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썸네일형 리스트형 섬진강은 흐른다(7회) - 5장 봄날 5장 봄날 뜻이 통한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라도 석훈은 임봉춘의 집을 찾았지만 구례까지 친구 집을 쥐방구리 드나들 듯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석훈은 봉춘의 집에 드나들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갸름한 얼굴에 입술이 붉은 서엽이 때문이었다. 봉춘이 동생 임서엽이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봉강에서 달덕이재를 넘어 구례까지 산길을 달리고 섬진강을 건너는 나룻배에 몸을 실었다. 성불사를 지나 백운산 줄기로 이어진 높은 산을 넘을 때도 힘든 줄 모르고 달음박질로 산을 탔다. 그런데 봉춘의 집에 자주 들르는 사람은 자기만이 아니었다. 친구들도 은근히 자주 왔다. 석훈이 다섯 번 오면 계환과 두환이 중에 누군가를 한 번은 마주쳤다. 친구들은 봉춘과 시간을 보내면서 동학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서엽이 한 번씩 들러 새.. 더보기 동이의 꿈 (8회) - 백두산 이야기(2) “새로운 시대, 더 나은 세상이 온다는 말처럼 힘이 나는 말이 있을까요?” 달포 뒤에 수연이 동학 도인이 되겠다고 백사길을 찾아왔다. 화사하게 핀 봄꽃들이 바람에 하늘하늘 날리는 날 맑은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입도식을 했다. 정갈하고 소박한 입도식이었다. 심고를 올리고 주문을 외우는 중에 정성껏 떠 놓은 청수의 한쪽이 힘 있게 빙글 돌더니 그릇에서 넘쳤다. 수연은 그것이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백사길은 몇 년 전 자신의 입도식이 생각나 수연에게 들려주었다. 백사길은 용담정에서 친구 수암과 입도식을 했다. 다섯 명이 입도하고 물러나온 자리에서 한 마디씩 소감을 말하였다. 수암이 결연한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우리 다섯 명은 이제 하늘을 모시고 스승님의 도학을 함께 공부하는 수행의 형제가 되었네. 어두.. 더보기 꿈이 있더냐(7회) 벅차오르는 희망, 동학의 뜻은 넓게넓게 퍼져라 “사람들이 많대요. 다들 좋아라 하고…. 이 겨울이 지나면 동경대전이 나온다 하대요.” 윤지가 머리를 기댄 채, 얘기했다. “난 동경대전보다, 우리 혼인이 더 좋다. 동경대전 나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혼인했으면 좋겠다.” 칠성이는 윤지를 옆눈으로 보며 얘기했다. 윤지는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린 동생들과 아버지 때문에 혼사를 미뤄 왔다. 기다려 주는 칠성이가 고맙기도 하지만, 식구들 생각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미안하오, 오라버니….고맙소.” 윤지는 오늘도 같은 말을 할 뿐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칠성이가 겨드랑이에서 윤지의 손을 빼더니 자신의 무릎 위로 천천히 윤지를 눕혔다. 윤지는 칠성이를 기다리는 듯 살포시 눈을 감았다. 칠성이와 윤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칠성이의 손길.. 더보기 내포에 부는 바람(8회) - 첫 접촉 4장. 첫 접촉 1. 틀못 삼일장이 열렸다. 이창구는 공주 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운 것이 도씨 부인에게 못내 미안해 이른 아침부터 포목점에 나와 물건을 정리했다. 도씨 부인은 동학이라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늘 따라 유난히도 비단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비단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여인들은 포목전에 들어서면 비단부터 만졌다. 그들은 비단이 부드러워서 좋다고 했다. 비단처럼 삶이 유연할 수 있다면! 지난 공주 모임에서 손천민은 유연했던 반면 본인은 고집스러웠다. 자신의 외길주의를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이창구는 이 비단 저 비단을 만져 보았다. 비단이란 자고로 걸림이 없었다. 걸림이 없는 삶이라! 그는 혼잣말을 하면서 자신의 손길을 연둣빛 비단과 꽃분홍 비단으로 옮겼다. 연둣빛 저고리에 꽃분홍 치.. 더보기 깊은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8회) - 동백숲에 흐르는 도인의 꿈 이소사 내외가 솔섬으로 떠난 후 덕도에는 회오리 바람이 불었다. 이소사에게 걷어 채인 수졸이 병사를 이끌고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김양문과 이소사가 이미 도피했다는 것을 알고 김양문을 아버지를 잡아 갔다. 그리고 김양문이 있는 곳을 대라고 혹독하게 매질을 했다. 쉰 살이 넘은 김양문의 아버지는 수졸들의 매질에 못 이겨서 산 송장이 되어 종에 등에 업혀 왔다. 덕도 사람들은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 모두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한밤중에 살금살금 장독에 특효라는 똥물을 거두어서 김양문의 집 앞 대문가에 두고 가곤 했다. 이소사의 시어머니는 다 죽어가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 타들어가는 입술에 맑은 똥물을 흘러 넣어 주었다. 그리고 잠시도 쉬지 않고 치자를 밀가루에 개서 장독이 난 허벅지에 .. 더보기 은월이(11회) -<소만> 싸움의 절반 후방준비를 다그치며 소만 (음4월중순, 양5.21경) 보리가마니들이 강경포에 가득했다. 은월은 강경포구를 거닐다가 보리가마니 앞에 섰다. 보리가마니를 세고 있던 상인이 은월이를 보자 반갑게 뛰어왔다. “은월 접장 오셨습니까?” 은월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보리가마니를 바라봤다. 상인은 걱정스런 말투로 말을 했다. “쬐다 군산으로 갈 것들입니다. 왜놈들 배만 터지게 생겼으니…. 답답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우리 같은 장사치들이야 돈만 벌면 되지 않겠습니까?” 상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은월한테 바짝 붙었다. “왜놈들이 사재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전쟁이라도 할 심산 아니라면….” “왜놈들이야 워낙 근본이 없어서요. 겉만 사람이지 야수와 같은 것들이지요. 그러니 체면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있을까 싶습니다.” 속시원하게 말하는 은.. 더보기 은월이(10회) -<춘분> 금산기포로 김석진이 궁지에 몰리다 춘분 (음3.20) 은월당 안마당에서는 아낙들이 장독을 씻고 있었다. 장 담그기 좋은 날에 사람들이 모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장 담기 좋다는 춘분에 사람들이 알아서 모여 몇 일째 장을 담갔다. 너른 뒷마당이 꽉 찼다. 달구지에 장독을 싣고 온 금객주 휘하의 상인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했다. 전주댁이 큰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다들 새참은 먹어야지.” 일손을 놓고 그때서야 비로소 허리를 펴며, 아낙들은 전주댁을 바라보았다. 전주댁은 국수틀 손잡이를 누르면서 환히 웃고 있었다. 영옥은 국수틀에서 쏟아지는 국수를 끊는 물에 받아 익혀가지고 찬물로 옮겨 식히는 일을 하면서 해맑게 웃었다. 전주댁과 영옥의 모습을 본 은월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낙들은 개다리소반에 국수를 먹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더보기 은월이(9회)-<3월12일> 충의깃발을 들고 금산으로 갑신년 3월 12일. 드디어, 때가 왔다. 은월당 마당에는 백여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들었다. 김석진과 영옥이가 충의라고 새겨진 깃발을 대나무에 묶었다. 대나무에 매달려 파란 하늘 속으로 솟구쳐 올라가는 깃발을 바라보다. 얼굴을 돌려 김석진을 향해 영옥은 방긋 웃었고, 김석진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바람을 받는 깃발의 힘을 지탱하느라 기우뚱대는 대나무를 김석진이 힘껏 잡아 쥐자 깃발이 하늘에서 휘날리게 힘차게 나부끼었다. “와-와-!” 함성이 힘차게 터져 나왔다. 하늘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바라보던, 은월이와 영옥이는 가슴이 터지듯 했다. 김석진이 깃발을 오른손으로 잡고, 무리를 향해 큰 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동도 여러분!” “예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제원역으로 갈 것입니다... 더보기 은월이(8회) - 불난 집을 보고도 그냥 못 본 척 하자는 겁니까? 득달같이 달려온 의원에게 윤지영을 맡기고 은월은 방에서 물러나왔다. 잠시 후 은월은 박영채가 내어준 옷을 입고, 박영채와 마주앉았다. 박영채는 차를 건네며 말했다. “윤지영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더 이상 인연을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무슨 말인지요?” “지난 회합 때에도 은월 접장이 추천해서 참여시켰지만 접내에서 말이 많습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박영채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은월 접장이 추천한 거 아닙니까?” “젊은 도인들이 뜻을 모아 추천한 것을, 무슨 연고로 제가 한 일이라고 넘겨짚어 말씀하십니까?” “젊은 도인들이 만든 충의가 바로 은월 접장이 뒤를 봐주고 있으니 은월 접장이 추천한 거지요.” “박 접장도 참 딱하십니다. 그리 억지를 부리다니 말입니다.”.. 더보기 경상도편(4회)-잠시지만 해방세상을 맛보고... (정나구등 농민들은 일시적으로 관아를 점령하지만...) “우리는 지난 장날 이후로 기대를 마이 하고 있어. 뭔가 이뤄질 듯한 분위기를 느끼지 않았나. 그래서 한판 씨기 붙고 나서 우리들에게 돌아올 이익을 생각하매 희망에 들떠 있재. 그런데 우리들 희망이 불씨를 댕기기도 전에 꺼지게 되가 서그푸고 다른 사람들도 아마 화를 낼거라. 성난 농민들이 무슨 행동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여.” 오복은 말을 마치고 물기 어린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정나구도 고개를 끄덕이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이 일에 손을 댔응께 먼가 지대로 결판을 내야지. 아직 희망은 있어. 우리가 우째 나오는 가에 따라서 일이 달라질거라.” 정나구는 말을 하면서 다음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대로 갔다가는 농.. 더보기 이전 1 ··· 4 5 6 7 8 9 10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