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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꿈이 있더냐(5회) 벅차 오르는 희망, 동학의 뜻은 넓게넓게 퍼져라 “우리 도인 중에 유선이 어머니라고 계십니다. 남편은 제물포로 떠난 지 몇 해 됐는데 지난해 다녀간 뒤로 올 초부터는 소식이 끊겼답니다. 아이는 갓 돌을 지난 계집아이와 네 살, 일곱 살 사내아이까지 셋입니다. 아이를 낳았는데 먹을 게 없어 젖이 안 나오니까 우리 도인들이 십시일반 조금씩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봄 동학에 입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가 세상을 뜰 것 같습니다. 의원 말이 이레를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데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희 어머니에게 그 유선이 어머니가 이걸 주셨습니다.” 칠성이가 가슴팍에서 명주천을 꺼내들더니, 손바닥위에 펼쳐보였다. 거기엔 하얀 버선 두 짝이 놓여있었다. 칠성은 둥그렇게 둘러앉은 방 가운데 버선.. 더보기
깊은 강은 소리없이 흐르고(6회) - 동백 숲에 흐르는 도인의 꿈(3) 덕도 앞 바다에 보름달이 떠올랐다. 수평선으로 떠오르는 정월 대보름달이 천천히 떠오르자 수면 위로 은빛 물결이 찬란하게 펼쳐졌다. 이인한은 윤접주의 마당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포구에서 왁자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인한은 골목을 살폈다. 이제 곧 앞 섬에서 입도식을 치르러 도인들이 올 터였다. 그런데 윤범식이 아들 성도와 마루에서 뛰어 나와서 포구를 내려다 보았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짚이는 게 있는데 내려가 보십시다.” 윤범식이 먼저 골목길을 내다르며 이인한에게 길을 터주었다. 성도가 이인한과 윤범식의 사이로 파고 들며 속삭였다. 밤바람이 돌담사이로 스치며 성도의 말을 가르고 있었다. “오늘 밤에 나타난 수졸들은 메두기타작을 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었어요.” 윤범식은 뒤로 쳐지며 성도의 뒤.. 더보기
경상도 동학(2회) - 정나구, 양반과 손을 잡고 거사를 준비하다. (처자식을 멀리 피난시킨 정나구는 본격적인 거사준비를 시작하는데, 장터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정나구는 정신이 오락가락하였지만 한 가지 생각은 버릴 수가 없었다. ‘도치하고 도치 오마이는 어데 깊은 데 산속에 드가서 죽음을 피해야 되여. 나는 죽어도 괘않치마 식구들은 살리야지.’ 정나구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창고에 보관해 놓은 씨앗들을 꺼내서 도치에게 짐을 지워 주었다. 그리고 남은 보리쌀 두어 되를 보따리에서 싸서 아내에게 지워주고 마을을 떠나라고 했다. 부부는 이렇게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만나기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메어졌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우리 식구 셋이 함께 사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듭니까. 어찌 우리 식구들을 이리 갈라놓습니까. 그러나 마냥 한탄만 하고 있을 수가 없.. 더보기
작품 [님, 모심] - 6회 장일순, 지학순 주교를 만나다 장일순, 지학순 주교를 만나다 어느 날 장일순의 봉산동 집으로 한 신부가 찾아왔다. 지학순(池學淳) 주교라고 했다. “함께 일할 신도를 찾았더니 누가 ‘저기 빨갱이로 몰려서 농사짓고 있는 사람 있으니 만나 봐라.’ 해서 왔습니다.” 지학순 주교는 장일순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사람의 목소리가 장일순의 가슴에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저는 로마 교황청에서 주교로 임명받아 원주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교황님의 뜻을 함께 실천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주교는 좀 더 진지하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저는 그럴 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장일순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꿈은 종교적인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진지.. 더보기
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5회) - 상놈으로 태어난 죄 하지만 아내가 잠든 후에도 손병희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대의의 길에 나서는 것으로 자신이 겪은 설움 따위쯤은 떨쳐 낼 수 있었지만, 막상 고향집에서 바라보이는 세상은 아직도 컴컴한 한밤중이었다. 어머니 최씨는 청주목 아전 출신 손의조의 첩실이었고, 따라서 손병희는 서출이었다. 그는 철이 들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님을 형님으로 부르지 못하며 벼슬길에 나갈 수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중 제사에 자신은 온전히 절도 할 수 없었다. 더욱이 아전은 중인 계급. 성인이 되어 벼슬길에 나선대도 서울에서 내려온 벼슬아치들의 손발이 되어 갖은 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못할 짓이란 백성의 고혈을 빼먹자고 덤비는 관리들의 앞잡이가 되어 고향.. 더보기
비구름을 삼킨 하늘(5회) - 1장 1891년 공주(3) 1장 1891년 공주 (전회에 이어서) 부인이 이불을 동이의 어깨까지 올려 덮으며 다독였다. “오늘은 뭘 좀 먹었습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주인어른의 목소리가 동이의 등 뒤에서 들렸다. 부인이 깊은 한숨을 내 쉬자 동이의 얼어붙었던 가슴에 조그만 균열이 생겼다. “어서 기운을 차려서 뭘 좀 먹어야 할 텐데.” “곧 일어날 겁니다.” 두 사람의 조심스러운 말소리에 확신이 묻어났다. “손님들은 가셨습니까? 상황이 좋지 않아서 인사도 못 드렸네요.” “안에서 소란스러웠겠군요. 이 아이가 놀라지 않았는지 걱정이네요.” 둘은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해월 선생께 그리 호되게 꾸지람을 들으셨는데도 아직 미련을 못 버리니…. 영감이 난처 하셨겠어요.” “태인의 접장들이 저렇게 강경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해월 선..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5회) - 어머니, 큰어머니, 새어머니 (열 살이 된 윤이 아버지 해월의 첫 부인 손씨를 만나는 장면) 2. 어머니, 큰어머니, 새어머니 (1886~ ) -큰어머니 손씨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라니? 아이들은 눈이 둥그레져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방으로 올라선 김 씨가 손 씨에게 큰절을 하자 손 씨는 맞절을 했다. 손 씨는 수시로 쿨럭거리며 타구에 가래를 뱉는 것이 건강이 안 좋은 듯했다. 아이들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고, 오랜만에 만난 두 여인네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래, 어린 것들 데리고 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은가?” “저야 힘들기는 해도 아이들이랑 사느라고 적적할 틈도 없지요. 형님은 혼자 얼마나 적적하시겠어요? 몸도 불편하신데. 제가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게 자네 .. 더보기
섬진강은 흐른다(4회) - 2장 광양민란 2장 광양민란(1889년) 의형제를 맺은 양계환과 유석훈은 금세 십년지기 친구가 됐다. 의형제라서가 아니라, 어쩐 일인지 속생각까지 찰떡궁합이었다. 그 합으로 세상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았다. 추수가 끝난 어느 날 계환은 석훈의 집을 찾았다. 그날따라 석훈은 유독 반가워하며 계환의 손을 잡아 방으로 끌었다. 방에는 낯모르는 젊은이가 있었다. 젊은이는 단단해 보였다. 계환이 들어서자마자 눈을 빛내며 수인사를 건넸다. “반갑소. 지는 조두환이요.” 엉겁결에 수인사를 받으면서 양계환도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석훈 쪽을 살폈다. 눈길이 마주친 석훈은 웃으면서 청년을 소개했다. “계환이, 이 친구는 여그 봉강 사는 조두환이구마. 좋은 친군게 잘 사귀어 보소.” 그때서야 계환이도 얼굴 표정이 누그러지며 말을.. 더보기
동이의 꿈(5회) - 홍경래의 난(2) “운보 아버지, 차라리 우리도 정주성에 들어갑시다. 봉기군은 관군처럼 사람을 마구 죽이지는 않는다고 합디다. 여기서 이러다가 우리 운보에게 험한 꼴 보이겠소.”한참을 울며 통곡을 하던 운보 어머니는 망설이는 남편에게 매달렸다. 하나 남은 자식 운보를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고 싶었다. “성안에 쫒겨 들어가 어찌 겨울을 보내겠는가, 차라리 다른 곳으로 피하는 게 낫지 않겠어?” “아이고 운보 아버지, 지금 저게 눈에 보이지 않소? 어째 살아있는 목숨을 통째로 버리려 합니까?” “차라리 남쪽으로 도망가는 게 그래도 낫지 않겠나?” 내외는 운보를 끌어안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산으로 도망 온 동네 사람에게 마을이 물샐 틈 없이 포위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관군에 .. 더보기
피어라 꽃(5회) - 칠산바다 닻배 조기잡이 오늘은 박중진의 닻배 출어일이다. 한식날 지나 여섯물이었다. 한식날에 맞추어 떠나면 망종살까지 두 달여간 배에서 살며 조기를 잡았다. 날씨가 청명하면서도 바람이 적당히 불어 포구에 나온 사람들마다 얼굴이 환했다. 닻을 촘촘히 매단 닻그물부터 배에 실었다. 박중진의 아내가 겨우내 들기름을 먹인 면사로 짠 그물이었다. 그물 윗벼릿줄은 짚으로, 아래 벼리는 칡줄을 꼬아 만들었다. 선원은 선주 박중진을 포함해서 열네 명이었다. 선원 중에는 고군면 손행권 부자도 끼어 있었다. 각자 두 달 간 먹을 식량과 김치, 껴입을 옷에 우장, 앞치마, 손토시를 챙기니 짐이 커져 둥둥하니 한 짐씩 짊어지고 배에 올랐다. 배는 돛이 팽팽해져서 굽을 치는 말처럼 곧 달려 나갈 태세였다. 울긋불긋 깃발들도 바람을 가득 안고 부풀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