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썸네일형 리스트형 비구름을 삼킨 하늘(3회) - 1장 1891년 공주(1) 1장 1891년 공주 도망치다시피 상엿집을 뛰쳐나온 동이는 뒤집어쓴 도포를 더욱 몸에 감쌌다. 달빛이 유난히 밝았다. 죽으려 물속에 들어간 순간부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고,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약조하라던 어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선비가 뛰어들었다. 어머니의 바람 때문일까? 동이는 어머니를 생각하자 물에 젖어 몸에 달라붙은 옷에 한기를 느꼈다. 그러자 다시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도포로 아무리 몸을 감싸도 떨림은 멈추지 않고 더욱더 심해졌다. 동이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죽지도 못하는 목숨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울면서 하던 말이 떠올랐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힘들단다. 동이야, 동이야. 눈물 젖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바..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2회) - 평생제자 김연국을 만나게 된 사연 (이필제의 난의 여파로 피신하면서 해월은 첫째 부인 손씨와 헤어져 서로의 소식을 알 수 없게 되고 둘째 부인 김씨와 살게 되는데...) 이곳 단양 도솔봉 아래 사는 날부터 연화는 예전의 모습을 다시 찾아갔다. 어린 동생들, 솔봉이와 윤이도 생겨났다. 이젠 스무 살의 과년한 처녀가 된 연화는 11살, 14살 터울의 솔봉과 윤에겐 어머니 같은 누이요 언니가 되었다. 김 씨도 연화와 둘이 살 때엔 이런 행복이 다시 오리라 생각지 못했다. 새로 만난 남편은 한없이 어질고 부지런했으며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점잖았다. 남편에게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묻고 말씀을 듣는 표정들은 더 없이 부드럽고 온화했다.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층 평화로운 미소가 감돌았다. 손님 뒤치다꺼리가 많아도 하나도 .. 더보기 피어라 꽃(3회) - 하조도 뱃사람 박중진 하조도 뱃사람 박중진 박중진은 손행권과 함께 영광 법성포로 향했다. 모아 놓은 건어물을 넘기고, 그물을 짤 면사와 칡줄도 사야 했다. 손행권은 진도 고군 임성포 사람이다. 박중진과 손행권의 아내는 해남 삼촌면에서 함께 자란 동무였다. 아내들이 동향인지라 그들도 서로 친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번 법성포행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박중진은 항상 법성포 박중양과 어물 거래를 하였다. 그는 영광, 무장 등지에 물건을 넘기는 객주였다. 박중진은 그의 집에서 일하는 김유복을 통해 그들이 동학도인인 줄을 알고 있었다. 박중진이 박중양에게 은밀히 동학에 대해 물었다. 박중진에게 띄엄띄엄 동학을 전하던 박중양은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박중진을 위해 태인 대접주 최경선을 한 번 모셔오겠노라고 했다. 들물을 따.. 더보기 비구름을 삼킨 하늘(2회) - 프롤로그(2) 프롤로그(전회에 이어 계속)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그녀의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럽고 고집스러웠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은 작은 점 하나 없이 투명했고 울어서 부은 눈과 선이 고은 콧날은 단아하고 고왔다. 그러나 소녀의 입매는 고집스럽게 꾹 다물어졌으나 가끔씩 초조한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서영이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니 열여섯 일곱 가량 되겠구나.’ 이유상은 소녀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정혼자였던 서영을 생각했다. 서영을 떠올리자 스스로 목숨을 끓으려는 소녀에게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산목숨을 끊으려 하다니, 도대체...” 유상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다 말고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다물었다. 소녀가 고집스럽게 아래쪽으로 내리 깔았던 눈을 들어 이유상을 쏘아보는.. 더보기 내포에 부는 바람(2회) - 곰방대를 적시는 여름날의 소나기 2장 곰방대를 적시는 여름날의 소나기 1. 이창구는 순섬이와의 혼사가 깨진 후 바로 연산에 사는 도씨 규수와 혼인을 했다. 벌써 14년 전의 일이다. 결혼 이듬해에 낳은 아들 찬고가 커서 그의 일을 도왔다. 그동안 그는 포목점과 대부업을 통해 큰돈을 벌었다. 사람들은 그가 재산을 늘리는 능력만큼은 타고났다고 했다. 그의 포목점이 사람들로 들끓게 된 데는 연유가 있었다. 그는 무명 열 필을 사면 한 필을 덤으로 주었다. 당장의 이문을 적게 보는 대신 많이 팔게 되니 결국은 나날이 장사 규모가 커지고 버는 돈이 많아졌다. 대부업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사채의 이자는 5할 장리로, 춘궁기에 쌀 한 말을 꾸어 가서 가을에 돌려줄 때는 한 말 반을 갚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2할 단리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나락이.. 더보기 동이의 꿈(2회) - 유배지(2) 그러나 용담 계곡의 그 장관은 오래가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주문을 왼다, 천제를 지낸다, 검무를 춘다 하는 소문이 퍼져 나가자 경주 관아에서 관인을 보내 사람을 모아들이고, 가르치는 일을 일절 중지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섣달을 며칠 앞두고, 수운은 조용히 행장을 꾸려 애제자 중희만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백사길은 간 곳을 모르는 스승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집에서 주문 공부에 정성을 기울였다. 가끔씩 인편에 가르침을 담은 가사를 전해 오는 것으로 스승이 강건하심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해가 바뀌어 봄이 오고, 여름이 한창에 접어들었을 때 홀연히 스승이 대추나무 골 백사길의 집에 나타났다. 스승은 당신이 머무는 것을 일체 입 밖에 내지 말도록 당부하고 백사길은 그 말에 따랐다. .. 더보기 깊은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2회) - 갑오년의 아침(2) 이인한은 마굿간에서 말을 꺼내 타고 부리나케 이웃마을 송천리로 달렸다. 멀리 정동진의 널따란 바다를 내다보고 있는 송촌리 앞뜰에는 차례를 마친 동네사람들이 풍물을 울려댔다. 날카로운 쇳소리와 자잘한 장구 장단이 재롱을 떠는 태평소의 늘어진 자락이 섞이어 설날 아침의 풍류를 자아냈다. 장흥에서 제일 처음 도인이 된 이순홍이 마을 앞 정자에서 이인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로 이어지는 널따란 들판에서 갯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이순홍의 긴 수염이 날렸다. “나와 계셨군요. 어르신 문안 드리옵니다.” 이인한은 해묵은 느티나무 여남은 그루가 푸짐한 잔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제각 옆에 말을 묶고 정자로 올라가 큰 절을 올렸다. 이순홍도 맞절을 했다. “새해에는 무탈하고 도인들을 더욱 넓혀 가도록 합시다.” 이순홍.. 더보기 섬진강은 흐른다(1회) - 유이혜경 광양의 엄마 집으로 돌아온 숙정은 며칠간 아무 일도 안 하고 잠만 잤다. 엄마는 숙정의 몸이 안 좋아 보인다고 날마다 특별한 건강식을 만들어 먹이려고 하셨다. 집에 더 있자 해도 엄마에게 못할 일이었다. 한국에 아는 친구들은 몇 없고 그나마 그 친구들도 다 가정을 꾸리고 있어 마땅히 기댈 언덕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한 친구가 숙정에게 권했다. “한겨레 휴센터라는 게 생겼는데, 거기 프로그램이 좋아. 이번 여름에는 공주 마곡사에서 한다더라. 프로그램에 참가해 본 사람들이 좋다고 추천하던데 거기 한번 가 봐. 말 그대로 힐링이 된다던데….” 2013년 8월 초 가장 무더운 여름날 숙정은 3박 4일을 마곡사에 있었다. 그리고 명상 프로그램을 따라 하면서 가슴 답답함이 조금 가시는 듯하였다. 도인 체조도 좋았.. 더보기 은월이(2회) - 자주의 깃발은 함성이 되어(2) 은월이 -자주 깃발은 함성이 되어 “영--영--옥--아!” 함성소리에 깜짝 놀란 은월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형제바위에 김석진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포대를 감싸 안은 채 김석진은 다시 고함을 질렀다. 그의 목소리는 병풍에 둘러싸인 석바위 하나하나마다 부딪쳐 튕겨져 오르며 소용돌이 쳤다. 은월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허공으로 손을 내밀어 김석진을 잡아 보려고 했다. 소용없었다. 김석진의 우렁찬 소리는 다시 소용돌이처럼 은월이의 온몸을 감쌌다. “이놈들 듣거라. 이 땅은 수천 년 얼이 새겨진 곳이다. 감히, 왜놈들이 들어올 땅이 아니다!” 은월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 어디선가 함성소리가 북소리에 실려 들려왔다. “와-와-. ” 김석진의 외침은 계속되었다. “내가 죽어도 개벽은 영원하다!” .. 더보기 은월이(1회) - 자주의 깃발은 함성이 되어 갑신년(1894) 입춘 (음1월30일/양2월4일) 강경 포구는 하루 종일 배와 상인들로 북적여서 길바닥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노랑나비가 새겨진 자주색 깃발이 휘날리는 배의 수를 세던 금객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한손에 장부를 움켜쥐고, 포구를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시끌시끌한 포구의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야트막한 등성이에 올라서자 아스라이 펼쳐진 염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둑판처럼 가지런한 염전 한가운데쯤에 은월이가 보였다. 은월이는 소매를 걷어부치고, 치마도 동여맨채 소금을 자루에 담고 있었다. 금객주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은월접장!” 은월이는 금객주가 온 줄도 모르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소금을 담고 있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뭐하고 있습니까? 화창한 봄날에....” “비가 올.. 더보기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