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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품 [님, 모심] - 8회 영해 교조신원운동 (김현옥) ◾1871년 해월 최시형 선생과 동학교도 등 수백 명이 거사를 위해 모였던 영해부 서면 우정동 (현재의 영덕군 창수면 신기2리 형제봉 아래) 병풍바위. ◾대동여지도 상의 영해부 지도-영해동학군의 진입과 퇴각로. 붉게 둥근 표시된 곳이 형제봉이다. 2. 벼랑 끝에서 영해 교조신원운동이 끝나고 (1871~) 해월 최시형, 강수, 이필제, 김낙균 등 영해 교조신원운동을 일으킨 주모자들은 살아남은 도인들과 함께 영해부에서 용화동 일월산 아래 윗대치를 거쳐 봉화군 춘양면 각화산으로 숨어들었다. 해월 일행은 숲 속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나무가 울창하여 어둡고 음침했다. 여염 사람이 쉽게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두 말이 없었다. 신발도 꿰신지 못할 정도로 급하게 피해온 길이다. 수운 최제우 동학 교조가 .. 더보기
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7회) - 도(道)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다 해월 선생은 깡마른 체격에 흰 무명옷을 입은 보통 중늙은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눈빛이 맑고 형형하게 빛나서, 한눈에 도인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듣던 대로 방 한쪽 귀퉁이에는 언제든 일할 수 있는 모습으로 노끈 더미와 재료가 쌓여 있었다. 그때 마침 손병희는 평소 입지 못하던 비단 옷에 한껏 격식을 갖추느라 성장을 하고 있었다. 외양과 체면을 중시하는 그의 성격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스승을 뵙는 자리이니 예를 갖춘 것이기도 했다. 명주 바지저고리에 명주 중의를 입고, 통영 새 갓을 머리에 썼는데 호박풍잠에 은동곳을 꽂아 한껏 멋을 냈다. 그 모습을 보고, 해월을 모시고 있던 도인들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이내 혀를 찼다. 검소와 근면을 강조하는 해월의 가르침과는 한참 거리가 먼 차림이었.. 더보기
비구름을 삼킨 하늘(7회) - 1장 1891년 공주(5) 1장 1891년 공주 (전회에 이어서) 선생님이라 불린 어른의 말씀이 이어졌다. “죽음도 삼라만상의 이치에 따라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므로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지만, 아직 어린 의령이를 잃고 저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두 분이야 오죽할까요? 그러나 자신의 핏줄만 소중한 것은 아니지요. 핏줄을 앞세우고 가문만을 내세운 지금의 세상이 어찌 되었습니까? 수운 대선생께서는 집에서 부리는 노비 두 명을 면천하여 한 사람은 며느리로 삼고, 한 사람은 여식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동학을 한다는 것이지요. 백정 출신 남계천 대접주나 덕망 있는 윤상오 대접주나 여기 사지에 갔다가 돌아온 이 아이나 모두 같은 하늘님입니다. 만인이 평등한 세상, 이것이 동학을 행하는 마음입니다.” 나직한 목소리가 마음을 끌었다. 동이는 ..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7회)- 큰어머니의 죽음과 새어머니의 등장 (윤과 새어머니 손씨/ 심상훈은 어떤 인물인지 유의해보세요.) 윤은 손 씨 큰어머니에게 괜스레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들어 젊은 어머니가 오게 될 모양이라는 걱정의 뜻을 비추어보았으나 이미 쇠잔할 대로 쇠잔해진 큰어머니는 다만 감사할 뿐이라며 윤이 어른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면 다행한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새어머니는 젊고 시원시원했다. 손 소사가 큰댁을 어머니처럼, 윤을 동생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고 집안 살림을 규모 있게 꾸려내는 것을 보고 주변사람들은 모두 한 걱정을 덜게 되었다. 윤이는 집안일을 도우며 짬짬이 다시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언문으로 된 책은 쉽게 읽고 쓸 수 있어서 집을 드나드는 아저씨들에게 책을 구해 달라 부탁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저녁에는 언니 같은 손 소사에게 이런.. 더보기
섬진강은 흐른다(6회) - 4장 개벽운수 4장 개벽운수(開闢運數) 동학 공부를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양계환은 동학 공부 모임이 구례에서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구례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봄바람은 가지 끝에 잔설처럼 남은 매화 꽃잎을 날려 행인들의 코끝을 간질였다. 산에는 흐드러지게 핀 왕벚꽃이 온통 세상을 환하게 만들었다. 청년들은 별 일이 없어도 가슴이 설렜다. 해가 중천에 닿으려면 아직 시각이 좀 남았는가 싶은데 구례 임정연의 집에는 젊은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흔 아홉 칸은 아니어도 그 근동에서 제법 크고 넓은 집이건만 청년들 여남은 명이 들어서자 집이 꽉 찬 듯했다. 그 집 아들 임봉춘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손님을 맞이했다. 광양의 양계환, 유석훈, 조두환, 서윤약, 한군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 더보기
동이의 꿈(7회) - 백두산 이야기(1) 3장 백두산 이야기 병인년(1866년)이 되었다. 백사길이 경주를 떠나 온 지도 거의 두 해. 그가 머무는 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민란을 주도하기 위해 은밀히 거사를 문의하는 사람도 있었고 돈벌 궁리를 하여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백사길은 물이 흐르듯 변함없는 표정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맞았다. 준기에게 침놓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부터였다. 말귀가 밝은 준기가 가르쳐주는 대로 제법 잘 하게 되었을 때 백사길은 자신의 몸에 침을 놓게 하였다. 행여 준기가 자신의 재기만 믿고 자만할까 보아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눈물을 쏙 뺄 만큼 혼쭐을 내는 일도 있었다. “정신을 어디에 놓고 있는 것이냐!. 순간의 판단이 목숨을 가르게 되는 것이다. 항상 아무 것도 모르는 무의 상태라고 생.. 더보기
내포에 부는 바람(7회) - 공주취회 3장. 공주 취회 1. 이창구가 상주에 다녀온 지 두 달여가 지난 10월 17일, 해월은 마침내 충청감영에 의송(소장)을 내기로 결정했다. 서인주를 비롯한 대접주들의 권유가 있은 이후에도 전국 곳곳에서 관의 탄압에 시달리는 도인들의 호소가 대도소로 빗발쳤다. 또 원평과 장내리 일대에는 관의 약탈에 집과 전답을 빼앗긴 동학도들이 하나둘씩 모여 들어 이미 동학촌이 되어 가고, 그에 따라 관의 감시의 눈길도 심해지고 있었다. 언제 다시 장내리 대도소가 관의 기습을 받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가시방석과도 같은 도의 형편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자면 대선생의 신원이 유일한 길이었다. 해월 선생의 통문이 내포 접에도 당도하였다. 각 접별로 덕이 있고 신의가 있고 사리를 아는 대표를 뽑아 사흘 뒤 의관을 정제하고 청주를 .. 더보기
깊은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7회) - 동백숲에 흐르는 도인의 꿈(4) 솔섬에는 봄이 오고 있었다. 며칠간 망을 보느라 바위 굴에 숨어 있었던 이소사와 남편은 바다에서 별 기척이 없자 아침 저녁으로 슬슬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의 바다에 배가 한 척도 뜨지 않는 날이 되면 두 사람은 양지바른 곳을 찾아 오래도록 심고를 드렸다. 바위틈으로 비쭉이 쑥이 새싹을 내밀고 바람도 매운 기색이 가시고 살갗에 닿는 감촉이 좋았다. “어디 멀리 떠나야 하지 않겠소? 관졸들이 우릴 잡으려고 한다면 이곳이야 금방 눈에 띄는 곳이오. 마을 사람들이 알려주기만 하면 우리는 그냥 발각이 되고 말 것이오.” 김양문은 이소사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벌써 며칠째 같은 질문을 해대도 이소사는 쉽게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정하게 쪽을 진 머리에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꼭 닫힌 입술로 생각에 젖어 있기만 .. 더보기
경상도 동학(3회) -성난 농민들, 부사는 도망가고 협상 나온 관리는 뺀질거리고 (생존을 위협받는 농민들은 돌멩이를 들고 일어서지만...) 3. 타오르는 불 드디어 다음 장날이 되었다. 감나무 아래로 모여든 농민의 수는 백여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정나구는 징을 치며 사람들을 모았다. 징소리는 봄날 장터를 울리며 긴 여운으로 사람들이 가슴 속으로 퍼져 나갔다. 감나무 여린 새싹이 한들거리며 바람에 날리고 하늘은 파랬다. 정나구가 치는 징소리는 이제 막 나온 약초들을 들고 혹은 봄나물을 들고, 갓 자란 채소들을 들고 나온 장꾼들을 울렁거리게 했다.지이잉 지이잉 징소리가 퍼져 나가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관아로 갑시대이. 세금 때문에 살 수가 없으니 관아로 가서 부사를 만나가지고 조정을 하도록 합시대이.” 누군가 걸.. 더보기
피어라 꽃(7회) - 걷고 또 걷어가는 어세 모내기를 얼추 마무리한 후 하조도 선원들 일곱 명과 손행권 부자가 박중진의 집으로 모였다. 날이 부쩍 더워져서 방안에 들어앉기도 갑갑하여 마당 가 감나무 아래 놓인 평상에 둘러앉았다. 박중진이 칡넝쿨을 째서 단단하게 엮은 두툼한 책을 가져왔다. 십 년째 이어 쓰는 치부책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총 야닯 동을 잡었어라우. 일곱 동을 한 마리에 두 푼 썩 받고 넘겠단 말이요. 일곱 동에 천사백 냥을 받었소야. 한 동은 우리 열다섯 맹이 세 두름썩 받었고, 남은 다섯 두름은 내가 진상품으로 바쳤고라이. 다들 애썼소.” 둘러앉은 사람들은 다들 머릿속으로 자신이 얼마를 받을 지 셈해 보느라 바빴다. “배랑 선주가 세 짓인게 사백이십 냥을 제하고, 나머지 구백팔십 냥을 열네 맹이 나누믄 한 사람 당 칠십 냥이 나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