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썸네일형 리스트형 피어라 꽃(8회) - 왜선을 몰아내다 옆집에서 옥동댁 시어머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옥동양반이 재작년 겨울에 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뒤 눈물이 마를 새 없던 노인네였다. 옥동양반은 배와 함께 수장되어 버렸는데 그 배에 대한 세금이 작년에 또 나왔다. 사망 신고하고 배도 잃어버렸다고 했지만 아전들이 서류를 고치지 않은 것이다. “선세 받어 갈라믄 내 아들 내놓고 받어 가그라아.” 노인네가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울부짖었다. 지난해에 세금을 받아 가던 아전들은 이번 세금은 이미 나온 것이라 어쩔 수 없으니 올해에만 내면 내년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약조하였다. 돌아가는 즉시 서류에서 배를 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옥동양반의 선세는 올해에도 나왔다. 달라진 것은 선세를 받으러 온 아전이 바뀐 것뿐이었다. 올해에도 하는 말은 똑같았다.. 더보기 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6회) - 상놈으로 태어난 죄(2) 그 며칠 후, 손병희는 이웃마을 친구 서우순 집에 들렀다. “이리 오너라.” 문을 열어준 것은 여종 말순이었다. 그런데 말순의 행동거지가 영 달라져 있었다. 땟국물 질질 흐르고 다 떨어진 치마저고리 대신 말쑥한 여염집 처자 행색을 하고 있고, 말씨도 굽신거림 대신 어딘가 모르게 당당하고 품위가 생겨 있었다. “말순아, 이리 와 아버지 친구에게 인사 여쭙거라.” 말순이 손병희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러자 서우순은 어리둥절해 하는 손병희에게 이렇게 말했다. “올 정월부터 말순이는 종이 아니라 내 양딸이네. 이 세상 누구나 타고날 때부터 존귀한 존재네.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죄 없이 양반, 상놈, 적자, 서자, 늙은이 젊은이, 남자 여자 차별하고 억압하는, 말도 안 되는 이런 짓거리들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네.. 더보기 작품 [님, 모심]- 7회 장일순, 노동.농민 운동 속에서 생명을 고민하다 장일순, 해월을 만나다 협동조합은 한편에서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농촌이 계속 허물어지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농부가 작물의 품종을 스스로 선택하고 기계화도 많이 이루어졌다. 1977년 수출 100억 불을 달성했다고 대통령이 신문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노동자의 낮은 임금과 낮은 쌀값 정책으로 이룩한 경제 성장이었다. 생산비를 밑도는 쌀값 책정에 농부는 농촌을 떠나 도시의 저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금방 무성해지는데, 농촌에는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장은 정부의 방침이라며 다수확 품종 ‘통일벼’를 심고 농약을 살포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 말에 따르지 않으면 빨갱이라는 신고가 들어갔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제초제와 비료를 선택했다. 농약 묻.. 더보기 비구름을 삼킨 하늘(6회) -1장 1891년 공주(4) 1장 1891년 공주 (전회에 이어서) 잠시 후, 부인이 조그만 상을 들고 들어와 동이 곁에 앉았다. “이제 그만 일어나서 미음 좀 먹자꾸나.” 동이는 그 소리에 주인나리의 손을 놓고 부인을 쳐다봤다. “자아, 어서.” 그녀가 동이의 몸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워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앉혔다. 그리고는 숟가락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에서 멀건 미음을 떠 입으로 후후 불어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던 동이는 재촉하듯 숟가락이 다시 다가오자 동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물처럼 묽은 미음을 받아 입에서 굴린 후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겼다. 입안이 소태처럼 썼다. 그러나 미음을 떠서 입가로 나르는 부지런한 숟가락의 움직임에 달뜬 마음이 묻어나 동이는 차마 물릴 수가 없었다. 미음이..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6회) - 열 살 윤을 남기고 어머니 돌아가시고 (어머니 김씨가 돌아가시고 손병희의 누이가 새어머니로 오게 되는데...) 보은에서 돌아오니 해월은 아직 봄인데도 도인들에게 악질에 대한 위험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었다. 묵은 밥을 새 밥에 섞지 말고, 묵은 음식은 반드시 새로 끓여서 먹을 것이며, 침을 아무 곳에나 뱉지 말고 길에다 뱉을 양이면 반드시 흙으로 덮을 것. 대변을 보고는 노변이거든 땅에 묻을 것. 가신 물은 아무 곳에나 버리지 말 것. 집안을 하루 두 번씩 청결히 닦도록 할 것. 몸을 청결히 할 것…. 그로부터 동학도인들 사이에서는 ‘부엌이 깨끗해야 한울님이 지나다가 복을 주고 간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그해 6월 하순부터 전국에 괴질이 돌았다.1) 괴질이 번지면 마을 전체가 벌벌 떨었다. 환자가 하나 생기면 그 가족, 그 주.. 더보기 동이의 꿈(6회) - 홍경래의 난(3) 절 뒷산에 풀벌레 소리가 쓰람쓰람 깊어지면서 보현사에 가을이 찾아왔다. 툇마루에 앉아 운보 어머니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던 삼촌스님이 겨우내 쓸 땔감 준비를 하느라 절 뒷마당에서 장작을 쪼개고 있는 운보를 불렀다. “운보야, 내가 어머니하고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 황해도에 있는 절에 가려는 참이다. 패엽사라는 절인데 그곳도 여기처럼 아주 오래되고 유서 깊은 절이지.” 운보는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 말없이 삼촌스님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곳에 너를 데려갈 생각이다. 한번 세상 구경도 할 겸 같이 가면 어떻겠니?” “저는 괜찮지만 어머니는 어떻게 하구요?” 세상 구경이 하고 싶기는 한데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 운보는 슬그머니 어머니 눈치를 살폈다. 어머니는 이미 마음을 정하였는지 웃으며 허락한다는 표시로 고개를.. 더보기 섬진강은 흐른다(5회) - 3장 청혼 3장 청혼 구례 구만촌에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양또치 집 옆에 아담한 초가집을 짓고 조삼도 가족들이 옮겨와 살게 된 것이다. 양계환과 조두환은 자주 구례에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날도 양계환은 광양 월포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올라와 구례 구만촌 가까이에서 내렸다. 늦여름 무더위도 가시고 가을 하늘이 파란 것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섬진강 가에는 빨래하는 아낙들이 있었다. 강가에서 언덕으로 오르는 길에 앞서 가는 두 여인이 있었다. 머리에는 빨래한 것을 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걸음이 빠른 양계환이 그들을 지나쳤다. 계환은 부끄러워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도 어떤 여인들인지 궁금하였다. 고샅으로 들어섰을 때 양계환은 걸음을 멈추고 먼발치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여인들을 보았다. 그 여인들은 모녀지간인 듯.. 더보기 피어라 꽃(6회) - 다들 보은 취회로 가세 조기를 다 떼어 담은 후 다시 그물을 내렸다. 어느덧 한밤중이다. 앞으로 두 달 간은 잠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이 따로 없다. 법성포 박중양이 조기를 받으러 배를 타고 나왔다. 김유복도 함께 왔는데 그는 금방 손종인과 형님, 아우가 되었다. 박중진이 궁금하던 동학 소식을 박중양에게 물었다. 입도하지 않은 사람들도 한양 소식에 귀를 쫑긋 세웠다. 계사년(1893년) 2월에 한양 광화문 앞에서 동학의 주요 두목들이 상소를 올렸다. 묵묵부답이던 임금은 마지못해 ‘각귀안업(各歸安業)’하라는 비답을 내렸다. 이 일은 그렇잖아도 동학으로 쏠리던 민심의 흐름에 새로이 물꼬를 터준 셈이 되었다. 동학이 대단하다는 소문이 크게 돌아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날로 늘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두목들이 생각하기.. 더보기 내포에 부는 바람(6회) 4 김순직의 집에서 동학 입도식을 치른 이창구는 바로 포덕에 나섰다. 그는 가장 먼저 순섬이를 입도시킨 후 정원갑과 함께 장터 포덕에 나섰다. 정원갑은 덕산 장터를, 본인은 면천 틀못 장터를 거점 삼아 포덕을 해 나갔다. 이창구가 입도한 지 거의 육 개월이 지난 1892년 정월이었다. 면천 군수로 심경택이 갈려 가고 홍종윤이 새로 부임을 해 왔다. 조용하던 틀못 장터가 떠들썩했다. 보부상 대표가 신관 수령 홍종윤의 부임을 축하해야 한다고 장터를 돌아다니며 강압적으로 돈을 갹출했다. “이 기회에 관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보부상들과 한판 붙어봅시다.” 동학 도인들은 축의금 거부에 나서자고 했다. 보부상들은 면천 수령이 부임할 때마다 돈을 걷어 수령에게 상납했다. 일 년에 한 번 꼴이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수.. 더보기 꿈이 있더냐(6회) - 변김경혜 벅차 오르는 희망, 동학의 뜻은 넓게넓게 퍼져라 “멀리에서도 와 주셨습니다. 이 추운 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셨으니 우리의 마음이 분명 하늘에 전달될 것입니다. 오늘 각수 작업을 앞둬 작은 제를 올리려고 합니다. 여기 오신 도인들은 모두 한마음이라 생각합니다.” 김은경의 말에 도인들은 작은 제상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떡과 과일, 막걸리가 단출했다. 해월 스승님은 제수 갖춤에서 허례허식을 경계하라고 했다. 제수용 술과 떡, 국수, 생선과 과일, 포와 튀각, 채소와 함께 향과 초만 있으면 족하다고 했다. 또 제를 지낼 때 고기를 쓰지 않도록 당부해 제사상이라고 해봐야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같은 잔칫날에 노래 한 번 못 부르는 게 아쉽네 그려.” 누군가의 말에 도인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 더보기 이전 1 ··· 6 7 8 9 10 11 12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