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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의 딸 용담할미(13회) - 인질이 된 처녀들 (출세에 밝은 박정빈은 인질을 고문한 뒤 옥졸에게 내어 주는데...) 아침이 밝았을 때 문이 열리더니 두 남자는 거동 못 하는 손 씨를 끌어내어 밖에 대어놓은 소달구지에 태웠다. 매서운 북풍이 몰아쳤다. “아저씨, 산모 몸에 찬바람이 들어가면 안 될 터이니 우리가 모두 달구지에 탈 테요.” 윤이 동희를 먼저 태우고 달구지에 올라타더니 손 씨에게 가마니를 덮어주고 그 옆에 누워 한기를 막아주었다. “태희야 너도 얼른 올라와서 그 쪽으로 누워.” 나이는 비슷한데 윤이 머리 쓰는 것이나 당차기가 보통은 넘었다. “아저씨, 어디로 가는 거지요?” “가보면 알 거요.” 키가 크고 더 젊은 총각이 퉁명스레 말했다. 앞으로 모진 고초를 겪게 될 것을 저 여자들이 짐작이나 할까? 그의 표정에 딱하다는 빛이 언뜻 스쳐갔.. 더보기
<섬진강은 흐른다 12회> 10장 휘날리는 동학농민혁명의 깃발(1894년) 10장 휘날리는 동학농민혁명의 깃발(1894년) 그날은 양계환이 논농사를 챙기려고 집을 나서려는데 아침 댓바람에 유석훈이 찾아왔다. 봉강서 월포까지는 한나절은 부지런히 걸어야 할 길인데 새벽 일찍부터 길을 나선 모양이다. 그만큼 급한 전갈이 있는 거였다. 유 접주 표정이 심각했다. 사랑채에 들어서 자리를 잡자마자 그는 품에서 종이 문서를 꺼내면서 말했다. “양 접주. 우리가 말하던 일이 예상헌 거보다 빨리 왔구마. 전라도 무장에서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접주가 기포(起包)했다고 연락이 왔네. 이거이 포고문이여. 언능 읽어봐.” “엉? 그럼 전국에서 기포한단 말이여? 어디 보자.” 그렇게 물어보면서 전해 받은 포고문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 나라에는 부채가 쌓여 있는데도 갚으려는 생각은 아니하고 교만.. 더보기
내포에 부는 바람 (12회) - 보은집회 제6장 보은 집회 1. 광화문 상소에 소두로 참여한 덕산 도인 박광호를 잡아들이라는 조정의 칙령을 받아들고 면천 군수 조관재는 골치가 아팠다. 게다가 앞으로 동비들이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 그 지역 수령을 문책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하기사 덕산 수령이나 예산 현감에 비하면 본인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소두 박광호와 봉소 박인호가 속해 있는 덕산 수령과 봉소 박덕칠 관할 지역인 예산 현감은 회합 내내 한숨만 쉬었다. 조관재는 이창구가 봉소 명단에서 빠지는 바람에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안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동학 내에서의 이창구 위치는 박인호나 박덕칠과 같으면 같았지 못하지는 않다고 했다. 오히려 이창구의 접의 세력이 더 커지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박인호나 박덕칠보다 나을 거라고 .. 더보기
꿈이 있더냐(12회) - 3장 탄생, 비밀과 기쁨 며칠 뒤 김은경은 아들과 함께 인근의 흑성산(黑城山)을 찾았다. 동경대전을 간행하는 작업을 하느라 꼬박 반년 이상을 쉼없이 보낸 것 같았다. 날이 차 입을 열때마다 허연 입김이 선명했다. 산을 오르느라 등허리에 땀도 흘렀다. 정상에 오르니 천안과 목천이 한눈에 들어왔다. 흑성산의 옛 이름은 검은성(儉銀城)이다. 지관들은 오래전부터 검은성을 한양의 외청룡이라며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길지형국이라고 말했다. 인근 승적골은 오목(덜목, 제목, 칙목, 사리목, 돌목) 사이에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라고들 했다. 그래서 피난처라는 얘기도 있었다. 이제 동경대전 간행이 목전이다. 김은경은 하루하루가 조급했다. 잠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도인들의 열망이 모여진 숙원이 이제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더보기
경상도편 (8회) - 이하백아 왜 왔나? 홍조동아 왜 죽였나? (상주에도 동학도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해월은 멀리 문경의 소야까지 포덕. 군위처녀 운매와 의성총각 이하백의 만남은... ) 숨이 멈출 것 같았지만 꼼짝도 못하고 바위에 붙어 있었다. 호랑이떼도 망대에 있는 사람들처럼 좀체 돌아갈 줄 몰랐다. 도치는 죽을 맛이었다. 일어설 수도 없고 달려갈 수도 없고 그대로 바위에 붙어 있어야 하다니, 금방이라도 호랑이가 달려들 것 같아서 몸이 덜덜 떨렸다. 이윽고 한낮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고 긴 산 그림자가 들녘을 삼켜 버리자 이야기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도치는 긴장해서 호랑이 떼를 바라보았다. 몸을 숨기고 눈빛만 번득이고 있던 호랑이 떼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그르렁거리고 있었다. “선생님! 이제 상주에도 도인들이 모래알처럼 많아졌습니다.” 얼굴이 .. 더보기
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12회) - 그들은 죽음이 두렵지않았다 손병희는 남접의 장군 전봉준과 첫 대면을 하는 순간 ‘늑대의 상이로다.’라고 혼잣말을 하였다. 불의와 불평등을 한시도 참지 못하며 그래서 절대 권위에 길들여지지 않고 투쟁하는 인간. 전봉준에게서 영원한 자유를 꿈꾸며 결코 길들일 수 없는 야성을 느꼈다. 반면 전봉준은 손병희에게서 카리스마 넘치는 호랑이상을 느꼈다. 충의에 몸을 던지는 인간, 굳센 의지와 용맹으로 휘하의 사람들을 서늘하게 만드는 위용을 가진 인간….남접과 북접을 각각 대표하는 장수가 한 자리에 만나 서로를 탐색하는 듯 묘한 긴장이 흘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모두 하늘님을 마음으로 모시는 동도이며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깃발 높이 들고 비장한 각오로 나선 장수들 아니던가. 서로의 거친 손을 따뜻하게 마주잡았다.“저보다 6살 .. 더보기
님, 모심(13회) - 남대천 물고기의 주인 남대천 물고기의 주인 장봉애는 양양 오대산 자락에서 부모님을 비롯하여 일곱 형제자매와 함께 살았다. 그곳의 물은 오대산 가마소 계곡과 두로봉에서 발원하여 법수치리 계곡, 남대천을 지나 동해안으로 흘러갔다. 양양 사람들은 남대천을 모천, 즉 어머니 강으로 불렀다. 황어, 은어, 연어 떼가 시기별로 산란하기 위해 바다에서 돌아오는 풍족한 강이었다. 그러나 강에 고기가 많아도 그녀 가족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남대천을 비롯하여 양양에 있는 하천들은 다 관아에서 관리하여 물고기도 마음대로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산간 지방처럼 풀뿌리를 캐고, 한 뙈기 밭농사에 온 가족이 매달려 살았다. 그녀는 장녀로 태어났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동생들 때문에 어머니 젖은 늘 말라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녀에게 어린 동생.. 더보기
경상도편 (7회) -호랑이가 보호하는 사람들 (산속에서 만난 도치, 해월에게서 아버지를 발견하고...)“20년 전에?” 아낙이 기침을 내 뱉으며 애써 일어나 벽에 기대어 앉았다. 도치는 어머니와 해월을 번갈아 보다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임술년, 이십년 전에 탐관오리들한테 대들다가 대표로 지목되어 처형당하셨다고 합니다. 아버님 이름은 정나구이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웃 아저씨에게 부탁해 엄마와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해월은 도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낙을 일으켜 세웠다. “호랑이가 왜 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겠소이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제가 가서 약초를 구해 올 터이니 하늘에게 꼭 살아야 한다고 알리시오. 꼭이요.” 도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해월을 골짜기가 끝나는 곳까지 배웅해 주었다. 해월은 도치의 .. 더보기
비구름을 삼킨 하늘(12회)-3장 1892년 공주 3장 1892년 공주 해월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그와 뜻을 같이하는 강시원이 걱정스런 얼굴로 해월을 보았다. 해월 앞에 앉아 있던 서장옥, 서병학, 윤상오는 숨을 죽이고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접장들께서는 법헌의 고민을 모르셔서 이러십니까? 20년 전 이필제와 함께 도모했던 영해 거사의 실패로 조직이 풍비박산이 나고 관의 탄압으로 숨조차 쉴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에도 법헌께서는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셨고, 사가의 많은 분들이 붙잡혀서 고초를 겪고 또 죽은 이는 얼마입니까? 그 고초 끝에 이제 도의 운수가 안정되어 충청도와 전라도에까지 도인들이 없는 데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세는 관에 맞서 싸워서가 아니라 정성 들이고, 공경을 다하였기에 이룩한 것입니다. 이제 세력이 수십 ..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 (12회) - 청산은 붉게 물들고 어거지로 시집가다 (일본군은 "민나 고로시-모조리 죽여라!"는 명령을 받고 조선에 쳐들어왔다. 앞으로의 정복에 방해가 되는 동학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동학지휘부가 있던 청산과 보은은 이 잡듯이 뒤지며 문서를 수집하고 수차례 방화를 저질렀다.)- 일본군의 작전-모조리 살육하라! 9월 18일 총력 기포가 결정되고 이 소식은 빠르게 옥천, 영동, 보은, 황간, 충주, 괴산, 청주, 청안, 덕산, 목천, 서산, 공주, 당진, 안면도, 염천, 태안, 양지, 여주, 양근, 수원, 안성, 음죽, 원주, 홍천, 횡성으로 전달되었다. 20만 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동학당을 모조리 잡아 없애기 위한 병력을 따로 파견하는 일이 당장 급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천황의 인가하에 이미 살육진압경험이 있는 야마구치현 히코시마(彦島) 수비병 1.. 더보기