을 들여다 보시며 “아직도 안 갔어요?” 한다. 주말에 학교에 나오면 토요방과후담당 선생님, “바쁘시네요?” 한다. 주로 아침 8시에서 밤 10:00까지 학교에 남는데, 어쩌다 출장 가고 못 나가면 학교 숙직하시는 주사님 “ 김선생님 안 나와서 무슨 일인가 했어요.” 또는 9:00쯤에 가면 “김선생님, 오늘은 일찍 가시네요.” 한다. 2. 주말에 가끔 남편이 광주에서 강진으로 내려온다. 아내가 소설 쓴다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을까봐, 도시락에 과일을 싸 온다. 교무실 탁자에 단 둘만의 밥상을 차려놓고 나를 부른다. 때로는 산에 가자고 유혹한다. 해월 선생이 강원도에 피신하는 마음으로 산길.. 더보기 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 - 연재를 시작하며 연재를 시작하며 가까운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짚어볼 때마다 슬픔이 복받쳐 오른다. 최근 세월호 사건은 돌덩이처럼 크고 무거운 슬픔을 가슴에 안겼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 120년 전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동학농민혁명 때도 무수한 생명들이 죽임을 당했다. 탐욕에 찬 집권층과 이 땅을 욕심내는 외세에 의해 생명의 싹들이 꺾이고 짓밟혔다. 일제와 분단, 6.25전쟁을 거쳐 현재까지 그런 몹쓸 죽음의 광란은 되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렇게 밟히고 밟혀도, 죽이고 또 죽여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생명들이 이 땅 여기저기에서 움을 티운다는 것이다. 연약한 머리를 내밀고 이윽고 거침없이 쑥쑥 자라난다는 것이다. 곧 이어 그 초록 잎들 사이로 알록달록한 꽃들이 피고, 여기저기서 고운 나비들이 날아든다는 .. 더보기 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 - 줄거리 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 때는 1893년 3월(양력) 아직 꽃샘추위가 심한 어느 날, 광화문 앞에서 손병희를 비롯해서 9명의 동학도 대표들이 수운 (최제우) 대선생의 억울한 죽음을 신원하고, 관리들의 동학도 탄압을 금지해 달라는 상소를 올리고 사흘 동안 읍소한다. 그러나 이들의 광화문 복합 상소는 실패로 돌아가고 동학도들은 관원들의 체포령을 피해 흩어진다. 그 후 보은에서 3만여 명의 교도들이 모여 척왜양창의 운동을 전개한다. 그리고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관리들의 학정을 징치하고자, 동학도들과 농민들이 전봉준의 지휘 하에 고부봉기를 일으키고 이어 무장기포를 통해 동학혁명을 전개한다. 전주성 입성과 전주화약 이후 집강소 통치를 하던 중 일본군이 개입하자, 해월 선생은 동학도의 총기포령을.. 더보기 비구름을 삼킨 하늘(1회) - 프롤로그 프롤로그 : 1891년 공주 분명 소녀다. 달빛에 비친 창백한 얼굴과 풀린 눈동자, 앞 저고리가 풀어 헤쳐져 봉긋하게 삐져나와 반쯤 들어난 작은 젖가슴, 겉치마 한쪽이 찢어졌는지 넘어질 듯 휘청거리며 걸을 때마다 치마사이로 뽀얀 허벅지가 허옇게 드러났다. 이유상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여자아이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소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유상이 사대부의 체통도 잊고 흐트러진 소녀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에게 놀라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다 그녀의 발길이 주저 없이 저수지 물속으로 향해 걸어가는 것을 불길하게 지켜봤다. 달빛에 흔들리는 소녀의 그림자가 위태로웠다. “위험해! 뭐 하는 짓이냐?” 잠시 후 저수지 물속으로 소녀의 발목이 잠겨 들어가자 이유상은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 더보기 동이의 꿈 - 프롤로그 기적을 이루는 시소게임-프롤로그 마음을 모아 올바른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은 기적을 이루는 일이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같은 울림을 이룬다는 것은 하늘이 하는 일이다. 동학소설 쓰기도 그렇게 기적처럼 이루어진 일이다. 세상의 낮은 존재에게도 하늘이 있다는 고귀한 사상이 혁명과 만나 동학혁명을 이룬 것처럼. 동료 선생님에게 최신판 백범일지를 받은 며칠 후 경주 용담정에서 첫 동학소설 워크숍이 있었다. 각자 자기가 쓸 지역을 정할 때 나는 새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열 여덟 살 나이에 동학에 입도한 백범의 고향 황해도를 선택했다. 그러나 유적지 탐방이 어렵고 연구 결과물이 있는 남쪽 지역과는 다르다는 것을 바로 자각하면서 가벼운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글을 쓰느라 지도를 자주 보.. 더보기 비구름을 삼킨 장미 - 연재를 시작하며 내 생애 최대의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며... 태어나서 제일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나 싶어요. 소설이라니. 그것도 역사 소설, 더군다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다큐소설에 도전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잠깐 제 정신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ㅎㅎ 저는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살고 있어요. 동학혁명 중 가장 치열한 싸움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백성들이 죽어갔던 우금티의 현장에서 10분 남짓한 곳에 살고 있지요. 이런 곳에 살고 있으니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숙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동학의 현장에서 살고 있다는 부채감이 있었어요. 그러다 동학언니들을 만나게 된거지요. 더구나 같이 시민활동하는 분 중에 동학의 현장을 직접 찾아 다니며 자료를 모으는 선생님이 계셨으니.. 더보기 섬진강은 흐른다 - 연재를 시작하며 지리산과 섬진강에 흐르는 동학의 꿈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 고향 광양에서도 동학으로 일어났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어요. 전 그걸 하나도 모르고 나이를 먹었어요. 우연히 인연이 닿아 동학 공부 모임에 갔어요. 그저 동학이 뭔지 좀 알아보고 싶었어요. 보는 책과 자료가 쌓이자 이 일을 우리 지역 사람들에게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대요. 동학혁명이 무엇이길래 한 집안 전체가 뛰어들어 부모 자식이 한꺼번에 죽은 것을 어느 집안 족보에서 확인했어요. 또 어떤 이는 군지에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족보에는 이름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어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남과 호남을 구분 짓는 섬진강에서, 백운산에서, 광양 읍내에서, 진상 섬거에서, 하동에서, 수곡당산에서 그리고 진주 .. 더보기 나오세요, 나와서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Q. 소설 쓰는 과정에 생긴 에피소드 A. (1) 갑오년에 동학군이 홍주성에서 패한 후 도망 가는 장면을 써야 했어요. 태안 문장로 수접주는 어디로 숨어들었을까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태안지도를 펼쳐놓고 세세히 살폈습니다. ‘나라면 이쪽으로 숨어들었겠구나’ 하고 글을 써나갔습니다. 완전 상상이었죠. 글을 다 쓰고 났는데 마침 문장로 아들 문병석 씨의 전기가 나왔습니다. 그 책을 본 저는 너무 소스라치게 놀랐죠. 제가 상상했던 두 장소가 하나는 문장로의 친가요, 다른 하나는 외가였습니다. 너무 섬뜩했죠. (2) 두 번째는 자료가 있었으면 하는 사안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작업 초반부에 박인호와 박덕칠 중 누가 나이를 더 먹었는지 알고 싶은데 자료가 없는 거예요. 그럴 때는 상상으로 써야 하죠. 어차피 자료.. 더보기 새롭게 알게 된 것과 나누고 싶은 것(인터뷰) Q. 동학과 혁명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A. 동학의 삶이 영적인 삶, 생태적 삶, 정치적 삶으로 세 분야에서 실천으로 이루어졌으면 21세기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삶은 이 세 요소가 필수적이며 이 세 요소를 조화를 이루며 실천해야 함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부터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제 스스로 먼저 행하고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권하고,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Q. 소설팀에 대한 소감은? (온냐들을 집단적으루^^) A. 순수한 뜻을 가지고 있으면 시간과 공간을 너머 누구나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은광순샘과 박맹수.. 더보기 동학과 혁명을 공부하면서...(인터뷰) Q. 동학과 혁명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동학의 동이 서에 대칭되는 동일뿐 아니라 빛, 광명, 생명을 뜻한다는 것. 해월이 38년을 도망 다니면서 조직사업을 한 것은 무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깨달음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이루려고 했다는 것. 동학에 입도한 사람들의 숫자는 인구 1/3~1/4가 될 정도로 엄청난 숫자였다는 것. 혁명 직전 그들은 2년여에 걸쳐 합법적 통로를 통해 정부에 하소연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것. 그러나 모두 무시당했다는 것. 남접과 북접이 대립관계에 있지 않았으며 4월 이후 충청권에서도 계속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 적과 싸우더라도 생명을 빼앗지는 말라는 등 동학농민군의 4대 명의, 12개조 기율에 대해서는 일본 지식인들조차 탄복했다는 것. 고부군수 조.. 더보기 이전 1 ··· 13 14 15 16 17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